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노동’ 토크콘서트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노사위)가 신자들과 소통하고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기 위한 토크콘서트를 꾸준히 열고 있다.

노사위는 11월 17일 저녁 서울대교구청에서 ‘여성과 노동’을 주제로 토크콘서트 행사를 열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노사위 상임위원들이 여성, 노동에 대해 말하고, 참가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노무사, 경제학자, 경영학자 등 노사위원들의 발표자료가 나왔지만, 위원들은 자료 내용과 별도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노사위 여성 위원들은 각각 ‘돌봄 노동’과 ‘무급 노동’에 대해 발언했다. 이현주 위원(엘리사벳,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족을 돌보는 일, 식사 준비, 청소, 빨래, 자원봉사, 손님 접대 등 가정 안팎의 무급 노동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무급노동 시간은 일본, 사회활동을 많이 할 것 같은 유럽 나라들에 비해 매우 짧다고 말했다.

그는 무급 노동 시간이 짧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며 “이런 나라는 수면, 여가 시간도 짧다”고 지적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 쓰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다른 일에 쓸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이 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은 “편의점에서 식사를 대충 때우고, 내 가족을 내가 못 돌보고, 청소 제대로 못하고” 산다고 지적했다. “편의점 판매고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데,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그는 무급 노동 시간이 짧은 나라의 특징은 ‘저출산’이라며 “아이를 낳아 봤자 고생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저출산에 대해 출산비용을 대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볼 때 무급 노동 시간이 짧은 한국 현실을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는 ‘저임금’이다. “저소득과 관련 있다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분들은 덜 일해야 할 것 아닌가? 그분들도 정말 오래 일한다. 삶이 불안하다. 내가 아프면 어떡하지? 아이 교육비, 초중고교 학비만 대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주거비도 엄청나게 비싸다. 연금이 훌륭한 나라가 아니기에 늙어서 쓸 돈도 마련해야 한다. 일생이 불안하니 일할 수 있을 때 많이 일해야 하는 것이다.”

‘돌봄 노동’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전개된 윤자영 위원(스텔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도 비슷했다. 윤 위원은 “옛날에는 여성이 돌봄 노동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점점 돌봄의 불이익이 커지고 있다”며, 돈도 생기지 않고, 돌봄 대상의 대표격인 자녀가 나중에 나를 돌봐 주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노동을 하려는 사람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 11월 17일 저녁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노동사목위원회 토크콘서트 행사에서 윤자영 위원(가운데)이 말하고 있다. ⓒ강한 기자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는 가족이 도맡아 하던 돌봄 노동도 누군가 임금을 받으며 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예컨대 어린이 보육, 노인 요양 등), 대부분 취약계층 여성이 취직하는 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윤 위원은 정부가 ‘돌봄’이 가치 있다고 보고 많은 지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돌봄 노동은 매우 낮게 평가받고 있다고 본다. 한편, 그는 돌봄에 대한 교회의 관점은 ‘사랑과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화”된 관점 아니냐며 꼬집었다.

진행을 맡은 노사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방법론에 따라 관찰, 판단, 실천까지 다루자고 제안했다.

이에 손창배 위원(바오로, 함께하는 노무법인 노무사)은 주로 자신이 상담을 하며 겪은 천주교계 일터에서 벌어진 문제들을 소개했다. 가톨릭 재단에 속한 큰 시설에서 전산직으로 일하던 여성이 상사들(성직자, 수도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육아휴직을 한 뒤 돌아오자, 출판 영업직으로 발령을 받았고 버티다 못해 사직한 것은 그가 소개한 최근 사례다.

그는 “법적으로만 말하면 육아휴직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것”이라며, 형사처벌 대상도 될 수 있지만 그 직원이 이의제기 없이 일을 그만뒀기 때문에 밖으로 불거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손 위원은 교회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순종만 강요할 수 없으며, “너희가 고생한 만큼 천국에서 보상받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며 기관장, 시설장으로 파견되는 성직자, 수도자가 노동법 교육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노동법 교육뿐 아니라 노동법을 교회정신으로 행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게 하는 교육과 정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유 토론 시간에 한 수녀는 “제가 느끼는 교회 단체의 노동자 현실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며 “야근에 대한 불만이 나오면 ‘너는 왜 사명감이 없냐’고 직접 말하지 않지만 그런 느낌을 받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휴직과 남녀 급여 차이 문제도 교회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노사위가 교회 안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도 클 것 같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노동자로 생활했다는 여성 참가자는 “지금도 노동자라고 하면 성당에서 사무실 하나 안 내 주고, 노동자들이 뭉치면 싫어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수님은 노동자(목수)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성서에만 있는 말이고 교회 안에서는 (노동자로서 활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본당 사목위원 중 여성 노동자가 있는 걸 봤냐”고 물으며 “노동자가 떳떳하게 살게끔 해 주는 것도 교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정수용 신부는 “전문가들이 나와 학문적 이야기만 딱딱하게 나누는 자리보다 열린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는 형식을 해 보자는 뜻으로 토크콘서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교구 노사위는 노동절 즈음이었던 2015년 5월 10일 ‘일과 신앙의 괴리’를 주제로 비슷한 형식의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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