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8]

우리집 낮은 울타리를 둘러싸고 가으내 그 곁을 지나가는 이들 마음 한들한들 건드려 주었던 코스모스 군락이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갈색 줄기 다발로 변해 버렸다. 나는 꽃의 아름다운 한때를 즐긴 사람으로서 그의 몰락을 더 두고 보기가 슬퍼져 줄기를 죄다 잘라 마른풀 더미 위에 내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11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한 친구가 일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사실 나도 그만큼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찌 지내?”하고 말을 걸었더니 친구는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한테 지배를 당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이를 반성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매일 밤 새벽 두세 시가 넘도록 현실에 분개하고 슬퍼하다 엉엉 울면서 잠이 든다고 하였다. 그녀의 심경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도 나도 엉뚱하게 매운 통닭이나 엽기 떡볶이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려다 몸무게가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서울에 계시다 산꼭대기 황토 집에 한 달 만에 다니러 오신 교수님이 우리집에 호박죽 한 그릇 잡수시러 오셔서는 소파에 앉으시자마자 대뜸 “세상 참 무섭다.”고 하신다.

당신 집 마당에 놓아둔 돌절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시골 마을을 돌며 돈 되는 옛날 물건에 눈독을 들이는 골동품 도둑들의 짓이 틀림없었다. 교수님은 당신 집 안엔 금은보화는 없지만 한평생 공들인 유화작품이 많다고 그놈들이 다시 오면 어쩌냐고 걱정이 대단하셨다. 나는 그놈들은 그림 보는 눈이 없어서 그걸 갖고 갈 생각을 못하는 놈들일 테니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로가 폐렴으로 투병 중이다. 바로 한 달 전에 입원했던 병원에 다시 들락거리게 되다니.... 입원을 또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입원실이 가득 차 집에서 요양 중이다. 약 안 먹겠다고 발버둥 치는 로에게 아침, 점심 약을 먹이다 목에 급성 담이 내렸다. 메리가 읽던 위인전기 표지의 스티븐 호킹 박사와 비슷한 각도로 고개가 꺾였다. 오른쪽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면 재빨리 고개를 돌려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모를 전염 가능성 때문에 메리와 욜라는 할머니 집에 격리되 있는 중인데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싶은 게 아이들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이런 경우 아이가 보고 싶은 마음보다 내 몸 편한 쪽이 더 달콤했었는데 이제는 내 마음이 이렇게나 불편하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멍하니 로를 안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욜라의 담임이다. “어머니~ 방금 욜라, 유치원 하원차 탔어요. 오늘은 밭에서 무를 뽑아서 그걸 하나씩 들고 가는데 무가 커서 많이 무거울 거예요~ 참 어머니, 오늘 면담 있는 거 알고 계시죠?”하신다.

나는 꿈속인 듯 허우적거리며 말했다. “아..니...요. 면담이.... 그게... 언제인지.... 아, 제가... 확인을 못....”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그러나 조심스레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 저번 주에 저랑 통화하시고 오늘 오후 세시 사십분으로 면담 일정 잡으셨어요.” 선생님의 아하하하 웃으시는 겸연쩍은 웃음이 내 멱살을 잡아 흔들자 그제야 모든 것이 기억났다. 어이쿠! 욜라 유치원 면담이 오늘이로군! 달력에다 적어 놓는 걸 깜빡했더니 이런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는 제정신이 돌아왔다고 선생님을 안심시키느라 몇 분을 더 허비한 뒤 최소한의 단장을 한 후 로를 들쳐 업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개별 면담이다. 아이의 비밀스런 유치원 생활 전반에 대해 선생님의 심도 있는 견해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다. 특히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일절 말을 하지 않는 남자아이를 둔 어머니들에게는 집에서와 다른 아이의 얼굴을 알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사람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몇 장과 색종이 접기 작품 몇 점과 그밖에 다양한 활동자료들과 사진이 끼워진 두툼한 욜라 전용 파일을 꺼내셨다. 선생님은 욜라가 1학기에 비해서 사람을 사람답게 그리게 되었으며 종이접기를 선에 맞춰 곧잘 접게 되었다는 것과 실 꿰기 같은 경우는 시침질 외에 감침질까지 하게 되었다고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욜라가 장난을 잘 치는데 얼마나 장난을 재밌게 치는지 그러지 않았던 지난 시간 그 본능을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또 욜라는 친구들에게 당한다고 해야 하나 본의 아닌 양보를 해야 할 때도 많지만 그게 또 뒤끝이 없고 아무렇지 않아 하더라고 덧붙이셨다.

▲ 욜라의 그림 솜씨. ⓒ김혜율
나는 “선생님, 욜라가 쿨하지요? 그리고 단순하고요?” 하고 물었고 선생님은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이미 저번 주 부모참관수업 때 욜라가 손을 번쩍 들고 발표도 하고, 옆에 앉은 친구를 다정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만족했다. 엄마가 유치원에 왔는데도 심드렁해하는 얼굴과 결코 수업시간에 똥 이야기, 돼지 이야기를 하지 않던 욜라가 대견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더 큰 걸 바라면 욕심을 내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욜라의 파일을 탁탁 정리하시며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자.

