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5]

어느 날 목욕탕에 가고 싶어진 나는 로를 데리고 대중 목욕탕에 가는 걸 도전해 보았다. 사람들 많은 곳에 걸핏하면 우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날은 왠지 자신이 있었다.

목욕탕 이용객이 적을 것 같은 월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유황 온천물이 나온다는 동네 큰 목욕탕엔 주로 할머니 단체 손님이 오곤 하는데 그날은 한산한 주차장과 하품을 하는 목욕탕 매점 아줌마의 졸리운 얼굴에서 쾌적한 목욕을 예감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목욕탕이라는 데를 와 보는 로와는 사전에 합의를 본 바 있다. 로의 눈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더랬다. “로~ 우리 목욕탕 갈래?” 그랬더니 로가 아주 귀엽게 “응!”하고 대답을 하였다. 물론 로는 아직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무엇을 물어보든 “응.”하는 대답밖에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십분 활용한 나의 수작이었지만 로의 긍정적인 답변에 자신 있게 목욕 짐을 꾸렸었다.

하지만 막상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서니 로는 낯선 목욕탕 안의 광경에 발이 얼어붙는 듯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탕, 온탕, 냉탕, 이벤트탕, 폭포수 등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 피어오르는 목욕탕의 증기 속에 아련하게 보이는 가운데, 숨막히는 더운 공기가 온 몸을 감싸는 이곳이 로에게는 처음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엄마를 따라온 꼬마 손님이 많은 환영을 받는 곳이 대중 목욕탕이란 곳이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를 따스한 애정의 눈길로 쳐다보는 곳도 대중 목욕탕이다. 아니나 다를까 적당한 자리를 잡고 의자와 바가지, 유아 욕조를 확보하는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많은 목욕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소녀 가장 아니 엄마 가장이 된 기분으로 내 몸뚱어리 하나만도 건사하기 힘든 와중에서도 천방지축 로를 이리저리 달래 가며 씻겨 주었다.

▲ 어느 날 목욕탕에 가고 싶어진 나는 로를 데리고 대중 목욕탕에 가는 걸 도전해 보았다. ⓒ김혜율

그러나 목욕탕은 고된 노동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커다란 물통에 얼음을 가득 넣은 냉커피, 녹차 같은 음료수를 마시며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수 있다.(남편의 증언으로는 남탕에는 별도로 제조해서 파는 음료수는 없다고. 이는 아마 여탕만의 문화인 것 같다.) 나는 로의 즐거운 목욕탕 체험에 도움이 될까 해서 매점에서 사 들고 온 흰 우유를 로에게 권했다. 아기 욕조에 앉아 차가운 우유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고 있는 로는 흠잡을 데 없는 목욕인이 다 된 것 같았다.

자, 내친김에 탕에 들어가자. 나는 로를 안고 35도의 미지근한 미온탕에 들어갔다. 바로 옆 뜨끈뜨끈한 온탕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로에게 당장은 무리일 것 같아 참기로 했다. 로가 탕에 들어가자마자 탕 안의 아주머니들이 로를 반겨 주며 말을 걸어 오셨지만 그저 물이 무서운 로는 겁을 집어먹고 내게 매달렸다. 내가 로를 탕에 적응시키려 애쓰고 있는 중 목욕탕 안으로 로 또래의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오늘 목욕탕의 두 번째 아기 손님이다. 그런데 이 아기는 엄마 외에도 이모, 외할머니와 함께였다. 이렇게 목욕탕에 3대가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아기를 한 사람이 맡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자신의 몸을 씻고, 또 다 씻은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옷을 입히는 동안 나머지 사람이 몸을 마저 씻고 나가는 목욕협동팀이 꾸려진 것이다. 아기 손님은 목욕탕의 단골인 것 같았다. 겁에 질린 로와는 달리 아기의 표정이 온화하다못해 무심해 보였다. 탕 안에 들어와서도 엄마와 떨어져서 걸어 다니기까지 하고 물장구를 칠 정도였다. 비슷한 월령대의 아이를 둔 엄마들의 연대감으로 자연스레 우리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짐작대로 그 아기는 목욕탕에 자주 온다고 했고, 로보다 생일이 한 달 빠르고, 할 줄 아는 말은 ‘엄마’ ‘아빠’ 외에 ‘멍멍’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늘 사고를 치는 말썽쟁이라 온 가족이 아이 하나를 감당을 못하는 지경이라고 했다.

