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 10월 9일(연중 제28주일) 루카 17,11-1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난 이야기였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은 나병환자가 사람들 가까이에 오는 것을 금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도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은 가서 사제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병이 치유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사제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제들에게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 중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은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는 나병을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불행들 앞에서 인류 역사는 늘 하느님 혹은 하늘이 준 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천형(天刑), 곧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일컬어졌습니다. 한국의 한하운 시인의 시에 이 천형이라는 말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는 1920년에 태어나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하고 함경남도 공무원으로 재직했습니다. 그가 나병에 감염된 사실을 안 후에 남긴 시가 있습니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이 시는 천형, 곧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들 말하는 그 병의 비극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셨다, 혹은 나병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는 복음서들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어떤 초능력을 가진 분이었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은 질병을 비롯한 모든 불행을 하느님이 주신 벌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이나 나병을 낫게 하였다는 복음서 이야기들은 하느님이 죄에 대한 벌로서 사람들에게 병을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벌을 주거나 저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벌주고 저주하는 일은 우리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느님은 고치고 살리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이었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오늘의 복음을 읽고 예수님에게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은 배은망덕하였고, 돌아온 한 사람만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았다고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정도의 교훈은 이솝의 우화들 안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지 않고, 하느님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복음은 치유된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당 전례에서 신자들이 성가를 부르는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리는 행위는 그리스도 신앙인이 성당 안에서 하느님을 흠숭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베풂을 받은 열 사람이지만,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고, 그분을 찬양하고 그것을 배우려 나선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느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인지를 알아듣고, 하느님에게 와서 감사드리는 신앙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 나병(한센병)으로 문드러진 손.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하느님이 베푸셔서 우리가 살아 있습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가족,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모두가 하느님이 베푸신 것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에는 감사할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의 의식주를 비롯하여 우리와 가까운 분들, 모두가 하느님이 베푸신 결과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고통스런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의 나병환자들과 같이 사람들로부터 버려지고 참담한 심경으로 하늘을 원망하며 살아야 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돈이 없어서, 계획했던 일이 실패해서, 좌절과 실망을 안고 실의에 차서 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존이 없으면, 그런 고통과 좌절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어지지 않은 것만 확대해서 보기 쉽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도, 우리를 미워하며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만 확대해서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은혜로움을 외면하고, 멀리 있는 냉혹함만 보고, 불행하게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쁩니다. 더 많이 갖고, 더 건강하고,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바쁩니다. 대책도 세우고 계획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치유된 열 명의 나환자 중 아홉 명은 자기들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바삐 가야 하였습니다. 각자 원하던 바를 차지하고, 그것을 누리기 위해 바삐 가야만 했습니다. 이제 나병이라는 불행을 벗어났으니, 그들에게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자기가 먼저 해야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베푸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큰 소리로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배우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 안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던 신앙인의 모습이 소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며 절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는 하느님의 일을 실행하는 예수님을 만나 그 절망에서 벗어나 사회에 복귀하였습니다. 하느님은 병과 소외와 절망을 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은 사람을 고치고 살리는 하느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에게 와 엎드려서 그 하느님의 일을 배우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보고, 그것을 배우는 사람이 올바른 신앙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은혜로우신 하느님의 일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인간을 소외시키지만, 하느님은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섬기고, 내어주고, 쏟아서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오늘도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은혜로우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여 구원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공석 신부(요한 세례자)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1964년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 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신앙언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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