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10년이 넘도록 아이들과 지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아이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라는 것이다. 사실 교사로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이 먼저 교사와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려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1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교사 자리에 몰려들어 어제 어땠는지, 뭘 먹었는지, 누구랑 뭘 하고 놀았는지, 심지어 교사가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반 아이 누구랑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등을 교사에게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서 교사 휴게실이나 학년 연구실로 도망을 가야할 정도로 아이들은 교사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 준다.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교사에게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하는 아이들과는 글로 소통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나는 일기 검사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 편 정도 글의 종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글을 써서 제출하도록 하고 맞춤법이나 글의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해 주는데 그것을 통해서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가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방법의 문제이지 마음만 먹는다면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은 정말 쉽고도 효과적인 일이다.

이렇게 아이들과 소통하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습에서도 아이들과의 소통은 훨씬 효율성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수학의 예를 들어 본다. 우선 학기 초반에 수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공부해 왔는지,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교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교사는 자신들이 느끼는 수학 교과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학습을 이끌고 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공부할 것인지를 정해 본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교사 자신만의 수업 모형이나 다양한 협동 학습 수업 모형 등을 제시하고 의견을 묻는다. 아이들은 몇 점을 맞을 것인지, 누가 나보다 잘하고 못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습 형식 자체를 고민하고 어떻게 학습을 해나갈지 주인으로서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한 수업 방식대로 수업을 해나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 시작한다. 매 단원이 끝날 때는 점수가 나오는 시험을 보는 대신 아이들과 수업이 어땠는지, 좋았던 점은 무엇이고 아쉬운 점은 무엇이며 어떤 점을 보완했으면 좋겠는지,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등을 다시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교사가 이끄는 대로 그저 앉아서 수동적으로 받아먹기만 하던 아이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본인이 학습을 조직하고 이끌어 나가고 반성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한다. 당연히 수업 내용에 대한 집중도, 관심도 등은 올라갈 수밖에 없고 지겨워 죽을 것만 같은 아이들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평가에 대한 것도, 수업에 대한 것도, 모두 아이들에게 먼저 물어본다. 아이들이 그저 노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공부도 안 하는 철부지일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 두시라. 아이들이 토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런 생각은 가지지 않게 될 것이다.

사실 나도 처음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을 때는 반신반의 했었다. 시험을 볼지 말지에 대해 물어 보면 당연히 시험 보지 말자고 할 게 뻔하고, 수업을 어찌할까 물으면 그저 나가 놀자고 우기기만 할 것 같고, 못 미더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라도 들어 보자 하고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실망시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런 결과물도 나올 것 같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삶의 주인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조금만 알려 주면 아이들은 아무도 무작정 놀지 않았다. 자신들 스스로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하고 무엇을 할지 조직하고 어떻게 할지 계획하고 차근차근 움직이기 시작한다.

▲ 함께 토의하는 아이들. (이미지 출처 = flickr.com)

이렇게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교사로서 편한 점도 많다. 나 혼자 고민하고 끙끙거릴 필요없이 어떤 사안에 대해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어떻게 하면 좋겠니? 라고 한 마디만 던지면 아이들이 나보다 더 나은 아이디어와 생각을 전하면서 위로의 마음도 함께 보내주는 적이 대부분이다. 이번 학기에도 주요 과목 진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남은 과목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어떻게 한 학기를 정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이들 스스로 재밌게 한 학기를 마무리 해 보자며 논의가 불붙더니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들을 던져 주고 한 학기동안 샘도 고생하셨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놀라운 경험들의 연속이다.

