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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같은 얼굴, 다른 느낌[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4]
김혜율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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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8  13: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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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계시니 애 키우는 거는 이제 수월하죠?” 하고 누가 물으면 그이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지만 나는 “아, 아니요. 전 그런 거, 생각하시는 거(노하우)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육아 경력이 이쯤 되니 아이들 기저귀 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이야 익숙하고 나름대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깨우친 건 맞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로봇 엄마라도 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 개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따라 양육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아이마다 엄연히 다른 일이라 나는 아이 한 명을 키우는 것에 비교하자면 셋을 키우는 것은 적어도 세 배쯤은 더 골치 아프고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까 나의 대답에 “도리어 (아이가 점점 늘어날수록) 어렵고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걸요.”라고 덧붙여야 할 판이다.

그래도 엄마라면 아이를 키우는 데 특히 잘하는 것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 요리 잘하는 엄마, 집을 예쁘게 꾸미는 엄마, 그림을 잘 그리는 엄마, 영어를 잘하는 엄마, 사진을 잘 찍는 엄마 등등. 그럼 나는 무엇을 잘하는 엄마일까. 나는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도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잼을 만들고 쿠키를 굽고, 아이들의 창의성을 위해 미술놀이를 연구하고, 영어로 일상 대화를 하며, 사시사철 직접 예쁜 옷을 만들어 입히며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여태 그렇게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도 틀린 것 같다. 나중에 하면 되지 생각하고 오늘도 못했다면 아마 무수히 대기하고 있는 내일 중 그 어떤 내일에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내일’은 언제나 생각보다 빨리 ‘어제’가 돼 버리는 데다 늙으신 부모님만큼이나 아이들도 내가 ‘드디어 준비되었다!’ 할 때까지 기다려 주질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은 자식의 효도를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돌아들 가시고 자식은 쑥쑥 자라 그만 어느 날 훌쩍 집을 떠나 버리더라는 이야기를 말이다. 하지만 돌아보건대 오늘도 나의 집은 엉망진창, 잼은커녕 밥도 하기 싫고, 애들이 물감놀이 하는 게 젤 질색이고 영어는 외국어일 뿐이고 세탁을 해도 좀체 지워지지 않는 얼룩투성이 옷을 코디해 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엄마로서의 나의 강점을 찾는 것은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창조해 보겠다. 왜냐면 지금껏 엄마로서 살아온 내 인생에 어떤 의미라도 부여해야만 오늘 밤 잠이 올 것 같아서다. 하여, 엄마로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아이에게 별로 해 주는 게 없는 것을 강점이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나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늘 열려 있는 엄마이고자 한다. 눈과 귀 콧구멍뿐 아니라 온갖 질문에 답하랴 잔소리하랴 늘 열려 있는 입이 그렇고 가끔 머리뚜껑까지 열리는 게 문제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창문을 열어 젖히고자 하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는 것과, ‘사람은 서로(비록 부모자식 간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떠올리는 연습 중에 있다.

   
▲ (왼쪽부터) 욜라, 로, 메리. 다 함께 평상에 모여서. ⓒ김혜율
그런 것이라면 어느 엄마인들 열심히 하지 않겠냐고 한다면 또 맞는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남들과 다른 건 나는 왠만해선 거기까지만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때로는 즐겁게 감상하면서 아이들의 감정과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 주는 것에서 끝나지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더 나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내가 그렇게 아이들을 ‘쳐다만 보는’ 것은 굉장한 철학이나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고 우유부단하거나 의욕 부족이기 때문일 텐데 무엇보다 ‘잘 보는 것’ 하나만으로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써 버려서 뭘 더 하려야 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설사 남들 하는 거에 혹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오늘 일을 내일로 잘 미루는 내가 꾸준히 따라 할 리도 만무했고. 그래서 ‘아이에게 제일 좋은 것을 해 주려는 엄마 마음’ 이나 ‘엄마가 옳다고 믿는 방향대로 아이의 인생에 개입하려는 엄마 마음’이 나에게는 언감생심 한 차원 높은 일이 되었지만 때문에 우리집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순 없더라도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는 살고 있는 것 같다.

