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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요새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이다[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0]
김혜율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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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8  14: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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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모차르트나 베토벤. 이들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여러 음악가들. 그들과 내가 밤늦도록 만나고 있다면? 그래, 그거. 유튜브가 있으므로. 만일 좋아하는 이의 연주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리 주문을 넣어야지. 하루라도 빨리 듣고 싶어서. 앨범 시디를 받으면 겉 비닐을 뜯는데 배고플 때 컵라면 비닐포장 뜯을 때의 흥분감과 기대감 저리가라다. 반짝이는 시디가 모습을 드러내면 불면 떨어뜨릴세라 만지면 지문 남을세라 조심스럽게 플레이어에 넣고 숨을 고른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손에 쥐고 있는 앨범 자켓 구경하는 재미도 얼마나 큰지. 이런 음악, 저런 음악 많이도 들었지만 결국에는 지친 내 마음을 치유하기로는 클래식이라 부르는 것 만한 게 없다. 그래서 고전은 진리구나 한다.

하지만 내겐 음악말고도 나의 거친 마음의 결을 부드럽게 쓸어 주는 가족이 있다. 아이들이 와아 하고 놀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잠깐이나마 시름이 가신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남편과 같이 보면 더할 나위 없다. 티비 드라마에서 연출되는 행복한 가정의 흔한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무슨 일인지 좋다고 깡총 대는 아이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향한다. 그리고 그 둘은 아니나 다를까 손을 잡는다. 손의 표정에서 동지애가 묻어 난다. 아니면 남편이 이글이글 타닥타닥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눈길로 아내를 쳐다보며 ‘바로 우리 둘이 저 애들을 낳았지 않소. 당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오.’하며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는 버전도 있다. 옆에서 아이들은 계속 꺅꺅 대고 있고.

   
▲ 아버지에게 커피 문화 전수받는 욜라. ⓒ김혜율
뭐 다 좋다. 그런 장면도 가끔은 필요하다. 하지만 재능 있는 드라마 작가라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집만 하더라도 나와 남편은 다섯 사람은 족히 들어갈 만큼의 거리를 두고 아이들 노는 모양을 각자 감상한다. 아이들 재롱이 귀엽고 색다르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허헛, 참.’ ‘아니, 쟤 좀 봐.’하는 감상도 교환한다. 그러다 남편이 핸드폰을 들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그 순간을 기록하면 나는 이때가 기회다 하면서 못 다한 설거지나 빗자루질을 하기 위해 서둘러 퇴장한다. 아, 아직 카메라 안 꺼졌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남편이 놀이에 합류하는 소리가 들려 온다. 아이들 함성소리는 더욱 커지고 웃음소리는 숨 넘어가게 변한다. 아이들이 제 아빠 등을 암벽등반 하듯 오르면 남편은 아이를 자신의 등에서 뜯어내 이불 위에 내다 꽂는 놀이를 한다.

등을 기어오르는 아이들을 차례차례 제압하는 남편. 이어지는 아이들의 비명소리! 가서 아이들을 구해 줘야 할 것 같지만 일단 설거지를 마저 하자. 하지만 비명이 울음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젖은 손을 닦고 달려가 보니 체력이 바닥난 욜라가 무리수를 두다가 그만 낙등(등에서 떨어짐)하여 억울해 우는 것이라 한다. 승부욕이 강한 메리는 아빠한테 지고 약이 오르다 못해 분해서 ‘아빠 미워! 다시는 안 놀거야!’ 하며 울부짖는 중이고. 행복하고 단란했던 한 가정이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런데, 우는 아이들 틈에서 남편이 웃고 있다.(클로즈-업!) 왜냐면 남편은 아이들과의 내기에서 이겨서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대중적 스토리는 이럴 때 아내가 “적당히 좀 하지. 왜 애를 울리고 그래욧!”하고 무슨 괴물로부터 막아서듯 아이를 감싸 안으며 남편을 나무란다. 그러면 남편은 ‘내가 뭘.’ 항변하며 뒷머리를 긁다 주방에 물을 마시러 가 버리고.

