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2]

발레학원 시간이 다가오자 메리의 눈에 어김없이 눈물이 맺혔다. 이유는 발레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저학년 언니들 때문이란다. 발레 수업 전에 ‘얼음땡’이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노는데 아무래도 초등학생들이 유치원생들보다는 덩치도 크고 말발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놀이가 초등생들 의견대로 흘러가나 보다. 그런데 메리는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발레는 재밌건만 언니들이 맘대로 하고, 싫은 걸 억지로 하게 해서 학원 가서 놀기 싫다는 거다. 나는 발레 갈 때마다 메리를 달래고 설득하는 게 귀찮아 발레를 보내지 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레가 싫지 않은 바에는 학원에 안 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라면 어디서든 마찬가지일 테니까. 여기서 포기하면 메리는 앞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 앞에서 도망치거나 포기해 버리는 겁쟁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메리의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돕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들 노는 데 어른이 불쑥 끼어드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의 놀이 세계에 합당한 이유 없이 어른이 끼어들어 그 질서를 흘뜨려 놓는 건 매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발레 선생님들과 내가 아이들 노는 모습을 줄기차게 매의 눈으로 살펴보았는데 메리가 놀이 시간을 힘들어 하는 이유는 외부에 있기보다는 메리의 민감한 성향 때문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다른 아이들은 언니들 말 잘 들으면서 재밌게만 놀건만 메리만 유독 갈등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하게만 여겨졌다. 왜 그런가하면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왕팬이었으면서도 서태지가 ‘교실이데아’에서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하고 외치는 것을 한낱 불량학생의 되바라진 불평쯤으로 여기며 내게 주어진 야간 자율학습이나 주말 자율학습도 군말 없이 하던 정말 드럽게 말 잘 듣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치마를 줄여 입는다거나 머리를 기르고 파마하는 게 다 뭐야. 나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몽실언니’ 단발머리를 한 채 무릎 한참 아래 장딴지에 어중간하게 걸리는 ‘월남 치마’를 교복으로 입고도 내면의 저항감이나 체제 반항심을 못 느끼던 학생이 아니었나. 그런 내 입장에선 메리를 두고 언니들이 하라면 하는 거지 그게 싫으면 뭐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메리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라서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때,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엄마가 안아 주지 않으면 아이는 이 세상 어느 누구의 품에 안겨 마음껏 울 수 있을까.

자, 그래서 지금 울고 있는 메리를 어떻게 달래 준다? 용기를 북돋아서 그 좋아하는 발레를 오늘도 가게 한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터프하게 말을 꺼냈다.

“메리야, 그 언니들.... 별 거 아니야. 너가 초등학교 5학년만 되도 알겠지만 지금 발레 학원에서 엄청 커 보이는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언니들.... 다 꼬맹이란다. 하핫. 꼬맹이라고. 나중에 커서 보면 그때 그 언니들이 사실은 진짜 작은 어린아이였구나 느끼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런 꼬맹이들한테 겁먹지 마.”

메리는 으응? 하고 눈을 크게 뜨더니 “꼬.맹.이....”라고 나지막하게 발음했다.

훗, 역시 동요하고 있군. 나는 왕년에 좀 놀아 본 언니들처럼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 넣었다가 푸핫 숨을 내뱉으며 “그래 꼬맹이들! 그런 꼬맹이들이 자꾸 제 멋대로만 하고 억지로 뭘 시키면 ‘니가 뭔데’ 하고 따지란 말이야. 음, 그래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똑같아. 누가 너한테 자꾸 못되게 굴면 참지 마. 속상해만 하지 말고 그럴 땐 눈을 부라리면서 크게 얘기해. 이렇게, 메리야, 엄마 봐 봐.... ‘야, 니가 뭔데? 니가 선생님이야? 아님 우리 엄마야? 니가 뭔데 꺄아~불어?’ 하는 거야? 알았지? 음, 그래도 안 되면.... 그래! 코피 한 방 터뜨려 버려! 주먹으로 빠악! 그럼 애앵 하고 울겠지. 하하하! 그러고 나면 그 어떤 애도 감히 못 건드릴걸? 딱 한 번만 싸우면 된다구.”

