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6월 항쟁", 서중석, 돌베개, 2011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 열사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을 거두었다. 경찰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쇼크사로 몰고 가려 했지만, 한 의사의 양심으로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 "6월 항쟁", 서중석, 돌베개, 2011. (표지 제공 = 돌베개)
중앙대 부속 용산병원 내과의 오연상(당시 32살)이 병원으로 다급하게 찾아온 사람들을 따라 왕진을 따라나서 도착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조사실에 들어서 박종철 열사를 처음 보았을 때, 하의만 입은 채 조사실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고 조사관 3명이 입으로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 조사관들은 “중요한 사람이니 꼭 살려야 한다”고 재촉했지만 박종철 열사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동공이 열려 있었고, 호흡과 맥박이 없었으며 항문이 열려 변이 흘러나온 흔적도 보였다. 경찰은 간계를 썼다. 이미 숨진 박종철 열사를 담요로 둘러싸서 병원으로 데려가려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보려 했다. 박종철의 시신은 곧바로 부검을 거쳐 16일 벽제 화장장에서 열사의 부친 입회 하에 화장되었고, 임진강에 유골로 뿌려졌다. 경찰의 의도대로 박종철 열사는 쇼크사로 정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감시를 피해 오연상이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본 것을 사실대로 전달했고, 1월 17일 <동아일보>가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쇼크사가 아닌 고문사임을 기사로 전했다.

"6월 항쟁"은 한 청년의 죽음과 그에 대한 진실된 증언이 87년 6월 항쟁의 불길을 일으킨 발화점이었음을 알려준다. 책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퇴임 후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후계자를 만들기 위한 전두환의 초강경 공세는 결국 한 학생을 고문으로 죽이고 말았다. 1년 전처럼 전두환은 다시 수세에 몰렸고, 박종철 고문사망사건에 대한 거대한 추모 물결 속에서 야당과 재야민주화운동 세력, 학생들은 민주대연합을 어느 때보다도 탄탄하게 형성했다.” 이렇게 한 학생의 죽음과 이를 정직하게 알린 시민, 언론에 의해 민주화 세력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다. 여기에 전두환이 성급하게 ‘4.13 호헌조치’를 내림으로써 국민들의 열망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과제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제7주기 미사’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사망 은폐조작 폭로”를 통해 전두환 정권에 치명타를 입혔다. 고문 사망인 것은 맞지만 관련자를 축소, 은폐, 조작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로써 개헌투쟁이 다시 박종철 추도운동과 결합되고, 6월 항쟁의 구심점인 ‘개헌쟁취 국민운동본부’로 이어졌다.

이 역사를 말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지금 서울대병원에 안치되어 계신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국가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국민에 대해 그 죽음의 진실을 가리려 하고, 담당 주치의는 뻔한 사실을 아니라고 우기며 진실을 호도한다. 30년의 간극을 넘어 두 의사의 양심이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 논에 차오른 물이 아래 논으로 흘러 내려가야 하는데 어느 누가 물꼬를 막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물이 계속 불어난다면 논둑을 무너뜨리고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물이 부족하다면 그냥 잦아들 수도 있다.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려는 흐름 역시 몇몇 권력자와 전문가들이 어귀를 차지하고 앉아서 물이 내 논에만 고여 있다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6월 항쟁은 분명 자랑스러운 역사이지만 한계도 많았다. 후보 단일화를 하지 못해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영삼은 다음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자신이 물리치려 한 민정당과 합당해 그쪽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임기 말에 IMF 구제금융을 초래해 ‘헬조선’의 첫 문을 열었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민주화운동이라는, 너무도 찬란했지만 또 어이없게 훼손당해 버린 역사의 말미를 살아 내고 있는 것 같다. 암담하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국가와 정치로부터 확장해서 일터, 학교, 가정 그리고 나 자신에게까지 넓혀 나갔으면 한다. 회사와 학교를 하나의 사회로 본다면 얼마큼이나 민주화된 공간일까. 우리 가정은 누구의 말 한마디로 좌우되는 곳일까. 또 나는 자신에게 꿈과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 지독한 독재자가 아닐까. 이런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세상을 민주화시키고, 자신은 독재자로 남는 우를 피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변구 
출판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딸이 태어난 새내기 아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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