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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로의 병간호[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6]
김혜율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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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7  14: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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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병치레는 나중 무엇을 남기나? 아이 본인에게는 모름지기 쓴 약과 주삿바늘에 대한 추억을 남긴다. 자기를 쳐다보는 근심 어린 엄마의 눈빛과 가물한 의식 속 제 이마에 와 닿던 손의 감촉, 그것의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기억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던 옛날 광고 문구에 대한 기억과 쪼그라든 간, 눈 밑 그늘과 깊어진 주름, 그리고 병원비 지불 영수증 다발 따위를 남긴다.

로가 폐병으로 나흘간 입원을 하고 돌아온 집에는 입원 준비물이 뒤엉킨 트렁크 가방 두 개와 보호자이불을 쑤셔 넣은 커다란 헝겊 가방이 현관문 옆에 내동댕이 처져 있다. 식탁 위엔 두툼한 약 봉투와 로의 병원 기록 서류 뭉치가 놓여있다. 보험사에 보낼 서류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귀찮아지는 나는 결국 보험금을 타 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러지 말고 아이들의 병원 기록 만큼은 자동으로 항공사 마일리지로 전환된다든가 영화표나 미용실 쿠폰으로 지급이 되면 좋겠는데 말이다.

퇴원 뒤 집에 와서 로와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12시간 동안 잠을 자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원 기간 동안 로와 나는 잠다운 잠을 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로는 휠체어에 앉아서 쪽잠이라도 잤지만 나는 눈을 감은 채 휠체어를 밀다 병원 복도 코너에서 그대로 직진하여 맞은편 병실 문짝을 뚫을 뻔한 이후로 눈을 치켜뜨고 다니느라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입원 사흘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누구더라 하는 궁금증도 잠시, 단박에 떠오르는 이가 있었으니.... 추노! 머리를 산발한 채 땀범벅이 된 얼굴로 웃음인지 광기인지 모를 스산한 표정으로 눈을 희번뜩이는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추노가 아니라면 그에게 쫓기는 도망가는 노예라 해도 되겠다. 그렇게 내가 이제나 저제나 쫓기는지, 쫓는지 모르게 병실을 돌았는 데 반해 로는 입원해서 퇴원하기까지 단 한 번도 발로 땅을 딛고 걷지 않고 오로지 내 품에서 휠체어로, 또는 휠체어에서 내 품을 거쳐 병실 침대로 허공을 날아다니며 나흘을 보냈다. 최근 내 팔뚝에 자리잡은 이두박근이 아니었다면 하루에 수십 번 로와 링거액 주머니를 들었다 옮기고를 결코 반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급조된 알통이란 것이 그리 훌륭한 것은 못되었는지 처음엔 로를 들어 휠체어에 사뿐하게 내려 놓던 것이 차차 살 떨림 현상과 더불어 신음 섞인 기합을 넣고도 로를 휠체어에 메다 꽂아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닷새를 못 넘기고 하루만 더 있다 가라는 담당의에게 이제 그만 퇴원하면 안 되겠냐고, 조금 남은 병은 집에서 고쳐 보겠다고 졸랐지 뭔가.
 

   
▲ 휠체어에 앉아 잠을 자는 로. ⓒ김혜율

며칠 비웠다고 그새 모든 게 낯설어진 집을 둘러보며 녹용 엑기스를 한 봉지 뜯어 마시고 있자니 로의 곁에서 24시간 밀착 병간호를 한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로는 아프다고 유세를 많이 떠는 타입이었다. 로에 비하면 이전 메리와 욜라의 입원 간호는 지중해에서 보내는 사치스러운 휴가와도 다름없었다. 그땐 병원 보호자식을 주문해서 그 밥을 다 먹고도 아이가 남긴 환자식도 좀 뺏어 먹었고 병상 난간에 기대 앉아 책을 읽으며 개폼을 잡기도 했다. 창밖 풍경을 감상하면서 병원 밖에서 조달되는 간식을 먹었고 심심해서 하품을 하기도 했으며 밤이면 링거 줄이 꼬이는 것만 아니라면 짬짬이 잠도 잤다. 하지만 로의 병 수발은 휴식이니 여유니 하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로는 제 숟가락에 밥이 한 톨이라도 올려지면 역정을 내며 숟가락을 뒤집고 애먼 국사발에다 화풀이를 했고, 내가 밥 먹는 것도 순순히 두고 보질 않았다. 한참 먹고 있는 밥그릇 뚜껑을 강제로 닫아 버리고 반찬을 포크로 찍어 내 콧구멍에 집어넣으려 했으며 식판을 흔들고 숟가락을 휘둘렀다. 그 난리를 못 이기고 삼삼하게 간이 배인 고소한 가자미 구이를 한쪽 면도 채 못 뜯고 식판을 물러야 했던 그때의 심정이란!

하지만 밥을 양껏 못 먹어도 마음의 양식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 응, 되지 않는다. 남편이 책 두 권을 싸 주었는데, 그중 책 한 권은 머리말까지 읽었고, 나머지 한 권은 베개로 썼다. 책을 베개 삼아 웅크린 채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잠자리의 불편함은 마치 장작더미 위에서 쓸개를 맛보는 것과 같았다. 호흡기 환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밤이면 병세가 악화되는 로는 격렬한 기침을 했고 그때마다 밖에 나가자고 보챘다. 그러면 나는 옆 침대 환자들 깰세라 얼른 병실 밖으로 나가 휠체어에 로를 앉히고 비상등이 파리하게 비추는 병원 복도를 걸었다. 그럴 때 밤의 병원은 낮과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어두운 복도로 환한 빛이 새어나오는 간호사실에서는 간호사들의 잡담 소리가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렸고 휴게실 음료수 자판기가 윙 하고 돌아가는 소리는 거인이 내쉬는 숨소리 같았다. 그렇게 내 잠이 달아날 즈음 로는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밤새 잠든 로를 침대에 눕혔다 휠체에 태웠다를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아침밥을 실은 트레일러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 오곤 했다. 그것은 어느새 오전 8시가 되었음을 알려 주는 소리였다.