하지만 보다 실험적인 독립영화 속 주인공인 아내는 남편에게 미소로 화답한다. 얇은 한숨은 표가 나지 않는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주방으로 돌아간다.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아이가 울음을 그치자마자 이번엔 남편이 아이를 거꾸로 잡고 흔든다. 아이들이 대롱대롱.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말리는 게 엄마의 도리일까 고민하며 얼굴이 경직 될랑 말랑 하는데 너무 재밌어서 침까지 흘리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 깨끗이 등을 돌린다. 등을 돌린 채 이 놀이를 끝장낼 수 있는 밥을 짓는다. ‘밥 먹자’하면 남편이 먼저 달려올 테고 줄줄이 아이들이 뒤따라올 것이므로. 이것은 남편이 아이와 놀아 주는 방식을 존중하고 일절 간섭하지 않기로 한 아내의 고귀한 결심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흠, 주인공인 내가 택한 노선이다.

   
▲ 복싱 글러브를 끼고 아빠와 노는 욜라. ⓒ김혜율
길들여지지 않은 남자라면 아빠가 되어도 멋있게 말해서 야생마 기질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나쁘게 말하면 아이랑 수준이 동급이란 것인데 노는 것을 보면 자기가 더 재밌어서 낄낄 대고 아이를 놀려 먹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다 내기를 하면 이기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 보기로는 왜 저러나 싶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빠와 노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가 된다. 내가 아무리 그림책을 재밌게 읽어 열 번 아이들의 지지를 받으면 뭐하나, 남편이 한 번 아이를 공중에 던지고 받아서 자아내는 환호를 못 이기는데. 내가 백 번 쎄쎄쎄를 해 주고 물감을 풀고 색종이를 접으면 뭐 하나, 남편이 아이랑 씨름 한 판 해서 배꼽 빠지도록 웃기는 데 못 미치는데. 그도 그럴진대 ‘아빠와 노는 것이 아이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라는 주제로 전문가의 견해를 찾아보면 입이 더욱 벌어진다. 아빠와 함께 논 시간이 많은 아이일수록 낯가림을 덜하고 언어발달이 빠르고 지능이 높다더라 하는 것부터 변화에 잘 적응하고 스트레스에 강하며 사회성이 높다던가, 더 나아가 수학이나 과학 외 축구 야구마저 잘한다거나, 후일 범죄를 덜 일으키며 잘하면 기업을 크게 일으킨다는 등의 연구통계결과가 수두룩하다. (각자 찾아보시기를....)

때문에 엄마는 자신의 방식만이 아이에게 최선이라고 믿으며 아빠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이 아이에게 뭐든 했다 하면 냉철한 평가와 지적보다는 우선 칭찬과 인정을 해 주잔 말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남편이 아이의 바지를 입히고 나면 바지 가운데 줄이 항상 아이의 오른쪽 엉덩이쪽으로 돌아가 있는고로 나마저 오른쪽으로 쏠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이 거슬릴지라도 우선 “잘 입혔네. 고맙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실제로 남편이 바지교정술을 깨치기 이전에 아이가 먼저 바지를 추스르며 바로 입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과오처럼 보이는 남편이 저지르는 많은 일이 이처럼 별일 아니게 넘어가고 결국엔 아이에게 해가 아닌 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편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때로는 이도 저도 아닌 특별 보너스 같은 일도 해낸다. 홍차를 찻주전자에 우려 잔에 따라 홀짝이며 마시곤 하던 남편이 아이들에게 차 문화를 전수해 주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무예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못한 남편이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브라질 주짓수라는 꽤나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운동이라는데 남편의 의욕이 상당하다. 욜라가 꽤액꽥 하는 비명을 질러 달려갔더니 남편이 욜라를 상대로 ‘암바’를 하고 있었다. 도장에서 배운 동작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욜라는 그런 제 아빠 다리 사이에 끼여 살려 달라고 파닥 대며 머리만 겨우 겨드랑이 사이로 내밀고 있었다. 저러다 애 잡겠네. 숨은 쉬는 거야 하고 살피니 정작 욜라 눈빛은 ‘엄마, 도와줘.’가 아니라 ‘엄마, 너무 재밌어.’였다. 그 옆에서 메리가 다음 스파링 선수로 안달을 내며 초조하게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에든 끼어들기에 능한 로가 그 다음인 것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요새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음악만이 아니다. 상상 이상의 호흡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남편 또한 나를 위로한다. 그런 일상에서 위로를 웃도는 용기를 낸다. 더 나은 희망을 찾는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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