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진상조사가 필요한 이유 보여 줘"

이번 탄핵 심판에서 탄핵 인용 여부와 함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세월호참사 관련 ‘헌법상 생명권 보장 조항 위반’이 어떻게 판단될 것인가였다.

그러나 3월 10일 판결에서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에 대해, ‘각하’, 즉 탄핵사유 적법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무 위반과 상관없이 이것으로는 탄핵 심판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과 관련단체들은 실망하면서도 진상조사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라고 지적했다.

탄핵소추안에서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은 ‘생명권 보장(헌법 10조) 조항 위배’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이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기 전 7시간의 행적에 대한 진실규명 요구를 은폐, 묵살했다는 사항이다.

탄핵소추안은 “국가적 재난을 맞아 즉각적으로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집중 투입해야 할 위급한 상황에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최고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이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재난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대응은 사실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가깝고, 헌법 제10조에 의해 보장되는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적시한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에 대해서는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의무까지 발생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직책성실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또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며,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않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했다.

다만,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세월호참사 관련해서 파면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면서도,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명확히 지적하는 보충의견을 냈다.

▲ 대통령 탄핵 인용 뒤,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을 보이며 행진에 함께하고 있다. ⓒ배선영 기자

헌재의 각하는, 진상규명 필요성 드러내
대통령의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 보다 실질적으로 해석돼야

헌재의 이같은 판결이 낭독되자 헌재 앞에서 판결내용을 듣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

현장에 있던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 진상규명소위원장 권영빈 변호사는 “결국 헌재가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대통령의 책임이 있느나 없느냐의 판단이 아니라 헌재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라며, “이는 세월호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대통령의 7시간을 판단하는 근거가 여전히 없고, 진상규명할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그러므로 7시간을 비롯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세월호 가족들도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반응”이라며, “헌재의 판결은 앞으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기반이라고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앞으로 대선이 시작되면, 모든 이슈가 묻힐 것"이라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후보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공약으로 내세우도록 하고, 진상규명 방법을 제시하는 활동 등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 심판 뒤,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논평을 내고 “세월호 7시간을 제외한 것은 상식 밖”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헌재의 탄핵 인용은 당연한 결정”이라면서도, “박근혜의 세월호참사 당일의 직무유기를 탄핵사유로 보지 않은 것은 상식 밖의 일로서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또 헌재가 대통령이 당일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는지 여부가 탄핵심판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본 데 대해, “당시 청와대가 기록, 정보 공개와 특검수사 거부 등 불법적, 편법적 권력수단을 동원해 진실을 가려 온 권한남용으로 결국 탄핵심판을 모면했다는 것은 법치의 관점에서 치명적 선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헌재의 오늘 판단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와 수사를 회피하거나 위축시키는 데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번 헌재의 판단을 계기로 헌법상 대통령의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국민의 권리도 보다 실질적인 의무와 권리로 해석되고, 조문상으로도 보완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주대교구 정평위 이정규 위원도 “생명권 보호와 관련해서는 우리 헌법이 너무 좁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보다 넓게, 그리고 그 의무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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