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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그 ‘위험한 기회’의 시간[서평 - 강변구] "4050 후기 청년", 송은주, 더난출판, 2017

지금 갓 40대가 된 나는 20대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그랬듯이 백창우의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그러나 정작 서른이 되어서 그 노래를 다시 부를 엄두를 내지는 못 했다. 기껏 서른이 되었지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어야 할지 여전히 어색할 뿐이고, “젊은 날의 높은 꿈”이 겸연쩍을 만큼 안정적인 사회적 위치를 얻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서른이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20대 ‘초기 청년기’의 불안이 계속 연장되고 있는 상태로 30대를 맞이했다. 하긴 20세기의 시작은 1901년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8년이라 하듯이 30대 또는 40대의 시작은 숫자로서의 나이가 아닌 생애 주기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는 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 "4050 후기 청년", 송은주, 더난출판, 2017. (표지 제공 = 더난출판)
저자는 중년을 ‘후기 청년’으로 명명한다. 중년이 청년과 노년의 가운데로서 생의 정점을 지나 점차 하강하는 시기로 보아 온 기존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평균 수명이 예전보다 크게 늘었기 때문에 40, 50대가 더 이상 노년으로 이어지는 안정적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중년의 시기를 그냥 사춘기도 아닌 “슈퍼 사춘기”라고 부른다. 그만큼 생의 격변이 일어나는 시기라는 의미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이제까지 살아온 시기를 반추하며 인생의 다음 시기를 준비한다. 저자는 20대, 30대에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회적 위치를 어느 정도 갖추기 위해 공부하고 사회에 적응하느라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40대 이후에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정말 늦기는 늦었다. 그러나 늦었다는 것과 이미 끝났다는 것은 다르다. 이불을 박차고 뛰어나가면 지각을 면할 수는 있는 시각과 이미 출근을 포기하고 어떤 핑계로 반차를 쓸까 머리를 굴릴 시각은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늦었다는 것은 마지막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고생스럽게 30대를 지나 이제 겨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는 중년에는 새로운 변화를 꿈꾸기보다 억누르는 편이 안전하다. 불쑥 불쑥 치밀어 오르는 다른 삶에 대한 충동은 민란처럼 격렬하다. 진압에 성공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뿌듯하기는커녕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1970년대 반 협박조의 가족계획 표어도 있었지만, 이 시대의 중년은 덮어놓고 회사만 다니다 보면 정말로 초라한 노년의 삶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노년 파산이나 노인 지옥이라는 말은 생산 가능 인구가 더 이상 노령층을 떠받칠 수 없는 시기가 된 한국 사회의 가까운 미래일지 모른다.

그러나 중년에 맞이할 새로운 인생의 기회는 ‘호기’가 아닌 ‘위기’임이 분명하다. 이때 위기는 부장님이 자신의 아재개그를 보고 웃어 주는 부하 여직원에게 힘을 얻어 급기야 데이트 신청을 하고 말았다는 그런 통속적 상황이 아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좋은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기회이기에 가능하면 도전해 볼 필요가 있는 순간이다. 사실 이 책에도 중년에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일군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하나같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책의 주제에 맞는 사례가 선별되어 있는 것이지 수없이 많은 사람이 역시 실패했을 거라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목표가 단순하게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한다, 그래서 살고 싶은 인생을 산다는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중년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잘 모르겠다. 청소년들에게 너희는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 라고 재촉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 그들은 일보다는 아직 놀고 싶은 것도 다 못 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을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은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이 원하는 것에 따라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인생은 내내 휘둘려 간다. 그럼 희망이 있을까. 저자의 이 문장을 보자.

“....내면의 좌절과 불만이 바로 변화를 갈구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자신의 새로운 인생행로를 개척하는 에너지로 치환될 수도 있다....” 내 마음 속 깊이 패인 좌절과 불만으로 생의 물길이 흘러든다. 물이 기필코 낮은 곳을 향해 흐르듯 삶은 결국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물길을 막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고 무너뜨려 보자. 그렇게 하면 고여 있던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강변구 
출판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3살 난 딸과 함께 지내는 새내기 아빠랍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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