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제가 활동을 돕고 있는 기도모임에서 한 학생이 질문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롭게 맡은 일을 수행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고자 교회에 입문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인물은 나중에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고교시절 열심히 소년 레지오 단원 활동을 하며 저랑 제 친구들은 모여서 아주 드물게 신학적 토론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드물게’라고 한 것은 이런 질문들이 거의 우발적으로 던져진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고민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다가 담당 수녀님 혹은 신부님께 도움을 청하곤 했었습니다.

우리의 궁금증은 그때 끝난 줄 알았는데, 이런 질문이 지금껏 유효합니다. 여전히 교회를 다녀야 구원이 가능하다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분위기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속풀이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2000년이 넘도록 이어 오는 그리스도교의 역사 중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습니다. 벽을 향해 있던 제대의 방향이 회중을 향해 놓여졌기 때문입니다. 그게 별거냐고 묻는 분들이 계실 터이지만, 사실 이런 전례적 변화는 내적으로 엄청난 신학적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거대한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교회가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과 함께 호흡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의 변화에 반발하여 가톨릭 교회를 떠난 사람들(그들은 떠나서 보수적 교파로 남았습니다)도 있고, 교회의 개방적 분위기에 해방감을 느끼며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 수도자 성직자의 삶을 포기하고 환속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바티칸공의회는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는 개념도 선물로 줬습니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진리를 탐구하며 도덕적 양심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세례를 받지 않았다지만, 하느님은 그런 사람을 당연히 당신의 자녀로 보실 것이기 때문에 그 역시 그리스도인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변에서 예수님과 닮은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있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억울하고 슬퍼하며 병들고 지친 사람들, 떠도는 이들,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사람들, 불의한 세상과 맞서고 있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마태오 복음의 5장 첫 부분에서 나오는 산 위의 가르침에서 나열되는 이들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비록 그들이 어떤 연유에서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드러난 삶이 그렇게 실천적이었다면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곧,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고 교회에 매이지 않으면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손익계산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그런데 어느 누가 체험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는데 이분의 삶을 더 잘 따라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요? 이분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결국 예수님이란 분을 알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이들만이 해당될 것입니다.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우리만을 생각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입장에서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분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그만큼 ‘더’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삶을 더 근본적으로 따라 살아가는 것이겠습니다.

세례를 받으나 안 받으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인지에 따라 분명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왕 그리스도인이 되신 분들은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고 있다는 걸 행복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걸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지요.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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