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학교에 있다 보면 천진난만한 아이들 때문에 참으로 웃지못할 일이 많이 벌어지곤 한다. 주로 저학년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많은데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혼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퇴근하려고 주차장에 나갔는데 내 차 본네트부터 앞 유리, 천장, 뒷 유리까지 모두 흙 묻은 운동화로 밟혀 있었다. 신발 사이즈를 보니 200밀리 안팎.... 누군가 내 차를 가로질러 밟고 간 것이다. 잡아서 혼을 내 줄까 하다가 그냥 교사 회의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아이들이 교사 차에 장난치지 못하게 함께 더 지도해 보자고 제안을 하고 일을 접었다. 그런데 2학년 선생님께서 너무나 미안하다며 범인을 잡아 왔는데 범죄 사유가 술래잡기하다가 너무 급해서 차를 뛰어넘었다는 것이었다. 대단한 놈이었다.

크레파스로 벽에 그려 보고 싶었다며 학교 복도 벽에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림을 그리지 않나, 어디서 구했는지 빨간 락카를 가져와서는 재밌다며 학교 벽이며, 교사 차량이며, 유리에 죄다 뿌려 놓지를 않나, 심지어 궁금하다며 남자, 여자 아이가 서로 잠지나 고추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경우까지.... 아이들의 잘못 아닌 잘못은 그야말로 웃픈(웃기면서 슬픈)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들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똥이다. 특히 교사 똥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관심거리다.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전날 술 같은 장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었거나, 장염에 걸린 것 같은 다양한 이유로 근무 중이나 심지어 수업 중에 갑자기 똥 신호가 올 수도 있다. 고학년의 경우 천연덕스럽게 다른 할 것들을 내주거나 나처럼 뻔뻔하게 똥 싸고 온다 하고 슬쩍 처리하면 되지만 저학년의 경우 수업 중에는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초인적 힘으로 참아야 한다. 쉬는 시간이 오더라도 교사용 화장실이 없으면 불안에 떨며 빠르게 처리해야만 한다.

도시에서는 화장실 공사 중이라서 교사용 화장실이 없었던 적이 있었고 시골에 있을 때는 학교가 너무 작아서 아예 교사용 화장실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 원래 장이 예민한 편인데 전날 회식하면서 술을 몇 잔 마셨더니 역시 일과 중에 배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좀 민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참을 수도 없어서 수업을 10분 정도 일찍 마무리하고 슬쩍 가까운 화장실로 향했다. 얼른 처리하고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이 자식이 말을 건다.

“어? 여기 누구 있냐? 누구 똥 싸냐?”

2, 3학년 정도 되는 남자아이였다. 화장실 공사를 해서 저학년들이 윗층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얼른 쫓아 버릴 생각에 일부러 목소리를 더 굵고 크게 대답해 준다.

“내가 똥 싼다. 임마!”

순간 애교만 부릴 것 같은 그 귀여운 주둥이에서 욕이 튀어 나온다. 그런데 아뿔싸....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우앗! XX 깜짝이야. 야~ 여기 쌤이 똥 싼다아~”

이놈이 광고를 하고 다닌다. 큰일이다. 얼른 정리해야 한다. 곧 아이들이 떼로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마음대로 정리가 되던가.... 결국 한발 늦었다. 대충 정리하는데 밖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바닥의 좁은 틈이나 문틈 사이로 슬쩍슬쩍 보는 놈들도 있다. 문을 열고 나가니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문 앞에 서서 웃으면서 나에게 묻는다.

“쌤 똥 쌌어요?”
“쌤 시원해요?”
“왜 집에서 안 싸고 학교에서 똥 싸요?”
“쌤 똥 싸면서 얘한테 소리 질렀어요?”

제기랄.... 평소에 우리 반이 아니더라도 저학년들이랑 장난치면서 친하게 지낸 것이 잘못인 걸까? 학교에서 똥 한 번 쌌다가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교실에 들어가니 이번엔 우리 반 아이들이 음흉하게 날 쳐다본다.

“후후후~~ 쌤 똥 싸셨다면서요? 시원하세요?”

조금이라도 과장되었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난 벌 받아서 변비에 걸려 죽을 것이다. 맹세컨대 조금도 보태거나 지어내지 않았다. 중등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초등은 교사용 화장실이 없으면 교사들은 기본적인 배설조차 맘 편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 아이들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똥이다. 특히 교사 똥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관심거리다. (이미지 출처 = flickr.com)

얼마 전 한 언론에서 교사용 화장실 문제에 대해 지적한 기사를 보았다. 교사용 화장실에만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왜 학생들은 교사용 화장실을 쓸 수 없는지 등을 비판한 기사에는 권위주의적이라는 댓글부터 교사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까지 달려 있었다. 교사용 화장실에만 비데 등의 설비가 되어 있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실제 대부분의 교사들은 비데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집도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비데는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는데 그런 거 설치해 달라고 조르는 교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교사들은 그저 기본적인 생리 욕구라도 잠시나마 조용하고 맘 편하게 해결하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인권이 있는 것처럼 교사들에게도 인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심지어 화장실에 가기 싫어서 물을 안 마시는 여선생님을 볼 때는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양변기(서양식 변기, 의자처럼 앉아서 사용)와 좌변기(바닥에 설치하여 쪼그리고 앉아서 사용)의 문제도 그렇다. 좌변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서 20세기 화장실이라는 둥 내부 사정도 모르면서 무조건 구식이라거나 싸구려로 공사를 했다는 식의 비난을 하는데 사실 학교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는 양변기보다 좌변기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여행 갔을 때 참으로 편했던 것이 화장실 문화였는데 그중에서도 양변기가 설치된 곳은 거의 대부분 양변기 커버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앉았던 곳에 민감한 부위를 직접 대고 앉지 않도록 종이나 비닐 커버가 준비되어 있었고 일을 다 본 다음에 휴지와 함께 처리하는 시스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양변기를 쓰려면 이런 시스템도 함께 갖춰져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종이나 비닐 커버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특히나 양변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화장실 사용법을 수시로 지도하지만 마치 영역 표시라도 한 것처럼 앉는 부분이 내려와 있는 채로 오줌을 갈겨 놓지 않나, 어떻게 일을 본 건지 신기할 정도로 똥을 이리저리 묻혀 놓질 않나 참으로 가관이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지 않고 따로 화장실을 관리해 주시는 여사님이 계시지만 이 모든 것을 처리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아이들을 위해서나 여사님을 위해서나 학교에 적합한 시설은 겉만 번지르르한 양변기보다는 별다른 접촉없이 잠시 쪼그리고 앉아 일 보는 좌변기가 더 나을 수밖에 없다.

아직도 교사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나 권위주의적인 부분들이 많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 안에 교사들을 위한 시설이나 설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왜 교사들만.... 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도 합당치 않은 것이다. 아이들의 키에 맞는 작은 책상과 의자가 필요한 것처럼 교사들도 교사들의 사정에 맞는 시설과 설비가 필요하다. 또한 아이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아니다. 마치 그것들처럼 아이들도 한번 설치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대로 움직이면 좋겠지만 아무리 지도를 해도 자유의지로 사고를 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면서 가르치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학교는 학교의 사정에 보다 적합한 시설과 설비가 필요하다. 무조건 최신식이거나 좋다고 해서 학교에도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낭비가 될 수도 있다.

많이들 비판하시라. 그래야 학교도 바뀌고 교사도 바뀐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비난은 하지 마시라. 때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래야만 하는 까닭도 있다. 서로가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고발이란 그저 잔인할 뿐이다.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