메리는 엄마가 왜 나한테 폭력을 조장하나 어리둥절할 게 분명하다. 평소엔 그렇게 동생이랑 싸우지 말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때리는 건 안 된다고 하던 엄마인데 말이다. 메리의 눈에서 ‘그래도....’하는 주저함이 보인다. 나는 내친 김에 이판사판이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다 처리할게.... 그러니 너는 걱정 말고 싸워. 응? 참, 머리끄덩이를 확 잡아채는 거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치고받고 싸우라고! 아우! 그리고 일단 싸웠다 하면 지면 안 되지. 울면 안 돼! 알았지? 끝까지 싸우는 거야! 응?”

나는 마치 싸움을 하는 것처럼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다. 내가 학창시절에 저런 마인드였다면 학교 짱이 됐을 텐데. 어쨌든 메리는 엄마가 또 흥분했군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먹을 거두면서 폭력은 최후의 수단이며 방금 엄마가 했던 말은 욜라한테는 가르쳐 주지 말고 너와 나만의 비밀로 하자는 둥 수습에 힘썼지만 마음은 무척 개운했다. 메리에게는 이 정도로 할 필요가 있다. 메리로 말하자면 집에서는 나하고 60분 토론을 해서 이겨도 밖에 나가면 어리버리 할 말 못하는 헛똑똑이가 아닌가. 너무 고지식해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따로 가르쳐야 하는 아이. ‘친구랑 사이좋게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울 때는 싸워도 된다’고 강조해야 한 번 싸울까 말까 한 아이. 나는 그런 메리에게 아무 걱정 말라고 잘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메리를 태운 학원차가 모퉁이를 돌아 안 보일 때까지 파이팅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메리와 욜라. ⓒ김혜율

그렇게 메리한테 큰소리 떵떵 치고 난 나는 돌아서서 히유우우우.... 바람 빠진 풍선이 된다. 사실 나는 나약하기가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메리한테 강해져라, 할 말하고 살아라 이런 말을 하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좀 뻔뻔해지고 못되지는 게 소원이다. 누가 들으면 착한 거 자랑하나 싶겠지만 나는 착한 게 아니고 그저 소심한 겁쟁이다. 오늘만 해도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일어났었다.

메리와 욜라가 유치원에 가고 난 오전, 몸살감기가 걸려 드러누운 남편이 로를 봐 주는 사이 나 혼자 목욕탕에 갔었다. 앉을 자리를 찾는데 적당한 빈자리가 보였다. 해서 그 자리 바로 위 선반에 목욕짐을 올려놓고 (목욕탕에서 자리 맡는 방법) 목욕의자를 가지러 갔는데 어떤 할머니가 포개진 목욕의자가 안 빠져 낑낑대고 계셨다. 내가 아래쪽 의자를 잡아 주니 위쪽 의자가 쏙 빠졌고 할머니는 고맙다고 의자를 들고 어디론가 가셨다. 그리고 나서 내 목욕의자를 들고 아까 찜한 자리로 갔더니 방금 전 그 할머니가 내가 맡은 자리에 떡 하니 짐을 풀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목욕짐을 가리키며 여긴 제 자린데요 하자 그 할머니는 나보다 당신이 먼저 세숫대야로 자리를 잡아 놓았던 거라고 잡아떼시는 거였다. 이런, 아까 목욕의자 빼는 거 도와준 은혜를 자리 새치기로 보답하실 줄이야! 그리고 목욕바구니로 자리를 찜하는 것이 불문율인 목욕탕에서 세숫대야 운운하시다니!

