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성 없는 이벤트성", "토론 강화" 지적도

‘가톨릭은 공부를 너무 좋아해.’

한국 천주교를 취재하는 기자로 일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우리 교회에는 토론회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의 ‘사회교리 주간’처럼 교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기간이나 “복음의 기쁨” 같은 중요한 문헌이 나온 경우, 여러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교구 위원회, 평신도 단체 등 수많은 교회 기관이 관련 주제로 심포지엄이나 세미나를 연다.

한 해 마무리를 준비하며 2016년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열린 토론회 숫자를 세 보니 최소 87회였다. 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 소식란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가톨릭신문>, <가톨릭평화신문> 등 천주교 언론에 비중 있게 보도된 토론회 숫자만 확인한 것이니, 주교회의나 언론이 소개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100회를 훌쩍 넘을지도 모른다.

아래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주교회의 홈페이지와 3개 천주교 언론사 웹사이트를 검색해 확인한 2016년 한국 천주교에서 열린 토론회 목록이다.

 
▲ 2016년 한국 천주교에서 열린 토론회. (자료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특히 토론회가 집중적으로 많이 열리는 계절이 있다. 올해도 가을 들어 큼직한 토론회가 많이 열리다 보니, 이런 때 가톨릭 언론사에서 관행적으로 취재 결정을 하다 보면 무슨 기사를 쓸까 고민할 필요도 없을 정도가 된다. 물론 기자로서 일주일에 2-3번씩 이런 자리에 참석해 매번 비슷해 보이는 사진을 찍고, 지난 번과 비슷한 형태의 기사를 써 내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기자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로울 수도 있다.

가톨릭 언론사의 한 기자는 “주최 측에도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토론회를 여는 이유와 형식, 그리고 행사 중의 소통 방식”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은 이 기자는 청중의 참여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며 “패널도 청중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더 중요한 것은 토론회 내용인데, 많은 토론회가 진짜로 다뤄야 할 내용을 피하거나 추상적 어휘를 쓴다”고 지적했다.

천주교의 토론회들은 주로 ‘심포지엄’이나 ‘세미나’라는 제목으로 열리며, 일부는 ‘포럼’, ‘학술대회’, ‘발표회’ 등의 이름을 붙인 경우도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볼 때 심포지엄, 세미나, 포럼 등은 모두 다른 형식이지만, 천주교의 토론회를 참석해 보면 대부분 비슷한 순서로 진행된다. 대체로 2명 이상이 발제를 하고, 이어서 같은 수 또는 조금 더 많은 수의 사람이 논평을 하며, 논평에 대해 발제자가 다시 답변하고, 끝으로 청중의 자유발언이나 질문을 받아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올해 천주교 토론회가 어떤 주제로 열렸는지 살펴보는 것도 지난 한 해 교회가 어떤 분야, 주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큰 주제 별로 보면 올해 천주교가 병인순교(박해) 150주년을 기념한 만큼 ‘순교’와 관련된 토론회가 10회로 가장 많았다. 교회 곳곳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교회사 분야 토론회가 8회 열렸고,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신설된 흐름을 반영한 듯 생태환경 분야 토론회도 많았다.

▲ 2016년 한국 천주교에서 열린 토론회의 큰 주제. (자료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그러나 이 수많은 토론회가 대부분 수도권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방 교회 신자들은 배움과 토론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은 천주교계 연구자는 “다른 교구는 이런 자리가 너무 없어서 귀하고, 서울은 너무 많아서 귀한 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연속성 없이 이벤트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토론회를 준비하는 이들이 “전에 했던 연구를 보지 않는 것 같다”며 “기존에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확인한 뒤에 이어서 해야 하는데,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 하다 보니 발전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대학의 학술행사는 돈을 써야 하니 쓰는 것이지, 사목에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에는 사목과 너무 연결이 안 된다”면서, “(교회가) 변화의 의지가 있다면 학술행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의지가 없는 게 문제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 지난 12월 9일 경기 의정부에서 열린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한 조명균 씨(전 청와대 통일정책 비서관)가 말하고 있다. ⓒ강한 기자

한편 토론회를 대신할 대안으로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운 형식의 ‘토크콘서트’나 교회 지도자들이 직접 사목 현장을 방문해 신자나 시민들과 대화하는 행사도 늘고 있다.

2013년 6월 주교 연수에서 결의된 뒤 2014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주교 현장체험 프로그램을 이러한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는 지난 10월 26일 위원장 주교와 위원들이 의정부교구 지금동 성당을 방문해 본당 신자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노사위)는 신자들과 소통하고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기 위한 토크콘서트를 꾸준히 열고 있다. 박신안 노사위 사무국장은 “노동 문제는 자기 생활 안에서 겪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며 “좀 더 가볍게”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회교리, 복음적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한 번의 강연으로 끝나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속적 활동과 연계되어야 한다”며 “강의를 듣는 분들도 자신의 생활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강연 형식의 행사가 너무 많다 보니 신자들 입장에서는 피곤해 한다고 할까. 늘 있는 일상처럼 느껴져서 소중함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하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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