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53]

까톡, 까톡, 카까톡, 토도도독 톡.

핸드폰 단체채팅방에 계속 새로운 글이 올라오나 보다. 욜라 유치원 ‘토끼반’ 엄마들이 아이들 유치원 방학을 끝낸 기념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날도 더운데 아이들과 씨름한 노고를 서로 치하하는 중에 번개모임 공지가 떴다. 이번 주 금요일, S시에 있는 주차공간 넓고 분위기 좋다고 소문난 핫플레이스에서 점심이나 한 끼 하자고. 참석 가능한 엄마들이 셋, 넷.... 금세 여섯 명을 넘어서고 있다. 나는 토끼반 엄마들을 올 4월 유치원 학부모면담 때 딱 한 번 본 게 다지만, 다른 엄마들은 이후 몇 번 만나 밥도 먹고 많이 친해진 분위기다. 서로 ‘언니’ ‘동생’하며 십년지기 친구처럼 다정하게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염려하며 스케줄까지 꿰고 있다!

‘흠, 이번엔 나도 가야겠어. 무엇보다 아이와 관련된 거니까 너무 무심해서도 안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참석하겠다는 문자를 보내려고 하는데 채팅창 화면이 흔들리고 자꾸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더니만 서 있기조차 어려울 만큼 몸이 휘청거리고 목까지 조여 온다. 켁켁! 뭐지? 지진인가? 아니, 그 정체는 아까부터 계속 ‘꽥꽥’ ‘꾸아악’ 시끄럽게 소리 지르면서 내 무릎에 매달려 나의 가련한 티셔츠를(이미 늘려 줘서 원피스로 입어도 되는 그것을) 쭈욱쭉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섬유탄성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로다!

▲ "가고 싶지만.... 전 돌쟁이 막내를 돌봐야 해서요.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혜율
“오~ 로! 잠깐만, 잠깐만이면 돼. 엄마 문자 하나만 보내자. 응?”

평소엔 온갖 말귀 다 알아듣지만 이럴 땐 엄마가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 로. 잠깐 놀고 있으라고 장남감을 주니 성을 버럭 내고, 과자를 주니 이따위 것! 하며 팩 집어던지는 매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마도 어부바를 해서 낮잠을 재워 달란 뜻인가 본데.... 폭염 속에 포근포근 포대기를 두르기엔 무리고, 두 손으로 로의 엉덩이를 받치고 어부바한 상태로는 핸드폰을 쓸 수 없기에 로를 잠시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참석가능 문자만 보내면 돼! 비장하게 서서 ‘네~ 저도 참석할ㄱ.’ 하고 쓰고 있는데 로도 지지 않기로 했나 보다. ‘감히 나를! 나를 안 달래 줘? 용서할 수 없다!’하듯이 울면서 내 바지를 잡아당긴다. 한 손 방어막에도 자꾸 내려가는 바지. 결국 내 고무줄바지는 그 짧은 순간을 버티지 못했고 나는 순식간에 엉덩이를 까이고 말았다.

로 말고는 아무도 보는 이 없건만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 건 문명사회인으로 학습한 효과인지, 옷을 걸쳐 입고 살기 시작한 이래 가지게 된 DNA인지? 나는 부끄러움을 떨치기 위해 로를 보고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로~! 아니, 이게 뭐야?”

그리고 엉덩이를 깐 채 못 다 보낸 문자를 마저 보낸다. 내용이 대폭 수정되었다. ‘가고 싶지만.... 전 돌쟁이 막내를 돌봐야 해서요.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내 바지를 더 내려 보겠다고 용쓰는 로를 보며 눈물을 훔치려는데, 아 역시! 우리 착한 토끼반 엄마들은 너도 나도 나서서 나 대신 막내를 봐 주겠다고, 나보곤 그날 제대로 리프레쉬하라고 야단들이다. 흑, 정말 언니 동생 삼을까 보다. 하지만 로가 아니더라도 그날은 치과진료 예약을 한 관계로 모임에 갈 수 없겠다.

때는 금요일, 치과에 가서 충치를 치료하고 집으로 가는데 남편이 솔깃한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자기가 오후 내내 아이들을 볼 테니 나보고는 카페에 가서 시원하게 차 한잔 하란다. 보통은 그럴 때 바다요정 세이렌이 어서 들어오라고 꼬리 치며 유혹하는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로 가지만 그날은 얼마 전 새로 생긴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작업? 무슨 작업? 인터넷 되는 곳에서 노트북 펴 놓고 화면을 노려보며 뭔가를 뚜드리고 있으면 작업이지 뭐. 해서 들어간 카페. 건물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를 보니 굉장한 재력가인 지역 유지가 우아하고 향긋한 제2의 인생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은 느낌이 역력한 곳이었다.

