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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르신들 앞에서 사회교리 이야기하기[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박용욱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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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0  10: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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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부님,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 물대포로 쏴서 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80대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어떻게 대답해 드려야 할지 몰라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할머니, 그래도 사람한테 물대포를 쏘면 되나요?”하고 넌지시 운을 떼니 이어지는 지청구는 딱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아니, 대통령도 인간인데 조금 잘못할 수도 있지 그걸 꼬투리를 잡아서.... 아이고 답답해요!” 대림절 사회교리 특강을 하러 갔다가 미사도 시작하기 전에 한 방 먹은 셈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어르신들이 한두 분이 아닌데 강의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당혹감이 듭니다. 하필이면 강의 주제가 정치와 영성이라 피해 갈 방법도 없습니다. 짐짓 태연한 척 표정을 고르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2. 얼마나 고생 많으셨어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복음 낭독까지 끝내고 드디어 특강을 시작합니다. 본당에서 사회교리 특강을 한다면, 교우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세 부류 중의 하나입니다. 첫째로 ‘신부가 알면 얼마나 아느냐, 어디 한번 떠들어나 보라’는 분들이 있고, 반대로 ‘신부님 속 시원하게 터뜨려 주세요, 그동안 우리 동네에서 말도 못 하고 숨죽이고 살았어요!’, 그렇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강 강사 신부가 뭐라는지 모르겠다, 본당 신부 얼굴 봐서 앉아는 있어 줄게’라고 얼굴에 써 놓으신 분들이 세 번째 부류입니다. 이날은 세 번째 교우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먼저 성령과 다양성 안의 일치에 관한 이야기로 밑밥을 깔아 놓습니다. 어르신들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해도 좀 넘어가 달라는 부탁입니다. 이어서 ‘없이 살던 시절’ 이야기를 꺼냅니다. 마침 예화로 들었던 지난 시절 이야기가 어르신들한테 괜찮게 들렸던 모양입니다. 굳어 있던 얼굴이 풀리고 맞장구도 치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느냐, 그런데 어르신들 고생하신 덕에 이렇게 부강한 나라를 이루지 않았느냐, 이런 말씀을 이어 나가니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여세를 몰아서 요즘 젊은 것은 어르신들 고생도 몰라 주지 않느냐, 여기까지 오면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계시더군요.

그제야 저도 할 말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오면서 옆을 돌아보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잊어버린 이웃들의 아픔은 이런저런 것이 있다고 소개드리니까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농정의 실패를 언급하고,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서 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 이야기를 꺼냅니다. 쌀 한 가마니에 운동화 한 켤레 값도 못 받는 현실에, 대통령 공약대로 쌀값 맞춰 달라는 주장을 하는 농민들에게 물대포를 쏘았다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은 이제 집회 끝났으니 물대포 좀 그만 쏘라고 나섰다가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고 그랬구먼요, 우리는 몰랐지요.’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끝으로 사회적 영성도 우리 영성 생활의 한 부분라고 말씀드리니 많은 분들이 수긍을 하는 눈치입니다.

   
▲ 노인들의 소외감과 피로감 응어리들을 풀어 주세요.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3. 말하기 전에 들어 드리기

미사를 마치고 나서 강의가 좋았다는 감사 인사를 제법 들었습니다. 사회교리가 그런 건 줄 모르고 오해를 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물대포를 쏴서 다 죽였으면 좋겠다’던 입에서 강의 고맙다는 말이 나오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어르신들이 느끼던 소외감과, 아무리 애를 써도 쫓아가기 힘든 세상에 대한 피로감을 말씀드렸기 때문이었을 테고, 열심히 살아오신 지난날에 감사드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읽어 드리고 답답했던 속을 좀 풀어 드리니 어르신들도 마음을 여셨던 것 같습니다.

흔히들 싸우기 싫으면 정치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치는 각기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화가 없는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라 선동이나 논쟁일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어르신들과 논쟁을 벌여 이긴다 해도, 그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말문이 막힌 어르신들은 마음의 칼날을 벼리다가, 어느 날 “우리 아들이 안 된다 안 된다 하는데 본때를 보여 주려고 찍었어요!”라며 반격하시겠지요.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치만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잘 없으니 그만큼 열을 내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치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어르신들과 정치 이야기 하신다면, 먼저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시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드려 보시길 권합니다. 경상도 어르신들 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해 본 신부의 경험담입니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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