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영훈 씨, "백남기 사건은 의료권력 사건"

“백선하 과장이 말하는 진정성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백남기 농민의 기계적 연명이 그의 소신이고 진정성이었나?”

11일 위령미사가 봉헌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영훈 씨(사도 요한, 전 팔당생명살림 회장)는 백남기 씨 사망 직후 사망진단서 논란부터 이날 열린 국감에서 백선하 과장이 한 발언에 격앙되어 있었다.

유영훈 씨는 1980년대부터 가톨릭농민회,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함께 하며, 백남기 씨와 오랜 친분을 쌓았고, 지난해 사고 직후부터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병상의 백 씨와 가족 곁을 지켰다. 그는 백선하 과장이 어떻게 치료를 진행해 왔는지 지켜본 사람으로서, “백선하 과장과 공개 토론이라도 해서 그의 위악을 고발하고 싶다. 아주 나쁜 의사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과장은 ‘병사’로 기록한 사망진단서에 대해, “100퍼센트 병사라는 확신을 갖고 소신껏 썼고,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며, “충분한 치료를 받았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10월 3일 서울대병원과 서울대학교 특조위 결과 발표에서는 ‘만성경막하수종’을 근거로 수술했다고 발언했으며, 이번 국감에서도 이같이 대답했다. 백남기 씨의 죽음이 지병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며, 최선의 치료를 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이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9월 25일 전까지 가족과 최측근 외에는 그동안 그에 대한 연명치료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워낙 건강했다던 그가 ‘적정한’ 연명 치료를 받으며 잘 버티고 있다고 알았지만, 의무기록이 공개되면서 백남기 씨에 대한 무리한 연명치료 사실이 드러났다.

▲ 백남기 농민의 소생을 가장 바란 것은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을 더욱 망가뜨릴 뿐인 연명치료를 가족들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정현진 기자

약물과 기계로 연명한 317일.... 백남기는 ‘볼모’였다

유영훈 씨는, 가족들은 300일이 넘는 치료 과정에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통스러워했지만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비화될 우려 때문에 제대로 상황을 밝힐 수 없었다고 했다.

수술 결정부터 모든 치료 과정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 백선하 과장은 무리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장기기증을 원한다는 고인의 뜻은 물론, 아버지이자 남편이 최대한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도록 하고 싶다는 가족들의 바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인데도 치료란 것은 각종 약물을 사용해 연명이 가능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을 뿐이었다. 수없는 채혈로 더 이상 주사 바늘을 꽂을 수 없을 정도로 혈관에 염증이 생겨 팔목이 부어오르자 이번엔 팔목을 수술하자고 했다. 백남기는 온갖 약물과 기계로 생명을 연장하는 ‘볼모’가 되었다.”

백선하 과장의 ‘투석’ 운운에 대해 유영훈 씨는, “투석을 해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면, 아니 눈이라도 한번 뜰 수 있었다면 투석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들은 제 몸이라도 떼어 살려 달라고 간청했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심각한 뇌손상으로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이미 받은 터라 가족들은 소생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다만 연명 치료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며 그것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아야 했다. 그러나 백선하 교수는 치료를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가족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강요되는 치료동의서에 동의하는 것이 가족들의 유일한 의사표시였다. 이미 가족들은 충분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을 경우, 치료를 덜 해서 사망했다는 오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치료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유영훈 씨는 사고 뒤 열흘이 지난 즈음, 도무지 만나 주지 않는 백선하 과장을 쳐들어가다시피 해 만난 일을 잊지 못한다. 백선하 과장의 첫 마디는 “대화 내용을 녹음하거나 촬영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가족들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의료인으로서만 충실해 달라고 당부했고, 백선하 과장은, “나도 백 씨이니 더 신경 쓸 것이며, 의료외적 고려 없이 의사로서 충실하겠다”고 답했다.

치료 과정, 백선하 과장이 원하는 대로 했다.... 장기기증 의사도 거부

유영훈 씨는 이때 백선하 과장의 태도는 의료보다는 ‘정치적 분위기’에 민감했다는 반증이었다면서, “반신반의했지만, 그래도 치료의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고, 믿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뒤로도 모든 치료를 혼자 결정하고 진행했다”고 말했다.

유영훈 씨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치료가 진행되면서 백선하 과장이 자신의 목적에만 충실했을 뿐, 한 번도 가족들이 겪는 심적, 물적 고통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고인의 뜻과 가족들의 의사도 반영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뜻대로 한 백선하 과장이 유가족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가족들은 고인이 생전에 밝힌 뜻에 따라 장기기증을 고려했다. 그러나 백선하 과장은 뇌사 판정을 위한 절차상의 어려움을 들어 이를 거부했다.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 해열제, 이뇨제 등 온갖 약물을 쓰면서 백남기 씨의 몸은 점점 망가졌다. 의료진도 처음에 장기 중에 신장이 가장 튼튼하다면서 약물을 썼고, 사망하기 한 달 여 전부터는 가장 강력한 이뇨제를 썼다. 결국 이뇨제조차 듣지 않을 정도로 신장이 망가지니, 투석을 하겠다고 했다.

유영훈 씨는 “그 정도로 망가진 몸에 투석을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누구를 위한 연명이었겠나”라며, “결국 그 튼튼한 신장까지 망가뜨린 것은 무리한 약물치료 때문이다. 그 책임은 백선하 과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 유영훈 씨는, "백선하 과장은 백남기를 환자가 아닌 제 목적의 대상으로 취급한 것"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정현진 기자

백남기 사건, ‘의료 권력’이라는 또 다른 권력문제 드러내

“백선하 과장의 진정성, 그건 연명이라는 목적이었고, 백남기는 그 대상이었을 뿐이다. 환자의 존엄, 가족의 고통에 대한 돌봄, 배려는 없었다.”

유영훈 씨는, “물론 의료는 전문영역이다. 하지만 생명유지, 연명이 의료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라며, “만약 조금이라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연명을 위해 노력했다면, 그 과정에서 가족의 의사를 충분히 들어야 했다. 하지만 신체 훼손을 최소화하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은 깡그리 무시됐다”고 말했다.

그는 백남기 사건은 경찰 공권력의 문제와 함께 ‘의료권력’의 문제, 전문가의 횡포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했다. 생명을 지켜야 할 의사가 생명을 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생명이라는 가장 숭고한 것을 볼모로, ‘전문가’의 권력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뜻을 배제하고 자신의 목적만 추구했다”는 그는, “개인의 양심, 의료인으로서 충실성에 따른 것이라면 얼마든지 찬성하고 지지했겠지만, 백선하 과장은 이미 공권력, 정권의 목적에 충실한 하수인이었고, 그것을 위해 의료권력, 전문성을 이용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세월호참사와 함께 백남기 사건은 공권력이 공공을 위한 권력이 아닌, 공공에 대한 권력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면서, “이를 계기로 백남기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공권력, 국가에 대해 전반적이고 근본적으로 되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법정 싸움을 통해서라도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따져 묻고 밝히고 싶다며 “백선하 과장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당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전문가의 권위와 권력에 불합리한 상황을 당할 것인가”라며 참담하다는 그는, 이 사회의 ‘권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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