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지금 우리 삶의 철학 - 유대칠]

거대한 성당의 드높은 웅장함은 하늘의 빛을 가릴 지경이다. 청빈(淸貧, paupertas)의 삶을 신앙의 삶으로 여기던 교부의 정신은 사라지고, 민중의 현실에서 교회는 점점 멀어졌다. 이젠 민중의 아픔이 녹아내린 더불어 있음의 공간이라기보다 그저 또 하나의 이기 집단이다. 이기 집단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다. 얼마나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소유가 곧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성당 건물과 많은 신자들의 수가 곧 자기 존재의 확인이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것이 교회라는 존재의 본질에 충실한 것인가? 소유를 통한 자기 존재의 확인이 과연 교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것인지? 중세철학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고민 자체가 가진 자들에겐 불편하다. 자신의 소유에 대해 불편한 소리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해야 하고 말해야 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이 불의한 것 앞에서, 고개 돌리고 앉아 가진 자들의 귀에 달콤한 이야기만 한다면, 그저 언어 유희,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이 철학이기 위해 철학은 분노해야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궁리하고 소리쳐야 한다, 중세철학자도 철학자였고, 철학을 했다. 그러니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 교황 요한 22세.(1316-34)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교황 요한 22세(1316-34)는 교황권의 강화를 꿈꾸었다. 교황권 중심으로 모든 분파적인 입장들이 통일되길 원했다. 당연히 소수 의견들은 묵살되었다. 그 대상 가운데 청빈을 강조한 영성주의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속하는 이들로 가난과 청빈의 신앙을 강조한 이들이다. 거대한 성당 건물이 아닌, 가난한 신앙, 가난한 그리스도의 삶으로의 회귀를 강조한 인물들이다. 1317년 64명의 영성주의자들이 교황을 찾는다. 하지만 그 길이 마지막이 되었다. 강압 속에 60명이 자신의 뜻을 포기하였고, 그중 4명은 청빈의 삶에 근거한 영성주의를 끝끝내 지키며, 화형을 당하였다. 비극이었다. 청빈의 정신이 이단이 되는 시대였다. 당시 요한 22세는 청빈도 좋고, 신앙의 정숙함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황, 즉 교회 권력에 대한 복종이라 공공연히 말하였다. 이러한 교황의 의지에도, 철학자와 신학자는 침묵하지 않았다, 따지고 들었다.

장 키도르(1255-1306)는 따지며 묻는다. “교황이 진정 교회 재산 전체를 소유한다 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소유권이 교회 공동체에게 있는 것이라면, 교황은 그저 위임받은 것을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장 키도르의 따짐은 제법 날카로웠다. 교황과 교회권력은 교회 공동체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사용하는 것일 뿐이지, 그 권력의 소유자는 아니란 말이다. 간단히 말해, 소유권과 사용권은 다르단 말이다. 이에 대하여 요한 22세는 사용권과 소유권은 현실적으로 동일하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말은 결국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증거하는 셈이란 논리다. 이러한 교황의 반론은 또 다른 강력한 분노를 유발하였다. 바로 윌리엄 오캄(1285-1349)과 프란치스코 수도회 총장인 미켈레 다 체세나(1270-1342)의 분노다. 오캄에게 이러한 교황의 생각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결코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오캄에 따르면,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것은 공동소유권이었다. 즉 신은 어느 한 명의 것으로 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개별적인 소유의 개념이 등장한다. 추방 이후 인간은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게 된다. 이에 따라 자기 노동의 결실이 생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개별적인 소유권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 개별적 소유권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때론 누구의 것인지를 두고 법적으로 따져야 할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국가권력이다. 결국 소유권이란 국가권력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조건, 그 조건 속에서 서로의 충돌을 위하여 존재하는 국가권력에게나 어울리는 고민이다. 교회는 그러한 곳이 아니다. 만일 교회가 현실적인 소유권으로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면 국가권력의 아래 들어가면 된다. 교회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야 한다. 그렇기에 교회의 재산은 하느님이 최초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에게 허락하였듯이 공공의 것으로 있어야 한다. 누구의 것이 아니다. 교회의 재산은 교황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재산은 교회권력의 소유물이 아니다. 교회권력은 오직 위탁받아 사용하는 사용권만을 가지고 있다. 오캄에게 요한 22세의 생각과 행동은 분명 월권이었다.

▲ 윌리엄 오캄. (이미지 출처 = it.wikipedia.org)
솔즈베리의 요한(1115?-1180)은 정당한 왕과 부당한 왕을 구분하며, 정당한 왕은 정치공동체 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치하는 인물이라 하였다. 에지디우스 로마누스(1243-1316)는 정당한 왕은 자신의 사적인 이익 혹은 친인척의 권리, 그들의 건강 그리고 쾌락만을 챙기는 인물이 아니라 했다. 만일 이러한 것에 빠진 이가 있다면, 그는 독재자다. 다른 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자신의 사사로인 이득만을 챙기는 독재자다. 어떤 경우에도 독재자는 정당한 정치대표자가 아니다. 국가는 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다운 왕은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 국가구성원 모두의 좋음을 위해 궁리하고 실천해야 한다. 오직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고, 근거 없이 복종하라 강요하는 권력자라면 그는 그저 독재자일 뿐이다.

오캄은 교회 독재자가 싫었다. 그리고 에지디우스 로마누스는 국가 독재자가 싫었다. 소유에 집착한 그러한 권력자들이 싫었다. 교회도 국가도 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지금 여기를 보자. 부끄럽다. 종교권력도 국가권력도 소유물에 집착한다. 종교도 국가도 그들의 것이 아니다. 모두의 것이다. 그들은 단지 위임 받은 것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교회와 국가는 절대 그들의 것이 아니다. 이 쉬운 상식 앞에서 우리는 부끄럽다. 중세의 분노, 그 오랜 과거의 분노 앞에서 여전히 부끄럽다.

 
 

유대칠(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적었다.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한 공부보다 공유를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작은 고전 세미나와 연구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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