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복음화위, 성당 찾아가 신자들과 직접 대화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가 본당 공동체를 방문해 신자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복음화위원장 이병호 주교와 총무 박강희 신부, 위원 7명은 10월 26일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의정부교구 지금동 성당을 찾아가 신자 7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위원회와 대화한 신자들은 본당 사목회장을 포함한 남자 4명, 여자 3명이었으며, 청년, 청소년 대표를 포함해 다양한 연령대였다. 대화에 참여한 남성 신자 중에는 공무원 등으로 일한 뒤 은퇴한 이들이 많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복음화위의 양해를 얻어 ‘본당으로 찾아가는 복음화위원회’라는 제목의 이 모임을 참관하며 취재했다. 행사 취지에 맞도록 발언한 신자들의 구체적 신상정보는 기사에 밝히지 않는다.

“교회는 정치 주장 삼가야” vs. “예언자직 소극적이어서 아쉽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치, 사회적 사안을 두고 성직자들이 입장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남성 신자들이 내놓은 두 갈래 의견이었다.

한 사람은 “우리는 위로 받고, 즐겁고 기쁘고 건강하게 일체감을 느끼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여러 활동을 하기 위해 교회에 모이는데, 요즘은 오히려 교회가 갈등을 부추긴다”며, 사제들이 “독선”에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본당에서 겪은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몇 가지 예를 들었다.

그는 삼성 등 재벌기업이 망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잘못에 대한 지적이기보다 저주에 가까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성경 읽기에 열심인 신자로,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긴 로마서 12장을 생활규범으로 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사제가 강론 중 특정 고위성직자의 외국어 실력이 형편없다며 깎아내리는 것을 듣고 “어이없었다”고 했다. 또 “사제들의 어떤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며 “공동체에는 여러 사람이 있으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찬성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회교리에 있다는 명목하에 고민 없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른 남성 신자는 오히려 지금의 천주교가 예언자 역할에 너무 소극적이라며 아쉬워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이 더 활발했고 김수환 추기경 같은 ‘어른’이 있었는데, 오늘날 천주교에는 김 추기경 같은 어른이 없다는 것이 그의 아쉬움이다. 또 그는 최근 ‘최순실 씨 비선실세 의혹’으로 드러난 파행적 정치에 대해 천주교가 하나된 목소리로 질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자들이 사회교리가 강조된 강론을 정치적 행위라고 비난하는 데 대해 그는 사회교리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편 또 다른 이는 “교회가 자꾸 정치적으로 입장을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제들이 정치 문제에 대해 “너무 편향적인 개인의 생각”을 강론 등 공적인 자리에서 내놓는다며 불편해 했다.

또 그는 자신도 사회교리 교육을 받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헌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를 열심히 읽어 봤다면서 “사회교리는 개인의 정치적 견해 표명과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국가유공자, 국가를 위해 죽은 군인, 경찰에 비해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천주교의) 추모가 지나치다”며 “균형이 맞지 않다”고 했다.

▲ 10월 26일 오후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들이 경기도 남양주 지금동 성당을 찾아가 신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강한 기자

청년, 청소년 신자들과의 대화

신자들은 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한국 교회와 나’를 주제로 발언 내용을 미리 준비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기획 의도에 따라 주임신부 등 본당 사목자들은 이 자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자들은 차례로 한 사람씩 약 30분 동안 위원들과 나란히 앉아 자신의 신앙생활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원들의 질문에 보충 설명을 했다.

청소년, 청년 대표로 복음화위와 이야기 나눈 신자들은 바쁜 학업과 취업 준비에 지친 젊은이들을 위해 교회의 배려가 필요하며, 한편으로는 청소년, 청년 신자들 스스로 신앙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신자는 본당 청년회에서 활동하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말 주님이 나에게 오셨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그는 청년회에 참여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단체에 속해서 하는 신앙생활을 원하지 않는 신자들’을 많이 만난다.

한 위원이 “청년들이 너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데 교회가 따뜻하게 대해 주면 성당에 오겠는가” 하고 묻자, 그는 “많은 청년들이 성당 오는 시간을 아까워하지만, 첫 발걸음과 즐거움이 중요하며, 본당에서 먼저 손을 내밀면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청소년 대표로 나온 신자는 주일미사 참례를 의무로 여기는 자신의 가치관은 부모 교육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는데, 자기 주변에는 미사 참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청소년 신자들이 많고 오랜 시간 ‘냉담’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 친구들에 대해 “신앙적 가치관 형성이 덜 된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학업과 학원 숙제 등 신앙생활에 충실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이해한다. 그럼에도 청소년 미사 시간에 빈 자리가 너무 많은 것을 보면 청소년석을 앞줄에 마련해 놓은 것이 민망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본당에서 청소년 미사와 청년 미사가 합쳐지고 그 시간대에 미사 참례를 원하는 성인들도 오다 보니 “모든 연령대가 모이는 미사가 됐고, 신부님의 강론도 어른들이 듣는 것과 비슷해졌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미사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강론도 청소년이 묵상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 신자의 생각이었다.

▲ 10월 26일 오후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들이 경기도 남양주 지금동 성당을 찾아가 신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강한 기자

정해진 기도문만 읽는 데서 벗어나
‘나의 말’로 표현하는 신앙으로

이날 행사의 마지막 손님으로, 직장 일을 마치고 오후 8시쯤 성당에 도착한 남성 신자는 천주교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더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체험을 능동적,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천주교에서는 이런 경험과 기회가 부족하다고 했다. 가톨릭 전례나 염경기도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평신도의 신앙생활이 기도와 성사 위주다 보니 읽고 듣는 데만 익숙해지고, 수동적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주교회의 각 위원회들이 심포지엄, 강연회 형식으로 신자들에게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적은 많지만, 본당을 찾아가 신자들로부터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이번 복음화위 행사는 특별한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최근 들어 주교단이 복지시설, 4대강 사업 현장, 소공동체 모범본당으로 ‘사목 현장 체험’에 나서기도 했지만, 교회 지도자들이 본당 신자들의 경험을 직접 듣고 공부하는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다.

복음화위 위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행사를 마치며 유혜숙 위원(대구가톨릭대 교수)은 본당 신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그동안 위원회가 열었던 어떤 세미나보다도 중요한 경험이었다며, 평신도들이 많이 양성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행사 기획을 주도한 주원준 위원(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은 오늘날 한국인이 말을 매우 잘하지만, 천주교에서는 박사학위를 가지지 않는 이상 평신도가 말할 기회가 적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평신도는 말할 준비가 돼 있다며, “주교님, 신부님들의 현장 방문도 좋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로고스(언어를 매체로 표현되는 이성 등을 가리키는 말)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가 한국 천주교에 대해 보편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를 본당에 와서 직접 들은 것에 그쳤다는 비판도 있었다. 전원 위원(신부,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은 “신자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들었다”며, 그 본당만의 독특한 사목을 체험하려면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신자들이 주교회의 위원회와 마주앉아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보편지향기도마저 “매일미사” 책에 쓰여 있는 대로 읽는 방식으로는 “100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신자들의 발언 기회가 더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는 한국 천주교회 ‘복음화’ 방안을 연구, 검토하고, 소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교회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국내외 선교 문제 연구, 정책 수립을 위해 주교회의에 선교위원회를 두라는 교황청 훈령에 따라 1985년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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