아아, 세 아이들! 분명 내가 낳은 아이들이건만 어찌나 다른지. 각자의 개성에 일일이 응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제일 바쁘게’, 줄여서 ‘세젤바’ 하게 살고 있는 나란 엄마! (됐다, 됐어. 이 정도면 오늘 밤 잠 잘 자겠네.)

나란 엄마의 유일한 강점인 매의 눈으로 포착한 ‘메리와 욜라, 같은 얼굴 다른 느낌’ 몇 가지를 꺼내보기로 하겠다.

메리와 욜라는 얼핏 보면 그 애가 그 앤가 보다. 아이들 관상 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유치원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메리와 욜라가 ‘똑같이 생겼다’고 탄복을 하시는데 내가 보기엔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풍기는 이미지나 분위기는 한데 묶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사실 얼굴도 닮았고 목소리도 닮았고 밥 늦게 먹는 것이나 인사 잘 안 하는 것이나 사람 골탕 먹이고 낄낄 웃는 것도 닮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다른 정도가 극과 극이다. 메리가 동으로 간다면 욜라는 서로 가는 격이다.

시골로 이사 오고서도 정신을 못 차린 우리 부부는 곧잘 외식을 하는데,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돈까스집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메리와 욜라는 우동을 좋아해서 돈까스 말고도 우동도 한 그릇 시키기로 했는데 맛집답게 우동은 재료가 동이 나 버려 그날은 주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 테이블에는 심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는데 메리가 ‘우동.... 난 우동이 먹고 싶은데’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런 경우에는 대신 철판볶음밥을 먹으며 다음을 기약하자.’ 라는 취지로 메리를 달래고 설득했지만 메리는 한 치도 굽히지 않고 ‘우동이 아니라면 차라리 공복’을 선언하면서 없는 우동을 어떡하든 자기 앞에 내놓으라고 울부짖었다. 공공장소이니만큼 사람들 시선을 끌지 않는 게 중요해서 나와 남편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메리가 그만 우동을 포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아까 메리와 함께 우동~우동~하고 노래를 불렀던 또 다른 1인, 욜라가 생각났다. 얼굴을 감싸 쥐고 오열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아이 메리에게서 눈을 돌려 봤더니, 욜라는 이미 우동은 안중에도 없다. 냅킨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에헤헤 빨리 돈까스 먹고 싶다앙.” 하고 말하는 욜라는 우동을 깨끗이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마치 메리와 욜라 사이에 ‘슬픔의 우동강’이 흐르고 있는데 메리는 그 강을 건넌 데 반해 욜라는 반대편에 있고 나는 그 강물에서 뗏목을 타고 노를 저으며 허둥대는 뱃사공이 된 것 같았다.

메리와 욜라를 데리고 수퍼마켓에 가더라도 나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갔다하는 노 젓기는 계속된다. 마트에 가면서 아이들과 약속을 한다. 오늘 엄마의 검열 없이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과자의 개수에 대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맘에 드는 것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하는데 욜라는 마트에 들어간 지 10초만에 하나를 골라 뛰어 온다. 나는 그럴 때 “벌써 골랐어? 그런데 이것 말고 더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지 한 번 더 살펴볼래?”하면서 욜라에게 신중할 것을 권고하는데 욜라의 선택은 변함이 없다. 자기가 고른 그게 젤 좋단다. 반면 메리는 내가 장을 다 보는 동안에도 계속 무엇인가를 검토 중이다. 과자 사러 나온 아이치고 고뇌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마트에 있는 과자 코너, 젤리 코너, 음료수 코너, 문방구 코너를 샅샅이 훑어보면서 ‘그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을 신중에 신중을 다해 따져 보는 것 같다. 기다리다 지쳐서 집에 빨리 가고 싶어지면 메리 마음에 들만한 물품을 제안하며 메리의 선택을 도우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거 어때? 너 이거 좋아하잖아” 하면 메리는 거의 대부분 “아니, 오늘은 아니야” 하며 칼같이 거절했고, 내가 “메리야, 그냥 이거 해라. 응?”하고 조르고 부탁해도 아닌건 아니라고 했다.

