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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어둠에도 희망은 있다"악마 기자 정의 사제", 주진우 기자, 함세웅 신부, 시사IN북, 2016
홍서정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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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8  1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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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독재자는 세상을 떠났다. 해방 세상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독재는 불능이라는 이름으로 세습되었다. 국민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사과에 인색하던 대통령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짓 사과를 했고 국민들을 모욕했다. 국정이 최대 난국을 맞았지만 예견된 일이다. 자식을 차가운 바다에 묻었을 때도, 아버지를 공권력에 잃었을 때도 이 나라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 어차피 늘 난국이었다.

   
▲ "악마 기자 정의사제", 주진우 기자, 함세웅 신부, 시사IN북, 2016. (표지 제공 = 시사IN북)
세월호 사건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섰다. 참담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수 없던 함세웅 신부님과 주진우 기자도 지난 연말 “현대사 콘서트”라는 이름 아래 함께 길을 떠났다. 왜 하필 두 사람인가? 주 기자는 신부님을 만난 것이 기자생활의 가장 큰 축복이라 말할 정도로 함 신부님을 존경한다. 그 마음은 오롯이 진심이지만 천주교 신자가 되라는 신부님의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세례명은 있다고 당당히 외치고, 화살기도 대신 화살 욕을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다. 함 신부님도 한참 어린 주 기자의 초심을 지키는 곧음을 존경한다 말한다. 함 신부님은 오랜 세월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며 인간의 존엄과 소명을 지키기 위해 가시밭 걸어오신 분이다. 불의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는 주 기자는 정의의 길을 걸어온 함 신부님을 보며 저열하게만 느낀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종교와 나이를 뛰어넘는 닮음, 하필 두 사람인 이유가 있었다.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주 기자는 자신이 느낀 감흥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합을 이뤄 역사, 정치, 민주, 통일, 신념에 관한 다섯 가지 주제를 들고 전국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역사의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형식이 아닌 한 사제가 관통한 역사를 되돌아보며 한국현대사를 다른 관점으로 되돌아보는 장을 만든 것이다.

함세웅 신부님 하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님이 “유신헌법 무효”라는 양심선언으로 구속되는 것이 계기가 되어 태동했다. “1974년은 정말 무서운 해였어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이 받았던 것과 비슷한 정도의 고통과 고난을 받은 해라고 할까요.”(35쪽) 함세웅 신부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 후 박정희는 긴급조치 9호를 발동시켰고 어둠은 더 깊어 갔다. 그 다음 해인 1976년 이를 묵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원로 목사님들과 가톨릭 사제들, 각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명동성당에 모여 3.1민주구국선언을 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사실 3.1민주구국선언은 미사봉헌으로 끝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박정희)이 제 정신이 아니다 보니 이걸 국제적인 사건으로 키워 버린 거죠. 이 사건으로 김대중, 윤보선 같은 정치인에다가 변호사, 교수, 목사, 저희 같은 사제, 그리고 여성들까지 줄줄이 입건됐어요. 한국사회를 상징적으로 압축해 보여 준 거울이 돼 버린 셈이 되었지요. (39쪽)

3.1민주구국선언을 계기로 함 신부님과 재야인사들이 대거 구속된다. 감옥에서 지낸 2년 동안 더 정성을 다해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이 속한 곳을 지성소로 삼았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옥고를 치르게 되었지만 정의 구현을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사제로 기도하는 삶을 살았고, 그 기도가 세상의 중심에서 이뤄지도록 살았다. 그저 처음의 마음으로 살 수밖에, 다른 길은 몰랐던 것이다.

함 신부님은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면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쓴소리 또한 거침없이 내어놓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살을 당하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은 것도 정권을 향한 탐욕과 집단적 욕심 때문이라 말한다. 다른 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한때는 한 길을 걸은 인연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직언도 빼놓지 않았다.

"제가 두 분과 지내보고 얻은 결론은 종교든, 정치든 거기에 권력이 함께 공존하게 되면 늘 악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종교도 권력을 지향하게 되면 악으로 갈 수밖에 없거든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계속해서 교회의 쇄신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DJ, YS 두 분 다 똑같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더 명석하다거나 능력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두 분이 양보를 배웠더라면, 희생과 헌신을 배웠더라면, 민중을 생각하는 큰 뜻을 가졌더라면 우리가 훨씬 더 앞서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겠죠."(97쪽)
 
두 역대 대통령을 향한 함 신부님의 평가가 지금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비선실세가 한 나라의 실세로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은 어떤 형식으로든 국정 공백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준비된 능력자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민중을 위해 헌신하고 때로는 권력을 향한 욕심을 양보할 수 있는 참된 지도자가 되어 줄지는 의문이다. 국정 공백이 아닌 그것이 두렵다.

이 책에 주를 이루는 내용은 무겁고 다소 참담한 이야기들이다. 현대사를 관통한 분의 삶을 다시 관통하려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쉼없이 미소가 번진다. 그 까닭이 단순히 무거운 사건을 유쾌하게 넘겨 주는 입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믿을 것 없는 세상에서 종교와 나이를 넘어서 신념만으로 하나된 두 사람의 신의와 합이 빛을 발했고, 어둠 안에서 희망을 찾는 기도와 저항이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결국 한 개인의 진실한 만남이 씨앗이 되었다. 우리가 처한 오늘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두워도 또 그렇게 손잡고 희망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그 끈을 잡고 잠잠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 볼 수밖에, 다른 지름길은 없다. 물러날 도리가 없다.

"제가 여기 있다는 건 아직 살 만한 공기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숨 쉬기도 어려웠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 벌써 도망갔을 겁니다, 사실."(289쪽) 평생 정의를 외치며 한길을 걸어오신 원로 신부님의 정직한 고백에 위로를 받았다. 어두워져도 희망은 있다.

   
 
홍서정

아이들이 좋아 다시 시작한 공부는 서른이 돼서야 끝났지만 꿈이라 여겼던 일을 타고난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금방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에 살아서 번동댁으로 불리며 또 다시 꿈을 그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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