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아이들은 아프다. 넘쳐 나는 각종 유해 식품들과 아직도 논란 중인 유전자 조작 식품들, 아이들의 생식 능력마저 공격하는 여러 환경호르몬, 정부의 무능과 기업의 욕심이 빚어낸 미세먼지, 그리고 도시의 각종 어른들을 위한 시설들 때문에 아이들의 몸은 수시로 공격받고 있다.

마음은 더 아프다. 더군다나 아픈 게 티도 나지 않는다. 공부도 잘해야지, 그림도 잘 그려야지, 노래도 잘해야지, 악기도 잘 다뤄야지, 영어도 잘해야지, 중국어도 잘해야지, 운동도 잘해야지, 독서도 잘해야지, 토론도 잘해야지.... 등등.... 함께 놀 친구가 없어 학원을 찾아가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그래도 학교 끝나면 마음대로 놀 수 있었던 시절에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 뿐만인가? 제대로 놀 시간도 없는 우리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해야 할 것들 많다. 욕도 안 해야지, 친구도 사랑해야지, 나라도 사랑해야지, 학교도 사랑해야지, 살고 있는 지역도 사랑해야지, 지구도 사랑해야지, 착해야지, 말 잘 들어야지, 순해야지.... 온갖 스트레스는 밀려오는데 그걸 풀 기회마저 잃고 우리 아이들은 착하게 웃어야 한다. 이거야말로 참된 감정 노동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제 정신이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몇몇 우리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버텨 주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당히 많은 수의 아이들이 실제로는 마음이 문드러지고 무너지고 가루가 되어 버리고 있다. 경계성 장애는 물론이고 당장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아이들이나 심리치료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아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부모들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그리고 국가에서도 아이들의 마음이 이렇게나 많이 아프다는 걸, 그래서 빨리, 적극 손을 써야 한다는 걸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천국 같았던 작은 시골 학교에 있었을 때 그 학교에 전입하는 아이들 중 상당수는 도시에서 각종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었다.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거나 아이들과의 문제가 끊임없이 터져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대안학교로 가지 않고 공교육 속에서 대안적인 모습을 찾아 전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학교에 상담교사는 배치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을 담임교사가 오롯이 끌어안고서 외부 기관에 상담치료를 받을 것을 간곡히 권유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헌신적인 교사의 노력과 이미 구축된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눈빛이 변해 가고 웃음을 찾아갔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만약 상담교사가 있다면 이 과정이 훨씬 순탄하지는 않았을지, 기간은 더 짧아지지는 않았을지 그저 안타까웠다.

▲ 상담을 받던 중 끝내 울음을 터뜨린 아이. (이미지 출처 = '해결 중심 단기 상담법'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지금 근무하는 곳에 오니 다행히도 상담교사가 있었다. 유명하고 신뢰할 만한 곳에서 상담을 배우시고 여러 센터에서도 근무하셨던 경험이 있는 정말 괜찮은 분이 아이들과 학부모들까지도 푸근하게 안아 주고 계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옆 학교에 상담교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상담교사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우리학교에서 근무하고 목, 금요일에는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순환 근무를 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 전교생이 600여 명, 옆 학교 전교생이 450여 명. 상담교사 한 명이 무려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우리 학교 상담교사는 혼자서 수시로 학생 상담을 진행하고, 자원한 학생들을 교육시켜서 또래 상담도 진행하고, 학부모 상담도 진행하고, 교사 상담에다가 상담 연수까지 엄청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도대체 왜 학교에 계시냐고 물었더니 막 웃으시면서 다른 상담가들이나 센터장들도 그렇게 묻는다고, 하지만 그저 아이들이 좋아서라고 하신다.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열정페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보건교사는 거의 한 학교에 한 명 이상 배치가 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상처나 아픔은 그래도 비교적 잘 치료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담교사의 현실은 이 지경이다. 헬조선의 거지같은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심각하게 상처받고 있는데 그 상처를 안아 주고 보살펴 줄 전문가에 대한 조치는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약해 빠진 거라고. 우리 땐 더 힘든 것도 다 이겨 냈다고 말이다.

