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3월 12일(사순 제2주일) 마태 17,1-9

약속된 땅에 가기 전에 40년이 걸렸다.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과제를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머물렀다. 유대 민족과 예수님의 이런 체험들이 사순절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막간극은 없다

예수님은 결정적 순간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분의 죽음은 사명을 끝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죽음은 부활의 빛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에 관하여 우리가 해석하기를 바라는 내용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빛나는 얼굴과 눈부신 하얀 옷은(마태 17,2) 파스카의 빛을 예고해 주고 있다. 주님의 죽음은 어둠의 승리가 아니라 이미 그 어둠이 정복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우리는 파스카적 관점을 잃어버리는 위험을 겪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죽음을 반드시 통과해야 생명이 얻어진다는 관점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다. 그럴 경우 하느님나라에 대한 예견은 마치 종말에만 나타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따라서 현재는 어떤 일시정지나 과도기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 이런 모습은 베드로가 변모한 예수와 함께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마태 17,4) 현실 속에서 이러한 하느님나라에 대한 예견, 기대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길로, 어떤 강한 추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마태 17,7) 신앙을 더 강하게 하고 그 신앙을 전달하는 데 있어 발생되는 어려움들을 직면할 힘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변모 체험은 제자들이 스승을 따르는 데 있어 용기를 주어야 하며 위축되게 해서는 안 된다.

▲ "네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세 12,1)는 네가 가진 모든 것, 네가 알고 있는 세계를 떠나라는 말이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신앙의 철저함

제1독서는 후에 바오로 사도가 칭하게 되듯이 우리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소명은 어떤 단절로 시작된다. “네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세 12,1)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기 위하여”(창세 12,1) 네가 가진 모든 것, 네가 알고 있는 세계를 떠나라는 말이다. 이것은 약속의 시작이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창세 12,2) 이 이야기는 모든 다른 형태의 안전이 반드시 포기되어야 하는 주님께 대한 전적 신뢰를 말해 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대로 한다: 땅을 떠나고, 속했던 세계를 떠나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떠난다. 성경은 이러한 자세의 어떤 근본적 측면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하느님을 믿는 것과 동시에 결정적으로 다른 안전장치들과 보증들을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측면이다. 신앙은 철저한 태도를 요구한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들과 연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복음으로”(2티모 1,10) 생명을 전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편안한 조건들에 그리고 사회와 교회의 특권들에 매달리게 되면 우리는 모든 특권과 생명까지 포기했던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쓸모없는 도구가 되고 만다. 하느님나라를 환영하는 것은 모든 불의와 이웃에 대한 약탈을, 특히 가장 약한 이들에 대한 착취를 거부하는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