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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해고[장영식의 포토에세이]

부산지하철 노동자 중에는 세 번의 해고 통지서를 받은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제 그는 고도리에 선 그 끗발의 정상, 현실에서는 결코 맞이해서는 안 될 3(해解)go를 불렀습니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한 직장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당한 것입니다. 이영호 씨(59)는 1985년 부산지하철에 1기로 입사해서 거듭되는 투쟁과 해고 속에 살아온 노동자입니다. 처음에는 부산시 공무원 소속이었지만, 1987년 ‘부산교통공단법’에 의해 공무원 신분은 사라지게 됩니다.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이 공무원 신분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바뀌게 되면서 신분에 대한 우려와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1988년 2월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 내년이면 정년 퇴직을 앞둔 부산지하철 노동자 이영호 씨는 부산교통공사의 구조조정안을 반대하고 파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한 직장에서 세 번의 해고를 당했습니다.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의 역사는 인력 감축이 중심이 된 구조조정안에 맞서 싸운 투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장영식

1993년 부산지하철노조는 4대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노동 운동의 전환을 이루게 됩니다. 1994년 3월 16일 부산지하철노조는 서울지하철과 철도기관차협의회와 전지협(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을 결성합니다. 전지협에 의한 6월 파업으로 10명의 노조 간부가 구속되고, 이어 13명이 해고됩니다. 당시 역무지부장이었던 이영호 씨 역시 첫 구속과 해고를 경험하게 되고 현장은 급속히 얼어붙었습니다.

그는 1997년 복직되었지만, 다시 1998년에 두 번째 해고를 당합니다. 1997년 연말, 해고자들은 1994년 파업 당시 위원장이었던 강한규 씨를 포함한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복직하게 된 것입니다. 3년여 만에 복직한 이영호 씨는 복직 뒤 1년이 안 돼서 다시 부산지하철 파업으로 해고됩니다. 당시 사측은 32명에 이르는 대규모 해고를 자행합니다. 이즈음 민주노총 소속 공공부문 노동조합 상급조직들이 통합해서 공공연맹이 만들어지고, 이영호 씨는 2년 동안 공공연맹 선전국장으로 파견을 가게 됩니다.

   
▲ 시민의 공공재인 부산지하철을 안전보다는 이윤에 중심을 둔 부산교통공사의 구조조정안은 즉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장영식

이영호 씨는 2007년 5월 파업투쟁의 결과로 다시 복직하게 되지만, 2017년 부산교통공단의 구조조정안을 반대하고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세 번째 해고됩니다. 내년이면 정년을 맞게 될 노동자가 세 번째 해고통지서를 받게 된 것입니다. 회사의 구조조정을 반대하고, 파업을 했다고 해서 노동자들을 중징계하는 부산교통공사의 노무관리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부산지하철 노동자의 해고의 역사는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부산지하철은 매일같이 크고 작은 사고가 나고 있습니다. 부산 시민들은 안전한 지하철을 요구하고 있지만, 부산교통공사는 무인운전과 무인역을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부산교통공사가 마련한 ‘새창조 프로젝트’라는 구조조정안에 의하면 10년 동안 숙련된 노동자 1000명을 감축하겠다는 것입니다. 부산지하철의 운영비를 아껴 부산교통공사의 적자를 메우겠다는 것입니다.

   
▲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이 부산지하철노조 이의용 위원장 등을 만나 격려하고 있는 모습. ⓒ장영식

시민의 공공재인 부산지하철은 안전이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부산교통공사는 크고 작은 사고를 숨기는 데 급급하고 있습니다. 기관사가 자살하고, 역내 환풍기가 떨어지고, 정전사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숙련된 노동자들을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입니다. 부산 시민들은 부산지하철이 ‘부실철’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부산시와 부산교통공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노조간부들에 대한 중징계를 백지화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조정안을 폐기해야 할 것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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