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평신도영성연구소 수련 모임

‘신산스럽다’는 말이 떠오를 만큼 이날 저녁 취재는 가는 길이 힘들었다.

이미 퇴근길이 된 도로는 곳곳이 막혔고, 목적지인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는 마치 평신도 생활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겠다는 듯 자영업이 즐비한 경기 고양의 상가 모퉁이에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아 주차를 마친 뒤 조용한 연구소에 도착하니 약속보다 30분이 늦은 저녁 7시 30분이었다.

기도실에서 사람들이 뭔가 낭독하는 소리가 들렸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들어가 보니 14명 정도 되는 남녀가 모여 논문 1편을 돌려 읽는 중이었다.

최근 의정부교구에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의 ‘평신도 영성수련’ 모임이다. 직업과 연령대가 다양한 중년 이상 10여 명의 신자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3시간씩 수련하고 있다. 연구소 공식 출범에 앞서 3년 전부터 이어진 모임이다.

박문수 소장(프란치스코)이 참여하고 박현 부소장(베드로)이 회장도 맡고 있는 이 모임은 1시간의 공부에 이어, 2시간 동안 향심기도,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소감 나눔으로 진행된다.

5년째 가톨릭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지만, 향심기도나 렉시오 디비나는 사전에 나오는 개념으로만 알고 있을 뿐 직접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체험하기로 했다.

모임에서 설명해 준 향심기도 방법의 기초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신자들이 흔히 말하는 ‘분심’)은 흘려보내는 것이다.

“호흡할 때 가장 자극되는 신체 부위가 어디에요?”

기자의 경우 콧등 같았다. 대답을 들은 박 소장은 두 글자 정도로 된 ‘거룩한 단어’를 하나 정하고, 머릿속이 생각으로 복잡해질 때마다 그 단어를 콧등 위에 얹어 놓는다고 여기라고 조언했다.

기도실 가운데 촛불만 두고 조명을 어둡게 한 뒤, 향심기도는 20분씩 두 번 이어졌다. 그 사이에 5분 정도 일어나 걷는 시간이 있었다. 걷는 것도 자신의 몸에만 집중하며 생각을 비우는 일종의 기도이며 수련이었다.

▲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의 기도실. 평신도 영성수련 모임 참가자 10여 명이 모여 논문을 연구하고 향심기도 등으로 마음을 단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강한 기자

향심기도나 렉시오 디비나를 기도 방법으로 정한 모임은 주보에 끊임없이 소개되고, 교계 신문에도 체험기가 실리거나 참가자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정말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경험하고 효력을 느끼고 있는지는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개인적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미사 영성체 뒤 묵상은 너무 짧고 형식적일 때가 많았고, 나의 기도는 주로 하느님에게 무엇인가 이루어 달라고, 도와 달라고 청하는 기도였다. 짧은 시간, 간청과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세례명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다.

이에 비하면 향심기도는 자꾸 마음을, 생각을 비우도록 하는 기도라는 점에서, 기자에게 익숙했던 기도 방법과 방향이 다르다. 한 차례 20분 어둠과 침묵 속에 호흡에만 집중하는데, 실제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7분 안팎이었던 것 같다. 그 틈새를 내일 출근해 일할 걱정, 돈 걱정, 학업 걱정.... 온갖 걱정들이 파고든다.

너무 많은 물건들과 데이터를 이고 지고 살지 않기 위해 자꾸 비우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쉬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우편함으로 무언가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 모임을 마치며 이런 소감을 말하자, ‘향심기도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기도 방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앞서 말했듯, 향심기도와 렉시오 디비나는 한국에도 소개되기 시작한 지 오래된 방식이다. 다만,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의 독특한 점은 이 2가지 기도 방식을 ‘평신도 영성’에 대한 합리적 연구와 결합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인다.

향심기도에 앞서 참가자들이 소리 내어 돌려 읽은 글은 2003년 <가톨릭신학과사상>에 실린 전영준 신부의 ‘교회 문헌을 통해서 살펴본 평신도 영성’이었다. 국내에서 평신도 영성을 체계적으로 다룬 논문으로는 드문 사례라고 했다.

이 글을 읽고 한 여성 참가자는 평신도는 세속의 전문분야에서 나름의 지식, 지혜를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모두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하느님 백성이라는 점에서 평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되새겼다고 한다.

한 여성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 평신도에게도 강조되는 ‘성화 소명’이 우리 역사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대해 박문수 소장은 “불과 50년 전 공의회 때 와서 교회가 새로운 자각을 이룬 것이고 그 전 1950년 동안 쌓인 문화는 남아 있다”며 “평신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삶을 통해 증거하고 모범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모임이 소중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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