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데레사 포카데스 수녀는 여러모로 놀랍고 흥미로운 사람이다. 영국 언론 <가디언>과 <BBC>는 데레사 수녀를 각각 ‘스페인과 남부 유럽에서 가장 래디컬하고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수녀’, 또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좌익 지식인의 하나’라고 묘사했다. 반자본주의자로 그의 혹독한 비판은 은행에서부터 제약회사, IMF, WTO, 심지어 나토까지 종횡무진으로 거칠 것 없어 보인다. 이력도 다채롭다. 그는 15살에 성서 나눔을 하다가 불에 덴 듯한 통증 비슷한 충격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하버드에서 의학으로 석사를 마칠 때까지도 그 갈증은 식지 않았고 결국 베네딕토회 수도자의 길을 가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수도회에 입회하고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2005년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의학 박사를, 2009년에는 카탈루냐 신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의사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력과 지식의 경계가 없을 것만 같은 박식함, 거기에 더해 달변이기까지 하다. 이런 ‘화려한 스펙의 능력자’ 수녀가 페미니즘을 일종의 해방신학으로 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기서 찾는다. 곧 자신을 여성 해방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태아는 생명체로 살 권리를 갖는다는 가톨릭 교회의 공식 교리를 따르면서도, 임신한 산모도 동일한 수준으로 임신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낙태와 피임약 사용을 지지’한다. 이쯤 되면 바티칸의 반응이 궁금해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황청 수도자성은 2009년 그의 ‘위험한’ 반 교리적 사상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활동을 겨냥하고 베네딕토회 수녀원장에게 데레사 수녀가 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따르는지 공개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는 물론 교회 가르침과 교도권을 따른다고 했지만, 공개적으로 이에 반대할 자유가 있으며 낙태 문제에 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한다고 되풀이 강조했다. 데레사 수녀는 한 강연에서 이러한 바티칸의 조사와 간섭은 여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하느님의 창조물 가운데 의미 없는 것은 없으며 따라서 남성, 여성의 이성애뿐만 아니라 다른 섹슈얼리티, 곧 호모나 레즈비언, 양성애자, 퀴어 등도 그 자체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존재라고 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톨릭 교회가 “여성혐오적이고 가부장적 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가능한 한 빨리 변화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가 수녀회에 입회하기 전인 1997년, 베네딕토회 수녀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동성애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데레사 수녀는 이들이 자신들의 섹슈얼리티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면서 이것을 축하했다고 수녀들에게 말하자, 수녀들의 반응이 매우 인간적인 데에 감동해 입회를 결심하게 되었다.

▲ 강연 중인 데레사 포카데스 수녀.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 뒤로 지금까지 바티칸에서 어떤 조치를 내렸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분명한 것은 그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와 그의 활동을 가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밖 정치권에서도 데레사 수녀를 두고 ‘광란의 음모주의자’라거나 오직 반쪽만의 진실로 수도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공포를 조장하는 ‘사기꾼 수녀’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스페인 내무부 장관도 그를 포함해 스페인 가톨릭 수녀들의 정치사상을 겨냥해 “수녀를 이용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것은 철 지난 시대의 유물이며 21세기에는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과 장관까지도 비판을 해 대는 판국이니 그의 명성과 활동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그의 대응은 ‘쿨’하다. “비판은 예상했다. 난 단지 예수라 불리는 사람을 따르고 있으며 그도 무수한 비난을 받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의 멋스러움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바티칸의 조사와 정치권에서의 공세적 비난 등을 생각하면, 베네딕토 수도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다른 소임을 맡기거나 해외로 보내거나, 좀 심각한 경우에는 아예 강연과 출판 등의 모든 공개적 행동을 못하게 할 것 같은데, 이 공동체의 대응은 좀 달랐다. 사실 수녀회가 아니었으면 그가 이렇게 유명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2009년 데레사 수녀는 조류 독감과 비슷한 돼지 독감이 창궐했을 때 돼지독감 백신에 대한 WHO와 스페인 의약산업계의 태도에 독설을 퍼부으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수녀원에서 백신의 위험성에 대해 한 시간짜리 비디오를 녹화해 유튜브를 통해 전파를 탔고 스페인 사람 100만 명이 시청했다. 그러니까 수녀원이라는 무대를 통해 첫 데뷔를 한 스타 탄생의 시나리오는 수녀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어려웠다는 얘기. 거기에다가 베네딕토 공동체 수녀들은 그에게 수녀 한 명을 일종의 ‘비서’로 붙여 주고 어디든지 가서 말하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러한 ‘찰떡궁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3년 데레사 수녀와 한 유명 경제학자는 카탈루냐의 독립, 은행 국유화, 범 좌파 연대, 모든 시민의 한 집 가질 주거권 및 정당한 임금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운동을 주창한다. 그가 속한 정치단체는 바르셀로나 지자체 선거에 깊이 관여했고, 수녀회는 그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부모가 심각한 병으로 수발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시행하고 있는 3년간의 안식년을 허락했다. ‘데레사 수녀도 그렇지만 베네딕토 수녀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독자에게는 문제 없겠지만, 이 질문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이들이라면 이 글의 서두조차도 의심해 봐야 한다. ‘여러모로 놀랍고 흥미로운 사람’이 수녀여서는 안 되는가? 수녀가 뭘 어쨌길래.... 이는 그에 대한 정치권의 비난의 맥락, 곧 ‘수녀의 지위를 이용해....’ 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도대체 수녀가 뭘 어쨌다는 말인가.

(다음에 계속)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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