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권순남]

재미나는 경로로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받자마자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주르륵 훑어보는데 뒤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친히 쓴 편지를 바오로 신부가 단순 명쾌하게 풀어내다!’ 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덧붙여 본다. ‘바오로 사도가 친히 쓴 편지를 바오로 신부가 단순 명쾌하게 풀어낸 것을 바오로회 수녀가 설레면서 다 읽고 이 서평을 쓰다!’

▲ "코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정양모, 생활성서사, 2017. (표지 제공 = 생활성서사)
난 평소에도 바오로 사도의 열렬한 팬 중의 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그를 만나 볼 수 있으면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다. 그의 삶을 따라가노라면 “왜 예수는 이 사람을 선택했을까?” 늘 따라붙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여기에 대한 답이 이 책에서 잘 나오고 있다. 매일의 미사에서 가장 빈번히 듣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그 안에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질타가 있고 또한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있고 그것을 확신에 담아 우리에게 우렁찬 선포로 들려 주시는 열정의 사나이, 바오로 사도! 예수 강생 2000년을 지나오면서 하느님의 심복으로 자처하며 예수의 삶과 죽음을 알려 주었던 열정의 심부름꾼. 그는 오늘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여전히 큰 열정 넘치는 스승으로 다가온다.

이 시대의 석학 정양모 신부님께서 바오로 서간, 그것도 당시 코린토 교우들을 향한 바오로 사도의 외침을 하나하나 풀어 그 속뜻을 깊이 전해 주신 이 책을 따라 읽으며 당시 코린토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 당시 코린토라는 도시, 동방의 식민 도시 중 하나로서 행정과 경제 면에서 활력이 흘러넘쳤던 곳, 돈이 흥청거리는 항구 도시와 가까운 도시가 지닐 수 있는 모든 긍정적이고 부정적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그곳, 또한 그곳에 살면서 아직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않았던 예수 제자 공동체들의 나약한 모습들이 겹쳐 그 흥청거림과 비난과 모욕과 대립이 내게 들리는 듯하였다. 오늘 우리의 도시와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 모습이다. 바오로 사도는 몸도 허약하고 언변도 시원찮았지만 남들이 알 수 없는 예수에 대한 확신, 거기다가 이 예수를 알리는 데 목숨을 걸었던 열정의 사나이, 그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예수 제자를 싹쓸이하려던 그의 계획을 뒤집어엎게 되었는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면서 짐작해 본다.

그는 자기의 체험을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면 그의 발걸음을 재촉하여 산 넘고 강 건너 모든 사람에게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의 변화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의 이 편지글 전체를 통해 그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선포한다. 당시 남자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사람들을 현혹시켰고 하느님을 모독했던 한 무리의 두목, 예수라는 청년을 없애 버려야만 천하가 조용해질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든지 그를 이 세상에서 없애 버려야 했던, 그래서 십자가에 처형시켜 죽였던 그 예수가 바로 유대 민족이 긴 세월 내내 학수고대한 그 메시아가 맞으며, 그들은 그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서 바오로 자신에게까지 나타나 구원을 알려 주었다는 그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 그것도 목숨을 걸어 놓고선 말이다.

그는 스승 예수의 유언대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가 명령한 것을 가르치라고 한 그 숙명의 사명을 완수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코린토 교우들, 쉽게도 바오로 자신의 가르침을 버리고 자기를 모욕하고 다른 예언자들이나 현혹하는 자들을 만나 배신했던 그들에게 공동체 분열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가 코린토 공동체에 머물러 가르쳤던 것에 대한 여러 질문에 그리스도 신앙인의 관점에서 답을 주면서 생동감 넘치는 그의 의견을 피력한다.(1코린) 자기를 배신했던 그 모욕감을 극복하며 눈물로 편지를 써서 호소하며(2코린 10-13장) 그 편지를 받은 사람들과 극적으로 화해하여 그 기쁨이 지금 나에게까지도 전해 오는 화해의 편지,(2코린 1-9장), 이 모든 편지글에 감동과 아름다운 내용이 흘러넘친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이 다 그렇지만 코린토에게 보낸 편지글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대입시켜도 장소와 사람들만 달라질 뿐, 문제는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바오로 사도가 그렇게 중요하게 마음에 간직했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초월자이신 하느님을 바오로 본인이 잘 감지할 수 없으니 그 임이 사도에게 오실 수밖에 없노라고 설파하시며 철저한 예수의 영, 즉 성령께 의지하며 복음 선포자로서의 확신의 길을 갔던 그의 귀감에 시공을 뛰어넘는 공감을 하였다. 주옥 같은 그의 편지글은 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신앙과 복음 선포 열정이 부족한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호통으로 들렸다. 정양모 신부님의 아기자기한 예들과 적절한 시까지 첨가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지루한 줄 모르고 소설 읽듯이 읽어 갈 수 있게 해 주셨다. 오래간만에 복음 선포의 핵심을 다시 되새기게 하고 미지근한 복음 선포의 열정에 대한 나의 태도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책 한 권, 아니 나의 스승 바오로 사도의 그 애타는 호소와 가르침을 확실히 듣게 해 주었던 책, 졸고 있던 나를 깨워 주었다. 이 나른한 봄날에, 이 어지러운 시국에 나를 흔들어 깨웠다. 다시 신앙의 여정을 계속하며 나의 코린토를 향하여 나아가야겠다.

 
권순남 수녀(가타리나)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대구대교구 내당 성당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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