힘들다면 힘들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젠가는 퇴원을 하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야말로 누나도 형도 없이 엄마와 단둘인 로에게 얼마든지 ‘오냐오냐’를 해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 그건 정확히 로의 ‘배반의 약 복용 사건’이 있기 전까진 그랬다. 로는 약을 꿀에 재운 듯 달달하게 조제하기로 소문난 약국에서 약을 지어 주어도 약이라면 온몸으로 격렬하게 거부하는 아이였다. 어른 두 사람이 붙어도 로의 발버둥과 도리질을 저지할 수 없어 약의 일부는 로의 입속이 아닌 목이나 귀 뒤로 흘려 보내야 했다. 나는 찐득한 설탕 시럽 속에 숨겨진 약의 쓴맛을 감지하는 로의 미각이 너무 섬세한 탓이라 여겼다. 그런 로가 입원 기간 동안 꼬박 하루 세 번 약은 어떻게 먹었을까? 당연히 먹을 턱이 없었다. 로는 약병만 보면 감마 광선에 노출된 헐크로 돌변해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해 어떡하든 약을 뱉으려고 애썼다. 그런 로를 혼자 대응하다 보면 로가 뿜어낸 약을 바로 쓸어 담아 입에 쑤셔 넣는다고 해도 약의 절반은 놓치게 되었다. 약의 손실이 너무 컸다. 로가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그 순간 필요한 건 또 한 명의 손아귀 힘이라 판단한 나는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간호사는 너무나 믿음직한 얼굴로 로의 약통을 넘겨 받고 나서 로를 보며 딱 이 한마디를 했다. “꿀~꺽!”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곧 한바탕 난리법석이 일어날 텐데 그때 나는 로의 팔다리를 맡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니 글쎄 로가 휠체어에 똑바로 앉은 채로 입을 따악 벌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자그마치 5cc나 되는 물약을 한 번에 삼켜 버렸다. 정말 ‘꿀 꺽’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러고 나를 잠깐 쳐다보았을 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잖은 얼굴이다. 혹시 로가 실수한 건가? 어떨결에 당한 건가? 하지만 로는 그 다음 약도, 그 다음다음 약도 자발적으로 입을 벌리고 한번에 꿀! 꺽! 삼켰다. 내 앞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약을 못 먹던 로가 간호사 앞에선 약을 물처럼 삼키다니. 아무래도 권위에 복종하고 만 것 같았다. 제 손등에 주사를 놓고 청진기를 들이대고 체온을 재는 간호사의 무시무시한 권위에 그만. 그렇다면 그동안 내 얼굴에 약을 뿜어내고 괴성을 지른 것은 엄마를 업신여긴 것이 된단 말인데.... 정말이지 그건 배신이었다.

그 배반의 약 복용 사건은 나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눈에 콩깍지가 벗겨져 바라보는 세상은 정말이지 딱한 곳이었다. 입원실이 열여남은 개, 환자 수 대략 25명 정도인 이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은 다들 건강하지만 어쩌다 잠깐 아픈 아이들이다. 그러기에 다들 아픈 가운데서도 생기가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 아파보이는 아이들은 몇 안 됐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픈 걸 핑계로 제 엄마(할머니)에게 마음껏 응석을 부렸다. 울거나 고집을 부리고 떼를 썼고 엄마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을 끝도 없이 했다.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받아주는 엄마야말로 지칠 대로 지쳐 환자가 다 돼 가고 있었다. 지고지순한 천사 같은 엄마로 이루어진 간호군단 속에서 나 혼자만 불순분자 같았다. 로가 자신을 휠체어에 태워 계속 요리조리 갈 곳을 지시하면서 성질을 부릴 땐 나도 내 성질머리 죽이느라 애 많이 썼다. 그런데 사정을 더 살펴보니 그렇게 떼를 쓰고 엄마를 마구 부려 먹는 아이는 엄마가 고픈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의 요구를 죄다 들어주려고 하는 엄마는 아이 곁에서 지내는 시간이 적은 엄마들이었다. 대개가 맞벌이를 하는 까닭으로 아픈 아이 앞에서 죄인이 돼 버린 엄마들이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 마음을 알고 있는 듯 과잉행동을 통해 평소 엄마와 지내는 시간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줄곧 고함지르고 울고 반항하는 맞은편 병상의 다섯 살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 쓰읍하고 눈을 부라렸던 걸 후회했다. 일곱 살 여자 아이가 로를 놀려 먹고 얄밉게 군다고 비타민 안 주고 혼자 먹은 걸 후회했다. 그리고 저 엄마는 바본가, 애가 자기 머리 꼭대기서 놀고 있는데 그걸 모를까 하고 혀를 찼던 걸 후회했다. 그리고 내가 아까 벗겨 버렸던 내 눈의 콩깍지를 다시 찾아 썼다. 자고로 사랑은 눈에 콩깍지가 좀 붙어 있어야 되는 법이다. 다만 그것은 내 아이의 못난 부분마저 그러려니 하고 감싸주는 그것마저 안쓰럽고 예쁘게 보려는 콩깍지다. 그래, 이번에 로의 병치레로 내게 남겨진 것, 그것은 조금은 헐거운 콩깍지 한 쌍이기도 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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