   
▲ 각자 걷는 길. ⓒ김혜율
메리가 머리핀 장수를 만날 때도 마트에서와 비슷한 광경이 연출된다. 길을 가다 왠만한 액세서리 가게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만큼 규모가 큰 머리핀 좌판을 만났다. 딱 봐도 신상으로만 예쁜 게 너무 많아서 도저히 하나를 고를 수 없을 것 같아 메리에게 맘에 드는 것 두 개를 고르라고 하고 핀 장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 아이가 머리핀을 고르려면 한 바퀴는 돌아야 할 거예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핀 장수 아주머니가 메리를 보며 말했다. “얘야, 얼마든지 구경하렴. 그리고 정말 맘에 드는 걸 골라야지. 한 바퀴가 아니라 두 바퀴 돌아도 된단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도 말씀하시길, 당신은 27년 째 핀 장수를 하고 있는데 별의별 아이들을 다 만나 봤는데 메리처럼 한 바퀴 도는 아이를 간혹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엄마들이 바쁘고 급해서 아이들이 핀 하나 고르는 걸 옆에서 기다리질 못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아이들이 무엇을 살까 망설이고 있으면 ‘어서 빨리’ 고르라고 독촉을 하는 까닭에 메리처럼 마음껏 구경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하셨다. 정말 27년 경력의 핀 장수 아주머니였기에 망정이지 메리는 정말로 길~다란 좌판을 두 바퀴를 돌고 난 뒤에야 핀 두 개를 골랐다.

‘같은 얼굴, 다른 느낌’ 하나만 더 이야기 해 보자. 금요일 저녁 메리와 욜라는 할머니 집에서 잔다. 그리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데리고 오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책이나 작은 장난감, 문구류를 선물로 주곤 했는데 어느 날 욜라가 선전포고하듯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앞으로는 나한테 이런 선물하지 마!”

나는 선물이 싫다는 욜라가 왜 그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옆에서 메리가 코웃음을 치며 알겠다는 투로 욜라에게 말했다.

“너, 대신 먹을 거 사 달라는 거지?”

그러자 욜라가
“응! 맞아! 난 먹을 게 제일 좋아. 으헤헤헤. 엄마 들었지? 나는 장난감 필요 없어! 먹을 거 사 와. 알았지?”한다.

그래, 먹을 거라.... 욜라는 앞으로 먹을 거를 사 줘야겠군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메리가 물었다.

“엄마! 나는 뭐가 제일 갖고 싶게?”

메리가 물으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뭔가 쉽지 않는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피아노를 한 대 사 달라고 한다든지 키즈폰을 사 달라고 한다든지 평생에 한 번 사 줄까 말까 한 무슨무슨 세트 같은 걸 고르는 것이다. 한 번의 기회에 뽕을 뽑으려고 하는 것 같다. 흠.... 이번엔 뭘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었다.

“삐악이 장난감?”
“헤헤, 아니!”
“그럼 똘똘이 인형?”
“아니~”
“그럼, 책? 옷?”
“아니야.”
“그럼 뭐? 너도 먹을 거?”
“아니! 나는.... 딱 하나 있어.”
“그래, 그게 뭔데, 그냥 말해 봐!”
“나는 자! 유!”
“뭐라고? 자유? 프리덤할 때 그 자유?”
“어! 자유가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잖아!”

젠장, 이건 또 뭐냐? 내가 자유를 어떻게 줘?
정말 메리는 한다 한다 하더니 이제는 자유를 찾았나 보다.

“자, 그러니까 욜라는 먹을 거, 메리는 자유를 원한다 이거지?”

아이들이 만족한 듯 “응!”하고 소리친다.

뱃사공이여, 이제 그대가 할 일은 다시 이쪽 강기슭에서 저쪽 강기슭으로 노를 저어 갔다 오는 것이다. 얼른 마땅한 ‘먹을 것 과 자유’를 구해 오는 일이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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