[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순교자와 배교자

박해는 순교자들과 함께 배교자를 낳았다. 신앙 때문에 짊어져야 했던 가혹한 일상을 견딜 수 없던 이들은 제국의 질서에 투항했다. 단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시대였다. 전례 장소가 파괴되고 성경을 압수당하는 가운데, 모든 신앙인이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길 기대할 수는 없었다. 더러는 늦어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낙담하고 더러는 세속 권력의 당근에 도취했으며, 더러는 소시민적 불안과 나약함 때문에 신앙을 떠났다.

특히 제국 역사상 가장 가혹했던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박해(303-305) 동안, 아프리카의 많은 신앙인들이 배교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트라디토레스-넘겨 준 자들’(Traditores)이라 불렸는데, 박해 기간 동안 공권력에 성경을 넘겨 주거나 숨어 있던 형제들의 이름을 넘겨 주었던 탓이었다. 배교자들은 박해가 끝나고 교회가 제국의 동지가 되고난 뒤에야 신앙의 길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신앙의 가시밭길은 걷지 못했던 이들이 신앙의 꽃길은 걷겠다고 찾아온 형국이었지만, 어쨌든 교회는 돌아온 이들을 품었다.

2. 어찌 저 죄인들을!

물론 반발은 있었다. 일찍이 몬타누스는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며, 박해를 피해 숨는다든지 도망하는 것을 단죄한 바 있었다. 배교자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것은 이들에게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데치우스 황제의 박해(249-251)가 끝난 뒤도 마찬가지였다. 노바시아노와 그 추종자들은 분파주의자(Sectism)의 낙인을 받을지언정, 배교자들과 화해할 수 없었다.

4세기 초에 나타난 도나투스파는 몬타누스와 노바시아노의 뒤를 이었다. 배교자들은 용서 받을 수 없고, 이런 범죄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교회는 하느님이 떠난 교회이므로 참 교회로 인정할 수 없으며 배교자들은 비록 돌아왔더라도 성사를 집전하거나 사목적 직무를 맡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직한 금욕주의자였던 그들은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 순결한 교회를 더럽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으며, 배교자들이 제국의 비호 속에 승승장구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배교했다가 돌아온 이들에게 관용적인 교회에 반발해 도나투스를 주교로 삼고 대립한 그들은 100년이 넘도록 교회와 반목을 멈추지 않았다.

▲ 아우구스티노와 논쟁하는 도나투스파.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포시디우스가 남긴 ‘성 아우구스티노의 생애’에 따르면 성인조차도 이들의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배교자들을 포용하는 히포의 주교는 영혼의 유혹자며 사기꾼으로 불렸고,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늑대들은 제거되어야 마땅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아우구스티노는 이들의 암살 시도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3. 죄인들의 교회

그렇다면 교회가 한때 빛나는 도덕적 모범이었으며 충실한 신앙의 수호자이었던 이들에게 좌절감을 주면서까지 지키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철저한 금욕을 실천하며 어떤 역경에도 신앙을 지켜온 교회의 충실한 자녀들은 적어도 인간적으로는 배교자들을 비난하고 내쫓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그럼에도 교회가 ‘순결한 창녀’(Cata Meretrix)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최근 박근혜 율리아나와 김기춘 스테파노를 비롯해서 부끄러운 신앙인들을 실명으로 거명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구 시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겠다. 눈앞에 다가온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면 이런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비행을 고발하고 단죄하는 목소리, 도저히 저들과는 한 교회에 살 수 없다는 정의로운 주장이 나오게 될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굽은 것은 바로 잡아야 하고 회개를 거부하는 이들에겐 추상 같은 질책이 필요하다. 과연 정의는 외쳐져야 한다. 단, 조건은 있다. 거룩함은 인간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며 정의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정의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야 한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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