이렇게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의사항이 있다. 바로 ‘수용적 자세’이다. 교사가 사전에 강한 의도를 가지고 아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묵살하거나, 하나하나 토를 달거나, 특정 방향으로 의견을 강요하면 아이들은 절대 진실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들이 주인으로서 존중받으며 민주적 학급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는 교사와 거리를 두고 교사가 원하는 대답만 대충 던져 주며 생활해 나간다. 아이들이 어떤 의견을 내놓든 그것이 도덕적, 법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다른 학급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거나 아이들에게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교사는 아이들의 결정사항을 꾸준히 진행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사는 의외로 많은 것을 배우며 노하우를 쌓아 나가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사안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물으며 진행할 수는 없다. 때로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반과 함께 진행하는 일이라서 우리 반만 아이들의 의견대로 진행할 수 없기도 하고, 때론 교사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 때문에 의견을 묻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잦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항상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또한 이런 경우가 생겼을 때는 하라면 해라는 식의 강압적 태도가 아니라 타당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어쩔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도 이러한 경우를 인정해 주고 오히려 더 잘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형태의 소통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경험상 저 정도의 결정을 함께 하려면 최하 4학년은 되어야 한다. 그 전 학년의 경우엔 교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들이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무지한 존재로 여기고 무조건 교사의 의지대로만 학급을 이끌어서는 안 된다.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자신의 의견이나 상황, 생각을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고 무엇인가 결정하는 경험을 안겨주는 것은 민주 시민으로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학년의 경우엔 주제를 더욱 간단하고 아이들에게 맞게 제시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동학년 교사들과 학부모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혼자 고민하고 혼자서 무언가를 해나가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논의할 때 무엇이든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옛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에서부터 앞으로 중요한 지적 형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여겨지는 ‘집단 지성’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함께 해나갈 때 더욱 놀라운 존재로서 거듭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오래되고 뻔한 진리를 몇 년째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는 것 같다. 그저 자신만의 생각과 논리에 빠져 남들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듣는다 해도 자신에게 듣고 싶은 말만 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허우적대며 진실된 소통을 거부하고 ‘짐이 곧 국가’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존재가 너무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다.

▲ 광복 71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 및 유족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에서 광복군 출신의 92살 원로 독립운동가가 최근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부각되는 건국절에 대해 질타하셨다. 친일세력으로서 호의호식하다가 반공이라는 이념으로 세탁된 가짜 애국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싸워온 그야말로 역사의 산 증인이자 참된 애국자로서 일부 세력의 경망스러운 행동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일왕에 대한 충성을 혈서로 써서 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만주군 장교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남조선 노동당에 가입했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참된 친일 빨갱이 ‘다카기 마사오’의 딸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국정교과서로서 이미 보수 편향적이라고 비판받는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에서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등의 제헌헌법 전문 일부를 직접 소개하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보수 세력이 그토록 떠받드는 이승만조차도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불렀다. 이제와서 8월 15일을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근거도, 독립을 위해 싸워온 순국선열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는 파렴치한 주장이다. 그들은 국가=국민이 아니라 국가=정부라는 노예적이고도 전근대적이며 군주주의적인 사고에 사로잡힌 권력의 기생충 같은 존재들일 뿐이다.

이런 명확한 논리와 근거로 자신은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분이 어렵게 꾸짖으셨건만 우리의 대통령이라는 분은 조용히 밥이나 먹고 가라는 식으로 대꾸도 안 한 채 엉뚱하게 사드 타령을 늘어 놓으셨다. 그리고는 마치 들으라는 듯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이라는 망언을 토해 내셨다. 본래 이즈음에 망언은 저 바다건너 일본에서만 들려오는 것으로 알았건만 우리의 대통령은 역시 대단한 분이다. 아무리 인간이 본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아는 속성이 있다지만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임기 초기부터 ‘아몰랑 화법’을 구사하지 않나, 헌법도 모르지 않나, 참된 소통의 의미와 방법도 모르면서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고 간신배들 속에서 살지 않나 참으로 개탄스럽고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면서 논리와 근거도 없이 툭하면 하나의 대한민국이라며 통합을 외치고 분열이 어쩌구 하면서 본인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반국가적 세력으로 몰아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 사드 논란이나 건국절 논란에서도 변함없이 말이다. 그러나 통합은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논의하고 힘을 합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어느 잘난 우두머리가 하자는 대로 모두가 한 방향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인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생각하는 그것이 통합이라면 민주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이 저 북쪽 돼지새끼와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라도 제발 귀 좀 열어라. 어린아이들도 조금만 귀 기울이고 존중하면 훌륭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나보다는 우리가 낫고 그 우리는 내 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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