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권오광 대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과 ‘가난한 이들의 교회를 이끌 새 추기경 청원서명’을 이끌어낸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산파 역할을 한 단체가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대표 권오광, 이하 천정연). 이 단체는 가톨릭농민회, 우리신학연구소,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목포연합 등이 참여한 평신도 단체다. 현재는 단체뿐 아니라 개별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된 천정연은 그동안 중요한 시국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입장을 발표하고, 한국 가톨릭의 진보적 평신도들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천정연은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뿐 아니라 4대강 사업 반대운동,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과 밀양 송전탑 문제,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쌍용차 대한문 미사에도 동참했다.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에 항의하는 ‘천주교 시국선언’을 한국 천주교에서 제일 먼저 발표한 것도 천정연을 비롯한 평신도 단체들과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사회사목부 등이었다. 이들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민주주의에서 가장 신성하게 보장받아야 할 국민주권의 기본인 선거가 탐욕에 눈먼 정치권력에 의해 더렵혀진 사건”이라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후 사제들의 시국선언운동이 잇따르자, 다른 평신도 단체들과 결합해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조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결성된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에서도 산파 역할을 자임했다. 한편 천정연은 사회적 사안뿐 아니라 교회쇄신 차원에서 가톨릭중앙의료원(CMC)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구명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 단체 중심이었던 천정연이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촛불평화미사를 중심으로 개별회원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자료사진)

천정연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되면서,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등과 함께 ‘시국회의’를 구성해 매주 토요일마다 2년여 동안 촛불미사를 봉헌해 왔다. 주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미사를 봉헌했는데,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기륭전자 앞에서 세 차례나 미사를 봉헌하고, 국회 앞이든 어디든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 곳에서 길거리 미사를 봉헌했다. 그러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문정현 신부가 참사 현장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게 되면서, 여기에 합류했다.

단체 중심이던 천정연이 개별회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월에 열린 총회 이후였다. 이 회의에서 단체 이름은 당분간 유지하지만, 좀 더 많은 평신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천정연의 문을 개방한 것이다. 그 후 천정연은 월례 미사와 수련회를 통해 ‘여성 전례’ 등 공동체 전례를 개발하고, 사제들을 초대해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의 동반자 의식을 고취시켜왔다. 천정연은 참여하는 단체의 성격에 따라 여성, 노동, 농민, 환경 문제와 신학 등 다양한 활동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들의 참여를 얻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천정연은 기본적으로 ‘진보적 가톨릭 신자들의 결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최근 결성된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하 가톨릭행동)과 차이가 있다. 사회적 관심을 지닌 사제운동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각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서로 섞이면서도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듯이, 천정연과 가톨릭행동의 위상도 조금 다르다. 교회 공식 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와 SNS를 기반으로 하는 네크워크 방식의 가톨릭행동은 좀 더 넓은 대중적 참여를 이끌며 이슈를 중심으로 결합되어 있다면, 정의구현사제단처럼 천정연은 좀 더 자유롭고 급진적인 활동을 전개해 왔다.

▲ 권오광 천정연 대표는 사제, 수도자들과 평신도가 동반자 관계를 맺고 사회복음화와 교회쇄신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한상봉 기자

권오광 천정연 대표는 “좀 더 급진적인 영성을 통해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는 평신도 단체”라고 천정연을 소개했다. 가톨릭행동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권 대표는 “가톨릭행동은 대중성에 기반해 움직이지만, 천정연은 좀 더 선도적인 입장에 서고자 한다”면서 “사회복음화뿐 아니라 교회쇄신을 위해서도 헌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천정연 개별회원의 경우에는 1년 전 처음 페이스북에 천정연 그룹을 개설한 뒤에 200여 명 선에 머물던 가입자가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선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알려져서 현재 1,990명 정도가 가입했다고 전했다.

교회 내 진보적 평신도들이 참여를 희망하는 천정연은 ‘평신도 활성가’ 양성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다른 평신도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천정연은 현재 반상근인 사무국장을 상근 체제로 돌리기 위해 재정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청년 활성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학습 소모임을 새롭게 계획하고 있다.

권오광 대표는 사제들에게 “재정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평신도 운동이 성장하도록 지지하고 영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의구현사제단이 전면에 나서서 이슈파이팅만 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가톨릭교회의 진보적 가치를 본당에서 평신도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제들이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며 그저 ‘우리를 따라오라’는 식으로 나서는 것보다는 평신도들의 의식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평신도 신학자 양성이나 평신도 영성에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한편 수도자들과 관련해서 “그동안 천정연은 수도자들과 동반자 관계를 잘 유지해 왔으며, 특히 수녀님들이 주체적인 의식 변화를 일으키고 계신 것 같아 다행”이라며 평신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질 것을 기대했다. 특히 예수회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등 남자수도자들이 평신도 영성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평신도에게도 권오광 대표는 “평신도 의식이 깨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변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평신도 의식이 깨어나고, 사제 및 수도자들이 ‘사회복음화’와 ‘교회쇄신’을 위해 일하는 과정에서 상호 존중 속에서 연대하고 지지하는 동반자적 관계가 더욱 깊어지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꺼내 놓았다.

* 천정연은 재정사업을 위해 현재 ‘설맞이 곶감 판매’를 하고 있다.
구입을 원하시는 분은 010-8979-1818, 또는 010-5635-3247로 주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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