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2]

누구나 알 듯이 2017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내 일상은 어두컴컴 지리멸렬하다. 뉴스에선 날이 맑아 해돋이가 장관이겠다고 예보했지만 나는 해돋이를 못 보았다. 아침에 떡국 먹으러 어머님 댁에 일찍 갈게요 했으면서 눈을 떠 보니 아침 9시였다. 푹 자고 일어나 보니 그 시간이었다. 나보다 10분 먼저 일어난 남편은 ‘에이 참, 너무 늦게 일어났네.’라고 중얼거리며 난장판인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루 전에 시댁에 보내 놓고 어젯 밤 둘이서 무얼 했기에? 우린 그날 저녁 시내로 마실을 나가 깔끔하게 삼겹살 이인분을 나눠 먹고 포장마차에 들러 오뎅 꼬치를 두 개씩 먹은 다음 삼거리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나는 걸 목격한 뒤 밤 열한 시가 되기도 전에 집에 들어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다른 건 안 했다. 까무룩한 잠.... 아마도 우리는 각자 암묵적으로 해돋이고 뭐고 새해고 뭐고 떡국이고 뭐고 그간 누적된 피로를 푸는 것이 우선이었던 같다. 하지만 피로는 풀렸는데 기분이 정말 쑥개떡 같았다. 참고로 우리 동네 할머님들 기준으로 게을러 터져서 아침에 일어나지를 않는다고 욕을 할 때 그 기준 시각이 오전 7시다. 그럼 정초부터 9시에 일어난 나는 나가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눈부신 햇살에 으아악 하고 고통스럽게 스러져가는 드라큘라 백작처럼 새해 아침 햇살을 받고 죽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 세 아이들. 포토제닉은 누구? ⓒ김혜율

내겐 돌 지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가 있다. 아이를 하나 키워 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정말 아이 하나도 벅찬 게 인생이다. 아이는 크면 클수록 기쁨과 동시에 엄마에게 새로운 고민을 끊임없이 던져주는 존재니까. 현자와 범인을 여기서 가르자면 아무리 소소한 기쁨이라도 크게 크게, 그 어떤 절망적인 고민 앞에서도 담대해지고자 하는 자가 현자요, 그렇지 않고 눈앞의 기쁨을 놓치고 고민을 크게 보는 자가 범인이겠다. 나는 범인 중에서도 상범인으로서 늘상 고민 많은 사랑하는 내 친구의 든든한 육아 빽이 되고 있다. 친구가 내게 육아상담을 해 오면 나도 잘 모르지만 웬만한 건 다 아는 척 하면서 내가 겪고 보고 들은 육아지식을 짜내어 친구를 안심시킨다. 육아는 무엇보다 자신감이기도 하니까.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친구는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친구는 내게서 자기보다 앞서서 세 명이나 애를 키우는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다 잘 될 거라고.... 지나가는 것이니 조금만 덜 걱정하라는 다독임이 먹히는 것이다. 친구는 안도하면서 상황을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고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다 괜찮다는 결말에 이른다. 참 용하기도 하다. 말하자면 나는 친구에게 잘 듣는 위약(僞藥)이다.

역시 친구가 이번에도 내게 일주일이 넘도록 하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돌쟁이 아기가 요새 통 이유식을 안 먹는단다. 아이에게 밥만 줬다 하면 밥을 집어 던지고 얼굴에 바르고 손으로 쑤시기만 할 뿐이니 대체 아기에게 어떤 음식을 해 줘야 할지 걱정한다. 나는 친구에게 요새 굴이 제철이라며 굴의 영양학적 정보와 함께 무를 총총 썰어 넣고 굴국을 끓여 보라고 조언한다. 그 국을 먹이면 분명 아이의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올 것이라고 느낌표를 가득 넣어서. 용기를 얻은 친구는 굴국 대신에 그 다음날 아이에게 ‘한우퀴노아리조또’와 ‘한우파인애플덮밥’을 먹였고 아이가 밥그릇을 뚝딱 비웠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실 친구의 아기와 동갑인 우리 로는 그날 아침으로 홈런볼을 먹었다. 그것은 내가 만든 수제 간식이 아니고 슈퍼에서 네 묶음에 할인한다기에 사 본 H제과의 그 홈런볼을 말한다.

