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각 학교마다 교사들을 비롯한 전 교직원들의 친목단체인 친목회가 있다. 직원들의 경조사 처리는 물론이고 직원 여행을 비롯해 대대로 이어져 오는 다양한 행사들을 하는 곳이다. 정해진 금액을 매월 월급에서 원천징수하여 회비를 마련하는 완전한 자치, 자율 조직인데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는 데다가 자잘한 것들을 많이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나서서 이끌어 갈 사람도 점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는 일 안 막고 가는 일 안 잡는 성격 덕분에 발령 첫 해부터 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해마다 하던 직원 여행을 단순하게 놀고먹는 걸로 하지 말자는 생각에 전에 근무했던 작은 시골 혁신학교 방문을 계획했다.

전 직원을 끌고 그 찾아가기 힘든 곳까지 간다는 게 걱정도 되고 준비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마침 단풍이 시작된 터라 은행나무가 너무나 아름다운 그곳을 도시의 찌든 교사들에게 보여 주고 싶기도 했다. 또 어느덧 슬슬 내년 학년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내년도 교육 과정을 수립하는데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사전에 연락도 하고 공문도 보내고 자료도 준비하여 이 아름다운 날에 더 아름다운 학교를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이렇게 단체로 학교에 정식으로 방문한 적은 처음이라며 당황해 하면서도 늘 그렇듯이 차분하고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로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얼마 전에 혁신학교 중간 보고회가 있어 만들어 둔 동영상도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더 자료를 보강하여 약 30여 분 만에 그 학교에서 펼쳐지는 것들을 대강 알 수 있도록 훌륭하게 준비를 해 주었다. 아이들을 위하고 공동체를 위해 펼쳐지는 교육을 실시하는 그곳의 교육 과정과 학교 운영방식 등을 보고 있자니 마치 고향을 찾아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여기 있을 때 더 열심히 집중해서 잘할 걸 하는 뻔한 후회도 밀려왔다. 그리고 이곳의 저러한 것들을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저런 원칙들, 예를 들어 민주적이고 치열한 교사회와 그것이 운영되는 방식들에 대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적용해 볼 수 있을까? 더욱 새롭고 깊게 고민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간간이 사진 속에 비치는 나의 예전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짠하고 안쓰럽기도 했었다.

학교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난 뒤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좋은 공기와 좋은 풍경과 좋은 사람들 속에서 다들 기분 좋게 한잔씩 잔을 기울이니 조금씩 진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교사들은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털어놓거나 나누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데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서로 다른 생각으로 괜히 언성이 높아지는 것 같은 사소한 마찰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존중받아 본 경험도 부족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해 봤자 좋을 게 없다고 알아서 찌그러지는 성향이 강하기도 하다. 심한 경우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거나 나누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 학급만 내가 잘 꾸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교사들이 술의 힘을 빌려 제 생각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40대 중반, 학교의 중책을 맡고 있는 한 남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곳 교육 과정 잘 보았다. 아이들이 참 행복해 보이더라. 그러나 막상 자식을 키워 보니(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 혁신이고 체험 중심이고 놀이고 다 필요 없더라. 결국은 국영수가 중요하고 거기로 돌아가야만 하고 현실은 경쟁이고 대입이다. 어쩌면 저렇게 초등에서 혁신이네 뭐네 하면서 시험도 안 보고 아이들 학습에 중점을 두지 않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처사이기도 하고 오히려 낙오자를 양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부모들은 중학교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습 수준이 비교적 높은 곳에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여교사도 한마디 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 중학교도 혁신학교로 지정되었다. 처음에 그 학교가 지정되자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그 학교를 들어가려고 이사를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학교가 변화하면서 애들은 즐겁게 잘 다니는데 문제는 그 몇 년 뒤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외고를 가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주변 학원가에서 그 학교 다닌다고 하면 받아주지 않기 시작했다. 그 학교 출신은 너무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아이들은 너무나 즐거운데 엄마들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국 이젠 공부를 조금 잘하는 것 같으면 다른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빨리 이사를 가려고 하고 그래서 나도 심각하게 지금 고민 중이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들도 조금씩 생각들을 털어놓았는데 대체적으로 ‘그래도 초등에서만이라도 아이들 놀게 해 주고 혁신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후가 아이들이나 학부모들 입장에서 혼란스럽고 힘든 건 사실인 것 같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 공부하고 있는 학생 가운데서 두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교실에서 찾은 희망' 사천초등학교 4학년 5반 편 중 한 장면. (이미지 출처 = youtube.com)