“유치원에서 지내는 욜라와 메리를 보면 어머니께서 집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신 게 보여요.”

나는 방금 들은 말이 바로 해석이 되지 않을 지경으로 혼란에 빠져 버렸다.

이건 내가 태어나서 들어 본 가장 기쁜 소식 베스트 3위 안에 드는 말. 지금껏 남몰래 줄줄 흘리던 눈물의 계곡에 잠겨 있던 나는 갑자기 꽃들이 만발한 보송보송한 들판에 건져 올려진 기분이었다. 내 살다 살다 이런 칭찬을 다 듣게 되다니. 브라보!

그간 아이들이 큰소리로 싸우고 울어 재낄 때마다 고함을 지르면서도 동네 어르신들이 나를 아동학대혐의로 신고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일이며, 오늘 오전만 하더라도 메리와 욜라가 하도 말을 안 들어 스트레스 받아 못 살겠다던 시어머니의 한숨 섞인 성토에 전화기에 대고 허리 굽혀 절을 몇 번이나 했던 일이며, 폐병으로 기침을 쿨럭 대는 로의 병 수발을 밤낮으로 들면서 다 내 탓이다라고 가슴을 치며 자책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욜라의 유치원 면담을 하고 난 뒤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아무리 나라가 엉망진창이고 아녀자들은 다이어트를 중단하고 매일 밤 야식을 먹어 대고 동네엔 도둑놈들이 들끓고 코스모스 줄기가 한 줌 먼지 보푸라기가 되어 바스라져 가는 나날들이라 할지라도 매일 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 아이들은 참 착한 아이들이다. 엄마 아빠가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든지, 성이 났는지, 정신이 반쯤 나갔는지, 잘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이다. 한반도에 1987년 태풍 셀마가 들이닥쳤을 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비바람이 우리가 사는 4층 아파트 창문을 때렸고 안방 벽면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무언가 필사적으로 막아 내고 지키려 하시던 부모님의 등이 떠오른다.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만한 나이였음에도 나는 그때 부모님의 등을 보며 과도한 안락함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난 태풍이었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나에겐 지나가는 비에 불과하게 느끼게 해 준 건 바로 흔들림 없는 부모님의 존재였다. 그때 집이 통째로 날아가거나 부모님이 그 앞에서 오열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다행히 나에겐 그런 일이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뉴스 속에서나 나오는 일이었고 세월이 흘러 흘러 오늘의 뉴스도 과거 태풍으로 한반도가 쑥대밭이 되었다던 소식 못지 않다.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젖고 여기저기서 지붕이 폭삭폭삭 무너지고 사람들이 떠내려 간다. 이미 조금 자란 아이들은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풍랑에 맞서고 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제 엄마 아빠의 등을 보면서, 혹은 손을 붙잡고 언젠가는 책에서나 접하게 될 오늘이라는 역사를 실감하고 있다.

지금 아무런 위험도 위기도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 쑥쑥 크고 있는 나의 어린 자식들이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다가왔다. 메리, 욜라, 로을 위해서라도 나는 잘 살아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난 전혀 몰랐어. 다만 그때 엄마의 얼굴과 등이 생각나. 유난히 단단해 보였던.”이라고 말할 때가 올지도 모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힘을 내어 멋진 아이 욜라의 성공적인 유치원 개인 면담에 보답하고자 훗날 그의 여자(지난 호 칼럼에서 이미 등장한 딴 여자의 존재에 고무되어. 그래, 내가 한참 앞서가는 거 인정한다.)를 위해 ‘시어머니 십계명’을 만들어 부록으로 첨부한다. 말하건대 이 십계명이란 다름 아닌 내가 나 보라고 만든 것이다. 나이 들어 가는 내가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오랫동안 곱씹어 내면화시켜 나가야 할 나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오른쪽으로 팍 꺾였던 목도 점차 호전되어 이제 제자리까지 약 5도쯤 남겨 두고 있다. 나는 내친김에 오늘 잠들기 전 노화방지 에센스를 두 통 살 작정이다. 한 통은 내 얼굴에 나머지 한 통은 친구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위한 것이다. 태풍의 눈 안에서 아직은 멀쩡히 살아 연명하는 썩은 나무가 있다면 머지않아 기둥뿌리까지 죄다 뽑혀 나가는 광경을 환한 얼굴로 맞이하고프다.

부록

시어머니 십계명
1. 내 말을 하기보다는 며느리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듣고 또 듣는다.
2. 애썼다. 잘했다. 고맙다. 이 세 마디를 많이 한다.
3. 며느리를 안아 준다.(처음 본 순간부터 버릇 들인다)
4. 긴말 대신 편지를 쓰고 조언이 담긴 책이나 영화를 추천해 준다.
5. 맛있는 집, 좋은 장소에 며느리를 데리고 간다. 물론 돈은 내가 다 쓴다.
6. 나의 생일에는 며느리보고 여행을 가라고 한다. 나 또한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
7. 며느리 집에 불시에 방문하지 않는다.
8. 며느리의 처지를 여성의 삶 속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며 연민의 감정을 가진다.
9. 며느리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10. 며느리의 꿈을 지원한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