▲ 병원대기실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로. ⓒ김혜율
물론 그날은 조금 특수한 경우긴 했다. 아침 일찍부터 상수도가 막혀 물은 끊겼지, 옆집에 가서 지하수라도 한 양동이 얻어 와야 할 남편은 이른 새벽에 집을 나갔지, 어제 깜깜한 썬글라스를 끼고 장난치던 로가 그만 앞을 못 봐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팔이 부러졌는지 병원에 가 봐야겠지, 근데 애 셋을 내가 다 데리고 가야겠지, 헌데 시내에 있는 소아과는 9시부터 진료인데 환자가 미어터져 새벽 6시에 빌딩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문 열 때 들어가 병원 복도 진료예약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겨우 11시쯤에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하지, 밥은 하기 싫지 해서 나는 그것을 주었다. 하지만 병원 대기실에서 홈런볼 아침을 냠냠 먹은 로는 이가 썩고 영양불균형에 위가 각종첨가물로 오염되는 와중에서도 의사의 진찰에 순순히 응했고(웬일로) 심층 엑스레이까지 잘 찍고 돌아왔다. 로는 콧물감기가 걸린 것 말고는 다행히 팔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새해를 어둡게 하는 것이 혹시 세 아이들 때문인가. 때는 마침 아이들의 삼 주간의 방학이라 그럴싸한 가설이다.

아이들은 늘 그렇듯 망둥이처럼 날뛴다. 심성이 못된 아이들이 아닌데 엄마 골탕먹이는 짓만 골라 한다. 그 수준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첫째, 욜라의 괄약근 해체 사건이다.

집안에서 잡기놀이를 심하게 하던 욜라가 오줌을 누고 싶은지 쩔쩔매는 걸 보았다. “욜라야, 오줌 누고 싶지? 어서 가서 오줌 누고 놀아.” 하면 이젠 안 누고 싶단다. 불안한 나는 욜라를 계속 주시하면서 오줌 누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욜라의 뻔뻔스러운 얼굴이란. 이젠 전혀 오줌이 안 마렵단다. 이미 생긴 오줌이 다시 체내로 흡수될 리도 없고 방광의 허용한계치라는 게 있을 텐데 왜 쓸데없는 고집인가 싶다. 타일러도 보고 성도 내 보고 화장실 앞으로 질질 끌고 가기도 해 보았지만 그럴 때 마다 내게 돌아오는 것은 보란 듯이 오줌을 지린 욜라의 빤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오줌을 흘려 놓고 바지 벗을 때 바지가 발목에 끼여서 안 벗겨진다고 온갖 난동을 부린다던가 엉덩이 씻겨주는 물이 차갑느니 뜨겁느니 팔짝팔짝 뒷면서 발광을 하기 때문에 난 이제 욜라의 배변생활엔 일절 참견 안 하기로 한 바 있다.

그랬는데 새해 들어서서 욜라가 더 과감해졌다. 똥을 참고 참으며 놀다가 바지에 똥을 묻힌 것이다. 처음엔 신나게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하며 또 이것을 너무 크게 떠벌려 창피를 주면 메리가 두고두고 놀려 먹을 게 뻔하고 그럼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욜라가 더 말을 안 들을까봐 그날의 똥 사건은 최대한 조용히 처리했다. 그런데 욜라가 그날 이후부터 상습범이 되었다. 로의 똥오줌만으로도 벅찬데 새해 들어 뜬금없이 욜라의 똥 묻은 빤스까지 세 번짼가 네 번째 빨던 난 결국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욜라에게 “똥이 누고 싶으면 변기에 싸야지 왜 옷에다 싸? 왜! 니가 똥 묻은 빤스 빨아 보라고! 응? (빤스를 패대기치면서) 에잇, 똥! 똥! 똥을 왜 싸냐구~~~~ 아아악!!” 욕실을 쩌렁쩌렁 울리며 내지르는 내 목소리는 거실에서 고고하게 책을 보고 있는 메리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였다. 물론 욜라를 탓하기 전에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괄약근이 풀려 버리는 큰 병에 걸렸나, 혹시 불치병이 아닐까, 대장 내시경이라도 받아 봐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앞뒤 정황을 살펴볼 때 가장 유력한 원인은 초기에 신호가 온 걸 계속 무시하고 놀다가 참기 힘들면 엄마가 어찌 해 주겠지 하고 그냥 그대로 괄약근을 해체시키고 보는 욜라의 신종 엄마골탕먹이기 수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 보너스 사진2! 포토제닉은 누구? ⓒ김혜율

새해 들어 메리와 욜라가 나를 골탕 먹이는 또 다른 방법은 보통 아이라면 시도도 하지 않을 일이다. 이름하야 ‘야밤에 펼쳐지는 분노의 공부타임’.

