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형제 신부가 물어 왔습니다. 그 역시 지인의 고민 때문에 의문이 생겼나 봅니다. 배경 상황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이러합니다. 지인의 아버지는 평소에 세례를 받을 의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입원하여 투병 중에 의식불명이 되어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급한 나머지 가족은 아버지에게 대세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 대세가 유효한 것일까요? 의견은 크게 둘로 갈릴 수 있겠습니다. '한 번 베푼 세례이니 유효하다'와 '당사자가 평소에 세례를 원치 않았으니 그것을 토대로 아니다' 이렇게 두 의견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세례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세례를 줄 때 물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는지도 형식적인 유효성 조건이라 하겠습니다. ‘비상세례’라고도 불리는 대세에 대해서는 전에도 다루었던 “대세를 주는 방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뉠 수 있는 두 가지 견해를 좀 더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우선, 형식이 유효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세라면,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례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본당에 가서 대세를 준 사실을 보고하면 됩니다.

반면, 의식이 있었을 때 병자가 세례를 원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면(가족이 세례를 받으라고 권유했지만 그런거 필요없다는 식의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을 경우까지 포함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이런 세례는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형제 사제에게 상담을 청한 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의식불명 상태에서 고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헤아릴 수 없기에 이런 상황은 그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요구합니다.

▲ 사제가 병자에게 성사 주는 모습.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저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호흡기를 떼면 분명히 사망할 병자의 가족이 취한 선택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가족이 평소 고인의 태도 때문에 대세를 주지 않았다면 그것에도 동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민하였을 것이고 그에 따른 가족들 최선의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유사한 경우가 다시 발생한다면, 그 가족에게 가능한 한 대세를 베풀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습니다. 본인이 싫어했는데 그건 종교 강요입니다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사실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그 죽음을 현실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이들은 남겨진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의식불명의 부모, 자식을 두고 가족이 고민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형편이 닿는 대로 최선의 치료를 위해 애씁니다. 정작 의식을 잃은 당사자는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다해 봅니다. 의료적 차원의 노력은 그렇게 하면서, 영혼의 문제를 등한시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남겨진 가족은 떠나보낸 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대세는 그런 차원에서 의식을 잃은 병자의 의사와는 상관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병자는 오히려 그런 가족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떠나는 길에 하느님의 축복과 자비를 빌어 준 가족입니다.

그럼에도 병자의 뜻을 거스르는 듯하다는 기분을 느끼신다면, “조건 대세”를 활용해 보실 수 있겠습니다. 세례를 주려는 이가 의식이 혼미해져서 말을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내적으로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대하며,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하면’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죽음을 눈앞에 둔 이의 영혼을 아실 것이고, 가족들의 정성도 보실 것입니다.

복음에 이런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 5,18-20)

물론, 여기서는 그 중풍병자가 낫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신 것은 이 상황에서 그 병자의 의견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려는 그 병자의 친구들이 보여준 믿음과 노력이었습니다.

(교회법학자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무작정 대세를 베푸는 행위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분명 위로가 필요하지만 병자의 평소 태도가 세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면, 조건 대세를 베풀고 하느님의 자비를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