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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칠죄종과 인간 (상): 감정과 뇌[박한선의 '세븐' - 14]
박한선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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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4  15: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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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 감정과 뇌
중편- 이성과 뇌
하편- 자유의지와 뇌

1885년 7월 6일 아홉 살의 어린 프랑스 소년 조셉 마이스터에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광견병에 걸린 미친 개에게 무려 14번이나 물리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광견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에 물려서 전염되는데, 정신 착란과 공포, 공격성, 분노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대개 몇 주 안에 곧 죽게 된다. 치사율이 대단히 높을 뿐 아니라 마땅한 치료법도 없기 때문에 아주 무서운 병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엇을 삼키려고 할 때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데, 그래서 침을 삼키지 못하여 질질 흘리게 된다. 물도 두려워하게 되므로, 공수병(恐水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광견병은 아주 역사가 깊은 병이다. 기원전 2000년 무렵, 고대 수메르의 에쉬눈나 법전은 광견병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친 개가 사람을 물지 못하도록 대비책을 세워야 하며, 만약 사람이 물려 죽을 경우에는 개 주인이 큰 배상을 하여야 한다는 조항이다. 그러나 수천 년간 광견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개발되지 못했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죽을 수밖에 없는 불치의 전염병이었다.

   
▲ ‘광견병: 미친 개 때려잡기’, 디오코리데스 페다니우스. (1566년) 다리를 무는 미친 개를 사람들이 처치하려고 하고 있다. 광견병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를 괴롭혀 온 전염병이지만, 치료 방법이 전혀 없었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거의 대부분 고통 속에서 끔찍하게 죽었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인간의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은 물론 뇌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변연계라고 부르는 부분이 감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상(thalamus)이나 시상하부(hypothalamus), 해마(hippocampus), 편도(amygdala), 뇌하수체(pituitary gland) 및 주변 기관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뚜렷한 해부학적 구조보다는 그 기능에 초점을 둔 개념이다. 변연계는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고, 감정과 학습, 기억 등 다양한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성적 흥분이나 식욕도 담당하는데, 변연계가 고장 나면 성욕이 솟구치고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느끼는 등의 증상을 일어난다. 폭력 행동이나 불안,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무기력과 우울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변연계는 칠죄종 중에서 탐식, 정욕, 분노, 나태, 탐욕 등 무려 다섯 가지 죄악과 깊은 관련이 있는 뇌 구조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교만이나 질투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광견병 바이러스가 초기에 침범하는 부위가 바로 이 변연계다. 그래서 광견병에 걸리면 불안과 불면, 초조, 공포, 공격성 등의 반응을 보이고, 혹은 반대로 우울과 무기력, 의기소침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점점 바이러스가 뇌의 다른 부분에 퍼지면서 사지가 마비되고, 호흡근이 멈추면서 죽는 것이다.

   
▲ 변연계.(Limbic system) 따뜻한 색이 칠해진 부분이 변연계다. 변연계는 인간의 감정, 욕동, 충동, 공격성, 동기 등 다양한 원초적 기능을 담당하는 뇌 구조물이다. (이미지 출처 = zh.wikipedia.org)

조셉 마이스터의 아버지는 수소문 끝에 당시 유명한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를 찾아갔는데, 사실 파스퇴르는 임상 의사가 아니었다. 파스퇴르는 광견병 예방 백신을 개발하여 동물 실험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인간에게는 접종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미 60세가 넘은 저명한 학자였던 파스퇴르는 그동안의 평판과 명성을 건 도박을 감행했다. 다른 의사 손을 빌려 꼬마 조셉에게 광견병 백신을 접종한 것이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하면, 어린이에게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 뻔했다. 무면허 진료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13회에 걸친 백신 접종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꼬마 조셉 마이스터는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다.