아이를 볼 땐 다른 일을 전혀 못하고 아이 돌보는 것밖에 할 줄 몰라서 집안일이건 내 개인적인 일은 다 미뤄 놨다가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에야 하는 나는 아이들이 ‘밤 늦게 자는걸’ 유독 참을 수 없어 한다. 그런 나의 약점을 아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의 유용성에 대해 수년간 강조해 오고 있으며 늦게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이 이성을 놓아 버린 나의 방언터지는 듯한 잔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져든 적도 꽤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부가 취미인 메리가 꼭 잘 시간쯤 돼서 공부를 시작하곤 하는 게 문제다. 음악이론 공부를 하거나 한자쓰기를 하거나 혹은 심각한 얼굴로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그럼 중간에 아무리 내가 고함을 치고 저지를 해도 안 먹힌다. 얼굴 자체가 딴 세상에 가 있는 아이를 어떻게 현실로 돌아오게 한단 말인지. 해서 그냥 자포자기하고 불 끄고 누워 있으면 혼자 할 만큼 하다가 들어오곤 했는데 이젠 욜라까지 가세해서 날 못살게 군다.

책상에 죽치고 앉아 공부를 한다. 약 한 시간은 하는데 그 시간이 내겐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진다. 나도 체력이란 게 있으니까.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공부한다는 아이를 두 손 들고 환영해 줘야 함이 마땅하지만 지금 시간을 보라고!! 밤 열 시가 다 돼 가! 집은 쑥대밭이고 아직 저녁 먹은 설거지도 못했어. 게다가 나는 오늘 반드시 칼럼을 써야 해. 오늘도 안 쓰면 인간의 탈을 쓰고 못할 짓이야. 그래서 욜라 보고 공부하지 말라고 했다. 이 시간에 무슨 공부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라고. 그랬더니 욜라가 너무나도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엉엉엉, 나 공부하고 싶단 말이야. 흑헉헉, 공부하고 싶어, 엉엉엉.”하지를 않겠나. 이미 메리는 내가 가닿을 수 없는 ‘심야의 공부 섬’이 당도했기에 이런 소동은 안중에도 없다. 나는 순간 어차피 메리도 하는거 욜라도 끼워 주자, 애가 이렇게까지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그걸 말려서 쓰나 싶어서 얼른 욜라의 눈물을 닦아 주며 “그래 그래, 공부해라. 공부해. 자자, 울지 말고.” 하고 다정하게 안아 준다.

▲ 새로운 반항 - 심야공부. ⓒ김혜율

아이들이 박이 터져라 공부를 하는 사이 나는 집안 청소라도 하면 다행이다. 보통은 누나와 형을 방해하러 가는 로를 뜯어말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로는 계속 내 손을 잡아끌며 집안을 순찰하며 선반 위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탕이나 까까를 확인해 볼 테니 자길 번쩍 안아 달라고 성화다. 그렇게 온 집안의 선반과 통 속을 다 보여 주고 나면 시간은 10시 반이 넘어가고.... 내 눈엔 핏발이 맺히고.... 그때 반가운 메리의 외침! “엄마,  다 했어! 검사해 줘!” 자기가 푼 한자문제집 답을 맞춰 달라는 거다. 틀린 것을 설명해 줄 때 아쉬워 하는 메리의 얼굴이 기특해서 열정적으로 첨삭을 해 주고 나니 목이 컬컬하다. 그리고 늘 메리는 너무 많이 문제를 풀어 제낀다. 여기까지 했나 싶으면 한 장 두 장 더 넘겨야 하는데 그때는 나도 모르게 “아니, 뭘 이렇게 많이 풀었니.”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이젠 욜라 차롄가?

욜라는 숫자 공부를 했는데 누나한테 한 것처럼 자기한테도 동그라미를 크게 쳐 달란다. 이미 피로로 시야가 흐려진 나는 욜라가 그린 숫자에 마구마구 동그라미를 쳐 주었다. 거의 11시가 다 되어 애들을 잠자리에 눕히면 나도 자야지 별 수 없다. 집안일은 이따 들어오는 남편이 해 주겠고, 칼럼은 기자님께 하루만 더 말미를 달라고 해야겠다 하면서. 그렇게 다음날이 밝으면 어제와 비슷한 나의 하루가 펼쳐지는 것이다. 우중충하고 피로한 나의 새해가. 그래도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별일 없는 모습이라는 걸. 조금 오글거리게 말하자면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사실 새해가 되어도 골칫덩어리 세 아이들이 비범함 폭발, 멋짐 폭발, 귀여움 폭발을 하는 건 어쩌지 못한다. 나를 가장 놀래키는 건 해가 바뀌는 사실보다 매일 바뀌며 커 가는 나의 세 아이들이다. 비록 엉망진창으로 시작하는 새해라고 해도 기꺼이 살아 보겠다는 다짐이 거기서 나오는 것을 보면.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