▲ "엄마, 좀 쉬었다 가자." ⓒ김혜율
카페 안쪽에는 이미 단체손님이 큰 테이블을 하나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페퍼민트 차를 시키고 작업 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웬걸, 인터넷이 먹통이다. 아무리 와이파이 암호를 입력해도 연결 실패란다. 육중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한 매장 인테리어 솜씨를 보았을 때 그닥 주인이 젊은이가 아닌 건 알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인터넷 연결이 잘 안 되는 카페라니. 카운터에 가서 물으니 인터넷이 잘 되는 장소 한 군데를 콕 짚어 주는데 바로 시끌벅적한 단체손님들 옆 자리였다. 그럼 그 자리에서는 인터넷이 됐느냐? 되다 말다 불안불안하더니 끝내 잘 안 된다. 그래서 차나 우려 먹기로 했다.

외관은 고급인데 분위기는 어설픈 카페다. 커피와 차를 팔면서 조각케익을 팔지 않는 것도 괘씸하다. 하고 생각하며 박하차를 마시는데 아까부터 옆 테이블에서는 누군가 빠른 속도로 중대 발언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어머어머, 세상에, 아, 그래요. 라며 맞받는 목소리들이 격앙되어 있는 듯했다. 30대 초중반 정도의 여성들, 다들 한결같이 늘씬한 몸매에 멋진 옷차림, 국제적 매너 수준의 우아하고 여유로운 태도. 설마 국정을 논하는 중은 아니겠지?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는 의문은 그들의 대화를 십초도 듣기 전에 밝혀지고 만다. 그들은.... 바로 다섯 살 유치원생 어머니회의 티타임 멤버! 나는 작업도 물 건너간 마당에 차를 마실 동안만은 그들의 이야기를 좀 엿듣기로 했다.

바로 옆이라 휴지로 귀를 막지 않는 한 들을 수밖에 없기도 했다.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렸지만 세상에 이렇게나 진지하고 심각할 줄이야. 그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모든 다섯 살 아이들의 캐릭터를 대해부 중이었다.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좀체 불러 주지 않고 시종일관 쿨하게만 굴어 여자아이들의 속을 상하게 만든다는 어떤 남자아이에 대해,(어째 욜라랑 비슷한데?!) 독특한 스타일만 고수하고 새로운 아이템이 눈에 보이면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 아이에 대해,(이건 메리와 비슷하고!) 그리고 자기는 누구랑 결혼할 거고 또 누구는 누구랑 결혼하기로 했다느니 하는 아이들의 솔직한 취향과, 그러다 그만 삼각관계에 빠져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선택한 이래로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어떤 아이의 실연의 아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 아빠 손 잡고 사탕 사 오는 로. ⓒ김혜율
왜 그런 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풀어 나가고 있었다. 자기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지상 최대의 육아 공감대의 장이 거기 펼쳐지고 있었다. 너무 진지해서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을 희화화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웃음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앞의 현상이나 문제를 두고 전문가의 견해를 귀담아 들어야 하겠지만 우선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실로 아이들끼리 서로 비교하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못났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정보가 왔다갔다하는 소모적 모임의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간 나도 엄마들 모임이라고 하면 피곤하고 귀찮은 모임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인데, 지금 보니 ‘적어도’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때만큼은 엄마들의 답답한 가슴을 풀고 걱정도 덜어 놓을 수 있는 순수한 모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물론 지역 편차, 개인차 등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말인데, 토끼반 엄마들이 가을에 한 번 더 모이자고 하는데 기꺼이 가 볼 생각이다. 물론 로가 내 바지춤을 잡고 안 놔 주겠지만! 그러건 말건! 나는 로에게 단단히 일러 주었다.

“로~ 너는 그간의 경험으로 식당이나 카페에는 데리고 가기에 마땅한 인물은 아니란 걸 보여 줬어. 그래서 엄마 모임엔 안 데리고 갈거다~ 반드시 놔두고 갈 거란다. 크하하하.”

이것으로 바지 공격으로 드러났던 내 엉덩이를 대신해 로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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