굳이 광견병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뇌출혈이나 종양 등으로 인해서 변연계가 손상되면 감정과 욕동, 충동, 성욕 등의 조절이 어려워진다. 사실 변연계의 아무런 이상이 없는 정상인들도 한밤중에 치킨과 맥주에 대한 유혹에 굴복하고, 벌거벗은 여자 사진에 연신 눈을 힐끔거리며, 종종 작은 일에 불같이 성을 내고 나서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변연계가 인간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 변연계만 아니라면, 칠죄종 중 최소한 다섯 가지 죄악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거추장스럽고 위험천만한 감정 기관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 조셉 마이스터. 1885년 1월. 당시 9살이던 조셉 마이스터는 미친 개에 물렸지만, 루이 파스퇴르로부터 백신을 성공적으로 접종 받고, 광견병을 앓지 않았다. 어른이 된 조셉은 죽을 때까지 파스퇴르 연구소의 관리인으로 일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변연계는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이성을 볼 때, 성욕을 느끼는 것은 일반인뿐 아니라 성직자, 심지어 교황이라고 해도 동일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원초적 욕구에 부정적 감정이 덧입히고, 과거의 기억과 연결해서 성적 충동을 자제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수술로 변연계를 잘라낸 환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성행위에 몰두하려고 하고, 그런 행동에 대해서 죄책감과 같은 불편한 기분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변연계의 기능이 손상되면 타인에 대해서 잘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 걱정에 대해서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리처드 레논 등은 변연 공명(limbic resonance)이라고 했는데, 타인에게 느끼는 친근함과 공감이라는 깊은 감정이 바로 변연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레논은 인간이 변연 공명을 통해서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변연 조절을 통해서 심오한 성격과 일생을 통한 일관적인 정서적 건강이 유지되며, 변연 쇄신을 통해서 점점 더 성숙한 정서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변연계가 손상된 사람은 앞서 말한 원초적 본능이 전혀 통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러한 감정이나 행동에 대해 어떤 반성이나 후회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질 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능력도 없어진다.

   
▲ 변연계는 정욕과 분노, 나태, 탐욕, 탐식 등 부정적인 충동과 감정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사랑과 공감, 애착과 같은 긍정적 정서의 중추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즉 변연계는 정욕, 분노, 나태, 탐욕 등 죄의 씨앗이 되는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또한 경험에 대한 반추, 행동에 대한 후회, 결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사랑을 일으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아마 성욕을 전혀 느껴 보지 못한 정신과 의사는, 그러한 감정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환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분노의 감정은 느껴 본 일이 없다는 성직자는, 충동적 죄를 짓고 참회하는 자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변연계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강하고 날카로워서 자칫하면 자신과 타인을 다치게 할 수 있지만, 제대로만 쓴다면 자신과 타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무거운 사슬을 끊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변연계의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시도 때도 없는 성욕과 식욕을 보이고, 또한 가까운 가족을 마구 때리거나 죽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했다. 실제로 정신과에 응급 입원하는 이유의 일부분은 이러한 감정과 충동 조절의 장애로 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연계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죄악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어려운 문제지만, 이에 대해서는 일단 접어 두도록 하겠다.

   
▲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실에서 광견병 접종을 받는 아이. 파스퇴르는 이미 저명한 과학자였지만, 미친 개에게 물린 어린 아이를 위해서 확인되지 않은 백신을 접종하는 모험을 하였다. (이미지 출처 = wellcomeimages.org)

변연계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이지만, 또한 사랑과 애착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능도 한다. 아마 루이 파스퇴르의 백신이 아니었다면, 어린 조셉 마이스터는 광견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조셉의 척수를 타고 올라와 변연계를 중심으로 심각한 뇌염을 일으켰을 것이다. 불쌍한 조셉은 조절되지 않는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리며, 충동적 행동과 공격성을 보였을 것이고, 침을 질질 흘리다가 점차 사지가 마비되고 호흡근이 멈추며 질식하여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보다 한발 앞서서 루이 파스퇴르의 변연계가 먼저 고조되었다. 이미 확고한 명성을 얻은 파스퇴르가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에게 14번이나 물린 불쌍한 조셉을 본 파스퇴르의 뇌가 모종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검증되지도 않은 백신을 어린 아이에게 무면허로 접종한 것은 부적절하고 무모한 충동이었을까? 혹은 깊은 공감에서 비롯한 용감한 희생적 사랑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파스퇴르의 뇌, 특히 변연계가 이러한 위대한 결정에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 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어머니 혹은 여자, 진화의학으로 살펴 본 여성의 건강"(2017)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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