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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님 같은 소녀상[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부산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에는 매일 많은 시민이 찾아옵니다. 또한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그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쌓여 갑니다. 부산 동구 산복도로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는 세상을 먼저 떠난 누나를 그리워 하며 소녀상을 찾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벌러 배를 타고 가신 누나의 슬픈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소녀상을 통해 누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소녀상은 상징적 의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누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영식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을 찾았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듯 할아버지는 까만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소녀상을 바라보며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42년, 누나는 열일곱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지 않으면 죽는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소녀들은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배를 탔다고 합니다.
그 배에는 2700명의 조선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배에 이렇게 많은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는 전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태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 이상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소녀들이 끌려간 곳은 돈을 벌기 위한 공장이 아니라 전쟁터였습니다.
전쟁터로 끌려갔던 소녀들은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제적으로 일본군들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소녀들 중에 병이 나거나 임신을 하게 되면
치료도 없이 방치되거나 버려졌다고 합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열다섯이었습니다.
지금 생존하신 할머니들의 평균 연세는 89살입니다.

83살의 할아버지는 누나가 살았으면 94살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1급 시각장애인인 할아버지는 누나를 그리워하며 소녀상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으며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며 눈물을 적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눈물 뒤로는 일제강점기 때의 아픔과 슬픔이 묻어 있었습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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