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얼마 전 안젤름 그륀 신부가 지은 "쉼"(가톨릭출판사)이라는 소책자를 읽다가 한 대목에 눈길이 꽂혔다. 성 베네딕토 규칙서에 ‘관리자는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고 쓰여 있다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과식, 곧 많이 먹는 것은 내 관심사이자 작은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하는 가톨릭 신자로서 조금은 민망한 습관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6년 전쯤 됐을까. 어느 글에서 맞은편이나 옆자리에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여기면 아무래도 적게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구절을 읽고는 아! 그러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그렇게 해 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즐거운’ 식사를 하다 보면 ‘맞은편 예수님’은 온데간데없고 과식, 과음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과식이 좋지 않다는 생각은 내 의식 한구석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4년 전쯤이었을까.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버림받다시피 한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다른 종교 수도자들의 얘기가 나왔다. 말썽꾸러기 어린이들을 돌보고 학교에 보내는 수도자들의 일상은 정신이 없을 만큼 바빴다. 그래서 훌륭한 일을 하시는구나 하며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수도자들의 몸집과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몸은 좀 비대해 보였고 얼굴은 달덩이 같았다. 그 순간 좋은 일은 하시지만 음식은 절제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어쩐지 조화롭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뒤에도 과식에 관한 얘기는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법정 스님의 글이 기억에 남는데 수도자는 출가 당시의 몸무게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몇 년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법정 스님의 몸이 떠올랐다. 스님 혼자 암자에서 수행하면서 땔나무를 패는 장면이었는데 당시 70세가 넘으셨는데도 군살 하나 없이 젊은이보다 탄탄해 보이는 근육질의 몸매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때로는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성인은 배가 닿는 책상 부분을 둥그렇게 오려 낼 정도로 거구에 비만이었다는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구는 게 아닌가 반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몸에 관한 한 법정 스님의 말씀이 옳고 건강에도 좋다는 생각은 죽 이어지고 있다.

▲ 베네딕토 규칙서에 나온 '당가의 자질' 중 세 번째가 '절제가 있고 많이 먹지 않고'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그륀 신부의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읽고는 인터넷에서 베네딕토 규칙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31장 ‘당가의 자질’에 나와 있었다. 거기에서 당가(當家, 집안 일을 주관하여 맡음)로 선정될 사람의 자질을 10개나 나열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지혜롭고’, ‘성품이 완숙하고’ 였고, 세 번째가 ‘절제가 있고 많이 먹지 않고’ 였다. 세 번째로 둔 것은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륀 신부의 다른 저서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에는 세 번째 자질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앞부분을 소개하면 ‘많이 먹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급하게 먹는 사람은 음식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급하게 먹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며, 사람뿐 아니라 창조물까지 착취한다’, ‘돈 욕심이 많고 지도자로서 기여하기보다 모든 것을 성공하는 데만 사용한다’, ‘공익이 아니라 사익만 추구한다’ 등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 먹는 일이 참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과식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륀 신부는 "쉼"에서도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려 들거나 주말에 일거리를 들고 집으로 와서는 안 된다. 적어도 주말만은 우리가 심호흡을 하고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평온한 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비뚤어진 사회 지도층의 과식으로 체증을 앓고 있다. 탐욕과 불의가 넘쳐 날 뿐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찾아 볼 수 없다. 과식은 불의와 연결된다. 우리 모두 많이 먹는 사람은 미성숙하고, 공익이 아니라 사익만 추구한다는 베네딕토 규칙서를 새길 필요가 있다.

 
 

황진선(대건 안드레아)
논객닷컴 편집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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