그렇게 잘나시고 강인한 그대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더 힘들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들과 학부모들을 위해 다음의 조치들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1학교 1인 이상의 상담교사가 반드시 배치되어야 한다. 전문상담교육자협회 조사 결과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된 초등학교 비율은 놀랍게도 고작 0.6퍼센트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내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15.6퍼센트로 무려 학교 15곳당 1명에 불과하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학교의 규모, 위치 등에 상관없이 1학교 1인의 상담교사는 반드시 배치되어야 한다. 아울러 규모가 크거나 학군에 위해 요소가 많거나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의 학교에는 2인 이상의 상담교사가 팀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상담교사도 사람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능력에 상관없이 각종 업무에 혹사당하고 1000명도 넘는 아이들을 혼자 맡게 된다면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몸의 상처 만큼이나 마음의 상처도 아프고 위험하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전문적인 지도와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교사가 한 학교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 교육 현장의 후진성을 그래도 보여 주는 결과다. 아이들을 위해서나 상담 교사를 위해서나 반드시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상담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둘째, 우수한 상담교사를 적극 양성하여야 한다. 상담도 돈이 되고 직업이 되다 보니 너도나도 상담을 전공하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사설 기관의 상담 관련 자격증도 수십 종에 이르는 등 검증되지 못한 상담사들마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니 학교에서 근무하기 부적합하거나 심지어 퇴직 교사가 소정의 연수만 받고 상담교사로 다시 채용되는 등 적절하지 못한 경우도 많이 봐 왔다. 공교육이라면 국가가 상담교사도 책임지고 양성해서 배치해야 한다. 이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직접 어루만지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설 자격증만 따지면서 기간제(비정규직)로 채용하지 말고 초등교사처럼 정교사로 집중해서 양성 배치하고 질적인 관리를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 교사와 학생의 상담 모습. (이미지 출처 = '아둘러의 상담 사례'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셋째, 외부 기관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 상담가들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더 전문적이고 경험이 많은 상담가들에게 조언을 받는다. 수퍼비전이라고 하는 과정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자신이 상담을 잘 진행하고 있는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상담을 하면서 힘든 점 등을 지도를 받는데 주로 대학 교수들이나 센터장들에게 받는 경우가 많고 비용도 한 시간에 10만 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상담가라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과정이지만 상담교사 개인이 알아서 진행하기엔 시간, 비용적인 면에서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교육청 단위에서라도 대학이나 전문 기관과 연계하여 상담교사들이 주기적으로 수퍼비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상담교사들에게 대한 지속적인 관리 및 감독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행정적, 금전적 지원을 해야 한다.

넷째, 관리자를 포함한 교사, 학부모의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상담실은 익명성과 폐쇄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누가 언제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소중한 개인정보이자 당연히 지켜 줘야 할 비밀이다. 그러나 학교 상담실은 이른바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상담실을 개방할 것을 요구받는다. 항상 상담실 내부가 보이도록 창문의 일부를 개방하여야 하는 것이다. 복도에 수시로 누가 지나다니는 곳에서 어떻게 상담을 받는단 말인가? 교장이라면 그런 곳에서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창문을 비롯해 상담에 필요한 공간을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함에도 제대로 된 상담실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장실은 으리으리하면서 아이들의 상담실은 열악한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상담교사도 엄연한 교사이건만 학부모들이 상담교사를 대하는 태도도 담임교사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부모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고 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소견을 전달하면 막말로 ‘니가 뭔데?’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적으로 교사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장, 교감에게는 상담실 운영 및 관리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부터 연수해야 하고, 학부모들에게는 상담교사에 대한 교권 및 지도의 중요성을 알려 줘야 하고, 교사들에게는 상담교사와의 연계 필요성이나 상담의 활용 등을 연수해야만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란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어른들만 받는 줄 알고 있다. 아이들이 ‘아! 스트레스 받아.’이러면 어른들은 애가 별소릴 다 한다며 웃어 버린다. 왜 웃는가? 아이들은 스트레스도 없고 그런 걸 느낄 줄도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아이들은 죽어 간다. 언제까지 아이들의 죽음을 그렇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죽은 아이를 탓하며 강인한 척 살 것인가? 마음이 아픈 것이 정말 아픈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는 채 각종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제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놔두면 안 된다. 최순실 예산을 몽땅 환수해서 당장 내년부터라도 학교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보살피도록 하루빨리 손을 써야 한다.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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