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현 공무원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이제 국회에서 논의하기 시작한 지 몇 달이다. 국회에서 들고 나온 답안은 성과에 따라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고 경우에 따라 파면하기도 하는 ‘성과퇴출제’다. 과연 성과퇴출제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행정부와 공무원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능력주의는 효율성과 정의의 측면에서 타당하다. 능력 있는 자가 최소한의 자원과 시간으로 최대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은 선이요 공익이며, 어떤 직무를 그 자리에 적합한 자가 맡는 것은 정의롭다. 또한 직무수행의 대가, 즉 급여에 있어 그 우열의 기준을 연공서열로 정해서 일괄적으로 분배하는 것은 자유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때문에 성과퇴출제 지지자는 현재의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공무원 체제는 능력주의 중심의 운영을 하지 않아서라고 지적하고, 능력과 성과에 따른 분배를 해결 방안으로 드는 것이다.

원칙에 있어서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의도대로 적용되고 기대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결과가 부정적일 것이기에 성과퇴출제가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로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둘째, 누가 측정할 것인가? 사기업의 목적, 즉 그들에게 있어서 미덕과 선이란 이윤 창출이다. 성과를 측정하기란 상대적으로 쉽다, ‘얼마나 많은 자본을 확보했는가’로 우열을 가릴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사기업과는 달리 사회의 전체 이익, 즉 공공선을 지향하는 직분에 있다. 단순히 효율성과 성과(경찰은 범인 검거율, 교사는 학생의 성적 향상)로 미덕을 측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를 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쉽고, 성과퇴출제 반대자들이 걱정하는 대로 승진을 위한 줄서기 현상이 만연해지면서 공무원의 비리 부패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왜 우리가 공무원 개혁을 논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보자. 연공서열제로 인한 민주성과 창의성 하락, 직업의 안정성으로 인한 무사안일주의와 행정처리에서의 비효율성이 문제다. 그러나 대표적 원인인 연공서열제와 안정성을 제거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 바탕에 깔린 엄청난 배경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바로 ‘문화’다. 그 사회 구성원들이 대체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일의 과정과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질문을 확장해 보자. 왜 갈수록 우리는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잃고 안정성만을 추구하고 있는가? 축적된 경험으로 학습된 것이다. 나 하나 노력해 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는, 설사 이 조직이 변한다고 해도 이 나라가 변하진 않을 것이라는. 즉 긍정적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믿음, 그에 따른 생각과 행동. 일종의 패배주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아 버린 것이다.

▲ 공무원 회의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 youtube.com)

이 사회는 노력과 능력으로 합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그 믿음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성과퇴출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지금은 철인의 미덕이 필요한 때다. 플라톤에 의하면 철인은 국가를 통치하는 철학자로, 머리로 판단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고위 관료들이 철인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신용의 회복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이 작용에 대한 반작용을 즉각적으로 받고 개혁의 과정과 결과를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현 관료제의 특성상 고위 관료가 먼저 움직여야 그나마 빠르고 효율적인 결과가 가능할 것이며 더불어 그 아래의 공무원들도 직업의 소명의식을 느낄 기회가 될 것이다. 성과에 따른 배분은 그 다음에야 원래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 있다.

또한 국가가 설정한 한 시스템이 다른 기관과 사기업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봤을 때, 지나친 경쟁과 성과 위주 시스템이 사회 문제가 되고 많은 이들의 동기를 꺾는 현재 국가에서 오히려 경쟁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 상태로 공무원들에게 성과퇴출제를 도입한다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전에 비해 성과를 내는 소수의 사람만이 행복한 반면, 그 시스템에서 낙오하는 사람과 그들을 지켜보는 국민의 불행이 훨씬 클 것이다. 지금은 함께하는 미덕이 사회 전반적으로 신용을 회복하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때다. 그렇게 울퉁불퉁한 땅을 다지고 난 뒤에야,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능력주의의 미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공무원은 어떤 사람일까? 성과를 잘 내는 사람만을 원하진 않는다. 느리지만 함께 가는 방향을 추구하는 사람,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더 좋은 결과를 내고자 노력하는 사람, 공동체의 선을 소명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성과퇴출제가 아니라 소명의식과 변화에 대한 희망이다.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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