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너에겐 노조가 필요해", 김유미, 만화 반지수, 사회운동, 2016

내가 일하는 출판 단지에는 갈대가 많았다. 단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샛강과 주변 둔덕에 빽빽하니 자라 있었다. 단지를 조성하면서 일부러 심은 건 아닌 듯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이리저리 일렁이면서, 샛강의 갈대들이야말로 이곳의 원래 주인이었음을 말해 주었다. 그 갈대들이 요즘은 많이 안 보인다. 샛강 둔덕의 갈대를 제초기로 깎아 내고 주변 잔디밭과 이어지는 넓은 공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속에서 넓게 펴져 얽혀 있는 뿌리줄기에서 매년 새 줄기가 나오고, 사람은 또 그것들을 밀어내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런 풍경을 보면 산업 단지라는 장소 때문인지 그 갈대들이 꼭 우리 노동자들 같았다. 신경림 시인의 시구처럼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리없이 조용히 땅속에서 연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갈대처럼 약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가장 최선의 조직이다. "너에겐 노조가 필요해"(사회운동)는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온 12개의 노조를 만나고 그 사연을 정리한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늘 보는 무표정한 마트 계산원, 학교 급식실에서 국을 떠 주는 조리사 아주머니, 자동차 부품 공장에 다니는 아저씨, 인터넷 설치 기사님들같은 매일 지나다니면서 보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평소 뉴스나 신문을 보면 붉은 머리띠를 매고 똑같은 조끼를 입고서 넓은 바닥에 오와 열을 맞추어 앉아 군가 비슷한 옛날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나온다. 혹은 경찰이나 용역과 몸으로 싸우는 모습, 또는 광화문 전광판, 송전탑 같은 고공농성을 하는 극한의 모습으로 비친다. 이 두 모습이 원래 한 가지 사람이라는 사실을 좀체 받아들이기 어렵다.

▲ "너에겐 노조가 필요해", 김유미, 만화 반지수, 사회운동, 2016. (표지 제공 = 사회운동)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이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법에는 나의 권리라고 나와 있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른 문제다. 법을 만들기 위해 투쟁이 있었듯이, 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또 다른 투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이 자본을 위해 ‘반공’이라는 무기로 노동자를 너무나도 억압해 왔고, 그 결과 일터의 풍경은 살벌하기 짝이 없어졌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바로 일터를 바꾸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일터를 바꾸는 일은 나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기에 한데 뭉쳐서 대응할 수밖에 없고, 교섭권을 보장하는 노동조합이 그 당연한 귀결이 된다. 일터의 문제는 대부분 노사 간의 문제이고 이것은 법적 교섭권을 가진 노동조합이 아니면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사연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자기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이렇게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든 노조나 노동운동이 이렇게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용기를 내는 만큼 자유로워진다면, 내 용기가 어느 만큼인지 인정하고 일단 그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노동조합은 꼭 파업을 하고 집회를 할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소에 동료 중 누가 경조사를 맞았을 때 개인이 아닌 단체의 이름으로 서로 챙겨줄 수 있고, 회사 분위기가 빡빡할 때 노조 회식을 해서 서로 긴장을 푸는 방편도 된다. 이런 일상적인 어울림과 친근함이 있다면 임금협상, 부당해고 같은 중요한 문제에 서로 힘을 모을 수 있다. 노동조합은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큰 압력을 준다. 그래서 노조가 없을 때 함부로 자행되던 일들을 미리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

회사에서는 일보다도 사람에 치이는 게 더 힘들다고 한다. 기업이 이윤을 더 내기 위해 현장의 작업조직이 경쟁적이고 서로 이해관계로 맞물리게 설계해 놓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의든 타의든 회사에서 고립되는 순간 가장 취약해진다. 회사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간파한다. 노조는 사람과 사람이 엮어 내는 연대의 그물망으로서 임금 노동자가 가지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그리고 연대의 그물을 짜는 것은 뜨개질을 하듯이 평소에 조금씩 타자들을 연결 짓는 작업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파업만큼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악의 평범성’이 맞다면, 지고의 선 역시 평범한 모습이 아닐까. 우리 아파트 앞 마트 계산원 아주머니가 보여 주는 표정, 하나는 바코드를 찍는 무표정한 모습이고 또 하나는 내 딸을 보고 활짝 웃는 표정, 그 둘을 보면 자본에 종속된 노동자와 삶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당연하게도(!)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강변구 
출판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딸이 태어난 새내기 아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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