사실 혁신 학교와 혁신 교육이라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혁신 학교가 가진 부정적인 면도 많고 보완해야 할 사항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우선 저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무엇인가? 해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을 부적응으로 낙인찍어 학교 밖으로 내쫓고 수백 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실이 아니던가? 그나마 학교에 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공부 못하면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오로지 대학을 위해 인권이고 뭐고 다 집어던져야 하며 한 마디로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개인적인 인연으로 알고 지내는 중등 교사 중에 상처받은 아이들을 많이 지도해 오신 분이 계신데 그분은 요즘 아이들의 문제를 ‘무기력’으로 요약했다. 차라리 사고라도 치면 더 나은 거라고, 요즘 아이들은 그야말로 무기력하다고, 그냥 잠만 자려고 한다고 하셨다. 대답도, 인사도, 공부도, 하다못해 비행도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시면서 개탄스러워 하셨다. 한창 에너지 넘치게 세상을 배우고 꿈꿔야 하고 고민해야 할 아이들이 나무늘보마냥 교실 책상과 사물함에 늘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것이야말로 현실이 아니냔 말이다. 그렇다면 한 살이라도 더 먹고, 한 푼이라도 더 벌고, 한 글자라도 더 알고, 한 가지라도 더 겪은 사람들이 앞서서 이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그래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다 함께 힘을 모아 보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본인들은 편안하게 누릴 것들 다 누리면서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 누가 죽든 말든 눈감아 버리고는 이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고 아이들에게 본인들의 짐을 다 떠넘겨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현실은 어쩌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것이기도 한데 말이다. 이 얼마나 비겁하고 비열하고 보수적이며 이기적인 생각인가? 그러고도 어른이라고 어디 가서 나이 먹은 티 내고 잔소리하고 잘난 척하며 살 자격이 있는가?

이번에 찾아간 학교만 해도 그렇다. 사회적으로 그렇게 욕먹는 전교조 교사들이 버스도 잘 다니지 않고 눈이라도 살짝 오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출퇴근해야 하는 곳에 오직 작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여들어 학부모들과 함께 교육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전교생이 20여 명까지 떨어져서 폐교를 통보받았던 학교가 지금은 전교생이 100명에 육박하고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분교가 거꾸로 본교로 승격되었다. 학교가 살아나자 적막하던 마을 전체가 살아나는 결과도 가져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행복하다. 학부모도 행복하다. 나처럼 상처투성이 교사마저도 치유되고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도 어차피 대학 입시가 모든 걸 좌우하니 이런 거 다 필요 없다며 현실을 잘 아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오기도 했다.

물론 그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막상 내 자식이 공부 잘하고 여러모로 뛰어나고 좋은 학교 가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당장 뭐 하나 바뀌는 건 없고 다른 아이들은 죽어라 사교육에 매달리면서 오직 한 곳을 향해서만 달려 나가는데 그게 어떻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아이의 행복을 담보하지 않고 대학 입시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그리고 어쩌면 그 대가가 아이의 인생 전체, 또는 목숨 그 자체라면 당장 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그동안 살아온 삶의 무게와 힘으로 다만 뭐라도 하나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남교사는 내가 조목조목 반박하자 결국 우리가 어떻게 당장 그걸 바꾸냐, 그게 그렇게 쉽냐고 반문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나에게서 나오는 국가다. 주인이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 누가 바꾸겠는가? 누군가 나서서 바꿔 주지 않으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돈 많은 노예. 미안하지만 아직 심성이 곱지 못하고 지적으로 미천한 나에게 그들은 그저 돈 많은 노예들로 보인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린 기성세대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처해 있는 이 거지같은 현실을 바꾸어 가야 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지만 그렇게 내 새끼가 예쁘고 소중하다면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짓밟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아이들이 불행하고, 아이들이 거리로 나선다면 그건 어른으로서 막말로 쪽팔린 일이다. 더군다나 우린 교육 현장에서 누구보다 교육에 대해 더 고민하고 아이들을 잘 알고 있는 교사가 아닌가? 교사라면 현실이 어쩌고 대입이 어쩌고 논하기 전에 내 아이와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을 생각해 보라. 그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나와 당신들도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사가 보여 주듯이 우리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주신 우리 윗세대의 피를 마시며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다못해 밥도 먹으면 똥이 나오는데 피를 마셨으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만 비겁하시라. 댁의 아이가 불행하다면 그건 당신네들 같은 사람들 덕분이다.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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