나는 그 엄마에게 내가 지금은 아이 하나만 안고 있지만 사실은 둘이 더 있다고, 근데 그 둘이 조선 천지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아이들이라고 말할까 말까 하다가 그 엄마 말을 좀 더 들어 보기로 했다. 그 엄마는 아이를 보고 자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이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딱 맞는 장래 직업을 하나 골라 놓았다고 했다. 그건 바로 ‘직업 군인’. 어느새 다가온 아이의 이모와 외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오직 직업 군인만이 아이의 넘치는 혈기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생후 19개월에 이미 강추하는 희망 직업을 가진 아이는 내 눈엔 순하고 무던해 보였다.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목욕탕을 돌아다니는 아이와 비교해서 갯바위 고둥처럼 내게 달라붙어서 아무 말이 없는 로를 보고 착하다고 감탄하는 아이의 가족들이 기대치가 높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장래 ‘직업 군인’인 아이가 엄마, 이모, 할머니의 비호 속에 조용히 목욕을 하는 동안 급하게 인내심이 바닥이 나 밖에 나가자고 흥분해서 칭얼대는 로를 안은 채로 나는 겨우 몸에 비누칠을 한 번 할 수 있었다. 로가 목욕탕을 큰 마이크 삼아 쩌렁쩌렁 울며 소리지를 때에 이르러서는 한 손으로 로를 달래고 한 손으로 머리에 샴푸 거품을 낼 수 있었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나의 샤워기를 낚아채서 내 머리에 물을 뿌려 준 덕분에 허우적대며 온갖 방해질을 해대며 우는 로를 안고서도 머리를 헹굴 수 있었다. 이토록 훈훈한 목욕탕 인심이여! 그나저나 이렇게 주변에 폐를 끼치며 난동을 부리는 로를 안고 때는 밀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재빠르게 철수한다! 집에 가서 다시 씻어야지 다짐하면서 로를 데리고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역시 로와 대중 목욕탕이라니.... 그것은 나의 만용이었어, 다시는 로 데리고 오나 봐라 하며 옷을 입고 있는데, 어느새 목욕을 마친 ‘직업 군인’ 아기가 제 할머니 무릎에 얌전히 앉아 머리를 말리며 요구르트를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아아, 그때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내게 냉커피를 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빨대 네 개를 꽂은 냉커피를 큰 물통 가득 받아 오시고 빨대 하나를 건네며 나더러 애기 엄마 먼저 맘껏 빨아 먹으라신다. 아, 커피 한 통이 아니고 거기 꽂힌 빨대 하나를 쏘시는 건가? 나는 김이 팍 상했지만 기꺼이 그리고 감사히 입안 가득 냉커피를 빨아들였다. 입을 떼며 커피를 돌려 드리려는 내게 할머니는 “더 더, 쭈욱~ 더! 마시라.”고 나를 독려하셨고 나는 에라 모르겠다, 죽자 살자 커피를 빨아올렸다. 그날 마신 목욕탕표 냉커피는 시원하다 못해 이가 시렸고 달면서도 쌉싸름한 이중적인 맛이었다. 그것은 흡사 물만 끼얹고 부랴부랴 옷을 입은 것 같은 미완성의 아쉬움에도 목욕으로 고단해진 아이의 보얗고 말간 잠든 얼굴을 보는 것과도 같은 만족감이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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