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강아지를 키운다고 해 보자. 한 마리를 키울 때 주인은 그 강아지에게 온 신경을 다 써 줄 수 있다. 아픈지 안 아픈지, 똥오줌은 어디에 싸는지, 사료를 잘 먹는지, 왜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 등등 개라고 해도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원하는 게 무엇인지, 주인으로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자 노력하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와의 교감도 쌓여만 간다. 강아지가 두세 마리 정도 된다고 해도 한 마리만 있을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크게 무리없이 돌보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아지가 10마리 이상 된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밥이며 배설물이며 털이며 목욕이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조차 버거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그땐 강아지를 돌보는 것이 거의 직업이 되다시피 해야 한다. 사람이 집에서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게 아니라 개집에서 사람이 얹혀 사는 웃지 못할 형국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감히 도전하지도 않는다.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다. 아이들과 교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강아지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을 강아지에 비유한 셈인데 애들이 개처럼 보이거나 개 같아서 한 말이 아니니 너르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하다못해 개를 키워도 이런데 사람을 가르치고 키우는데 이러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양평의 작은 학교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13년이 넘는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맡은 아이들의 숫자는 24명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발령 첫해인 2003년 33명을 시작으로 올해 24명까지 평균 27명이 넘는 아이들을 담임하며 맡아 온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한 반에 50-60명은 기본이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학급당 학생 수 같은 교육적인 요건은 상대적 평가가 아니라 절대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줄었으니 좋아졌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렇게 많으니 대책을 세우고 계속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작은 학교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들의 숫자가 적다는 점이었다. 처음 맡은 아이들이 17명, 그 다음 해에 10명의 아이들을 담임했었는데 이렇게 아이들의 수가 적으니 얻어지는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가장 먼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담임을 한다고 해도 업무적, 심리적 부담이 없다는 점이었다. 초등의 경우 중등과 달리 아이들과 밀착되어 하나부터 열까지를 챙겨야 한다. 심지어 저학년의 경우 배변 활동까지 신경 쓰고 챙기지 않으면 교실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급식도 하나하나 먹는 거 보고 신경 쓰지 않으면 식판 앞에서 제사 지내는 것마냥 그저 울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담임을 한다는 것이 교사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이들의 수가 적으니 그 부담이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적을 입력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초등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에는 등급을 나타내는 어떠한 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수행평가 결과로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노력 요함 등 학교가 미리 정한 등급이 들어가긴 하는데 이는 생기부에 정식으로 들어가는 ‘교과학습발달상황’을 작성하는 보조 자료일 뿐이지 생기부에는 절대 표기되지 않는다.

초등 생기부에는 말 그대로 각 교과마다 1년 동안 발달한 상황을 문장으로만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수학이라면 ‘기본적인 계산 능력이 뛰어나고 문제해결력을 갖추고 있어 수학과 전반에 걸쳐 우수한 향상을 이루었음. 특히 도형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분수의 혼합 계산을 잘함.’ 이런 식이다. 여기에 ‘창의적 체험활동’이라고 동아리 활동, 자율활동, 자치활동, 봉사활동, 학교스포츠클럽활동 등 정식 교과가 아닌 나머지 학교 생활에 대한 내용도 모두 규정에 따라 문장으로 입력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으로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의견까지 넣어야 하고 이렇게 기록된 생기부 결과가 성적표로서 공식 통지된다.

▲ 초등 5, 6학년은 교과목 수가 12개이므로 학생이 30명이면 교사가 입력해야 하는 학교생활기록부 항목 수만 360개가 된다. ⓒ채성욱

초등 5, 6학년은 교과목 수가 도덕,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실과, 영어까지 모두 10과목에 이른다.(지나친 교과 수에 대한 글은 나중에 쓸 예정이다.) 거기에 창의적 체험활동에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까지, 입력해야 하는 항목의 수만 학생 1인당 12가지다. 맡고 있는 아이들 수가 30명이면 내용이 아니라 입력해야 하는 항목만 360개가 되는 것이다. 그나마도 자율적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규정에 따라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 가급적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고 간섭도 심하다. 이러다 보니 교사들 사이에서는 생기부에 넣는 문장이 예문으로서 돌아다니고 있다. 예전의 나도 본격적인 성적 입력에 앞서 당연스럽게 최신판 예문(평어 또는 주저리로 불린다.)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직접 써 주는 게 아니라 미리 있는 예문 중에서 대충 적합한 걸 그대로 넣거나 조합하여 입력하는 형식인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쓴 성적표를 학부모들이나 아이들조차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수가 17명 정도 되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있는 예문은 그냥 참고사항으로 한 번 읽어 볼 뿐, 아이들 하나하나 한 해 동안 해 온 활동이나 성장한 모습 등을 직접 입력하고 수정하고 해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심지어 10명이 되자 입력한 내용을 읽고, 또 읽게 되고 더 넣을 내용은 없는지, 수정할 사항은 없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고민하며 입력하게 되었다.