그래서 내가 그 할머니랑 멱살 잡고 싸웠느냐, 아니면 째려보기를 했느냐, 것도 아니면 바른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돌아섰느냐. 메리에게는 코피 팡팡 어쩌구 해 놓고 정작 나는 그런 상황에서 다소곳이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났다. 평소 혈기 왕성한 젊은 아줌마가 할머니 상대로 따박따박 옳네 그르네 하고 따지는 걸 안 좋게 봐 왔다손 치더라도 할 말 해야 하는 때조차 입 뻥긋 못하는 내가 바로 나라니. 그래 놓고 집에 오는 길. 아랫집 할머니가 주신 깻잎무침 반찬을 다 먹고 빈 통을 돌려 드릴 때 할머니 좋아하시는 소주 한 병 사다 드려야지 하고 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한 아저씨가 튀어나오면서 다짜고짜 “지금 차 기스 난 거 안 보이세요?” 하며 내게 돌진을 해 오는 거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남 차를 긁고 지나갔나 싶어서 얼굴이 사색이 되어 서 있는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덜덜 떨고 있으려니까 아저씨가 나보고 워워 손짓을 한다. 그 아저씨의 정체는 주차장을 돌면서 흠집 난 차량을 골라가며 말끔하게 만들어 주며 차량용 흠집 보수제나 광택제를 파는 약품장수.

아저씨는 내 차 옆구리에 난 흠집을 약품을 이용해 없애는 마법을 부리시며 그 제품이 2만 3000원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칠이 벗겨진 부분을 조그마한 붓으로 색칠까지 해 주시면서 내 차를 계속 여기저기 닦아대셨다. 나는 감동을 받고 하나 사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마침 나에겐 그만한 돈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가난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은 돈이 없으니 다음에 만나면 꼭 사겠다고 아저씨께 약속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자기 사전에 다음은 없으며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물건을 사지 않으려는 변명이거나 흥정을 하는 줄로 여기셨는지 계속 거래선을 좁혀 오셨다. 마법의 흠집제거제를 단돈 2만 원에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정말로 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압박감에 못 이겨 아저씨께 쭈뼛 대며 내 주머니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아침 돈 5만 원을 들고 집에서 나왔는데 먼저 목욕탕에 갔었고 좀 전에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3만 원치 넣고 세차까지 했더니 돈이 얼마 안 남았다고. 아저씨는 다행히 내가 마트에서 소주 한 병과 매운새우깡 한 봉지와 맛동산까지 사고 나면 남는 돈이 더 적어질 거라는 말은 듣기도 전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흠집이 난 다른 차를 찾아 떠나셨다. 물론 그 아저씨는 이십 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을 했거나, 사업을 하다 망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부인이랑은 별거 중일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차량용 흠집제거제나 광택코팅제를 하나쯤 사 줘야 그 아저씨가 밥이라도 한 끼 사 먹고 고모집에 얹혀사는 자식들 문제집 값이라도 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돈도 없으면서 내 차를 수건으로 막 문지르면서 약품을 팔려는 아저씨에게 아니요 라는 말을 못해 망설였던 것이다. 그럴 땐 그냥 단호하게 ‘안 삽니다 안 사요. 필요 없어요.’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뜬금없이 아저씨한테 오늘 아침 목욕탕에 다녀온 이야기를 왜 하냔 말이다. 엄마가 돼서도 이런 식이면 좀 곤란하지 않나.

사실 주유소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있긴 했는데 털어놓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나 못난 걸 너무 길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말 안 하련다. 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아이들 앞에서 뭐든지 척척 해내고 믿음직한 엄마가 되고 싶어 애써 왔다.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어쩌면 이미 아이들도 내 정체를 눈치채고 있을지 모르지만 엄마의 부족하고 약한 모습은 되도록 늦게 보여 주고 싶은 바람이다.

다행히 메리는 나보다는 나은 것 같다. 발레 학원에서 돌아오는 메리의 얼굴은 늘 밝아서 안심이 된다. “오늘 어땠어?”하고 지나가는 투로 물으면 메리는 언제 학원가기 싫다고 했냐는 듯 웃으면서 대답한다.

“응, 재밌었어!”

나는 거봐란 듯이 “내 그럴 줄 알았지!”하며 총을 빵 쏘는 시늉을 했다. 멋지게 윙크까지 날리며! 어우, 걸크러쉬, 쩐다, 쩔어. 어디 가서는 어버버버 말 못하는 코 찔찔이라도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선 오늘도 쎄디 쎈 엄마! “넌 할 수 있어! 이 엄마가 있잖아!” 하며 가슴 팡팡 쳐 보이는 나는야 수퍼 울트라 메가 풀 파워 엄마라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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