성적뿐만 아니라 평소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너무나 좋았다. 10명이 있을 때는 책상을 동그랗게 만들고 수업했었다. 필요에 따라 책상의 배치도 너무 쉬웠고 책상이 적어 교실이 넓으니 아이들이 뒹굴 수 있는 푹신한 매트부터 다양한 것들을 교실에 설치할 수 있었다. 거의 매 시간마다 아이들의 의견을 한 명, 한 명 물을 수 있었고 아이들 모두에게 간식이나 짜장면을 사 주기도 편했다. 심지어 차량 한 대에 다 태우고 놀러 다니기도 좋았다.

물론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체육 시간이었는데 10명이다 보니 팀을 나누어 활동을 하기엔 인원이 부족했다. 이러한 문제는 근처 학년과 체육 시간을 미리 협의하여 합동 체육을 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이 정도 문제는 얻어지는 이점에 비하면 아이들이나 교사 모두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교육과정도 자주 바뀌는데 지금 적용되는 교육과정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학급당 학생 수가 25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 예전처럼 그저 죽으나 사나 앉혀 놓고 외우게 하고 풀게 하고 못하면 혼내는 그런 교육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협동학습, 주제수업, 발표수업, 학생 주도적 학습 등이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학급당 학생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저질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해마다 학교에서는 취학 예정 아동과 전출생을 종합하여 학급을 새롭게 구성한다. 그 전에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이른바 ‘학급 학생 수 기준’을 공문으로 내려 보낸다. 학교에서는 이 기준 수를 가지고 학급을 구성하고 필요한 교사를 충원하게 되는 것이다. 2017학년도 경기도의 경우 기준 수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먼저 학급당 인원수가 몇 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자, 이제 놀라지 마시라. 2017학년도 경기도 교육청의 학급당 학생 수 기준은 무려 30명이다. 예를 들어 1학년에 내년에 90명의 아이들이 입학하게 된다면 90명 ÷ 기준수(30명) = 3학급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학급에 30명의 아이들이 들끓게 된다. 그러나 한 명이라도 더 입학해서 91명이 되면 3학급하고 1명이 남게 되기 때문에 4학급으로 구성되어 한 학급에 23명 정도의 아이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쓸데없고 탁상 행정적이며 무식하고 억울한 사태란 말인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입생이 89명 정도면 아이들을 더 입학시키기 위해, 91명이면 취학을 연기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학교가 콜센터로 변신까지 하게 된다.

▲ 작은 학교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들 숫자가 적어서 성적뿐만 아니라 수업 진행에도 좋은 점이 많았다.ⓒ채성욱

결론적으로 경기도의 경우 교육청이 생각하는 한 반 최대 인원은 30명인 것이다. 무려 30명. 그렇다고 교육청이 아이들의 수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같은 초등학교라도 혁신 학교의 경우 기준 수가 일반학교보다 더 낮다. 이는 교육청에서도 학급당 학생수 가 적을수록 교육의 효과는 물론 질적인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초등의 경우 2014년 OECD회원국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15.2명, 학급당 학생 수는 21.2명이다.(한국은 교사 1인당 학생 수 17.3명, 학급당 학생 수 24.0명이다. 여기서 교사는 담임을 맡지 않는 교사가 모두 포함되고 학급당 학생 수도 시골 학교와 도시 학교가 모두 섞인 수치다. 이미 오래전부터 워낙 통계치로 꼼수를 잘 부리는 정부이니 수치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준 수라는 이상한 계산법으로 학교의 사정이나 교육의 질적 재고 없이 단순히 숫자로만 학급수를 결정하고 그나마도 30명이라는 몰상식한 인원을 제시하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한 학급이라도 더 만들게 되면 이는 교사 한 명을 더 채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교실 하나라도 더 운영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입장에서 학급 수를 늘린다는 것은 곧 인건비와 시설관리비를 비롯한 예산이 더 투입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잘나신 정부가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니 더 투입할 예산도 당연히 없는 것이고 결국 학급에 아이들이 30명이 바글거리던 말던 눈감아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론에는 실제적으로 학급에 몇 명의 아이들이 있는지는 감춘 채 인구(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으니 학교도 줄여야 한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인구 절벽에도 학교를 계속 지었다며 수도권에 인구가 과밀되면서 나타는 시골 학교의 학생 수 감축 현상을 마치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인 것처럼 일반화시키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전교생 60명 이하 2030개교, 인구절벽에도 학교 더 지었다.’ 이데일리 2016.12.19. 인터넷 기사)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에서 이른바 ‘고객’ 대우까지 받는 학부모들은 왜 가만히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학부모들이야말로 학급당 학생 수가 교육의 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학원을 보낼 때 소수 정예를 찾아서 보내려 하고, 이것도 아이에게 효과적이지 않으면 더 적은 인원으로 그룹 과외나 아예 1:1 과외를 시키려고 하니 말이다. 사교육에서 대해서는 이렇게 예민하신 분들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학급당 학생 수가 몇 명이 되던 말던 왜 신경을 쓰지 않고 침묵하는 것일까? 이미 학교를 포기한 것일까? 어차피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고?

학령 인구, 아이들의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학급 수나 학교를 감축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며 국민을 기만하고 교육의 질을 아랑곳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히려 학급의 수를 더 늘리거나 최소한 지금의 학급 수를 유지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학급당 인원수가 OECD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면 교사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지금이라도 최소한 10년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학급당 학생 수를 감소시키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제발 속지 마시라.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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