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지난 9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종 19년 만에 성인으로 선포한 인도 콜카타의 데레사 수녀(1910-1997)는 ‘빈자의 성녀’다. 한데 필자는 부끄럽게도 마더 데레사의 활동에는 그렇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은 어려운 일이고 그럴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내게 빈자를 위한 활동보다는 기도의 의미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도록 해 준 분이다. 가톨릭 신자가 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기도할 줄도 모르고 기도가 중요한지도 모르던 2007년 가을이었다. 어느 날 데레사에 대해 쓴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운영하는 사랑의 선교회의 한 수녀가 돌봐야 할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을 정도니 기도하는 시간을 반으로 줄여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그때까지 기도했던 시간보다 배를 늘려 2시간 동안 기도를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 같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느님 자리는 없어지고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도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안 것 같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보고 그에 따라야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좋은 결실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 콜카타의 데레사 성녀.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그 뒤 가톨릭 성인들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된 마더 데레사의 영적 어둠의 체험은 내게 깊이 각인됐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고, 선종한 지 6년 만에 복자가 되고, 성인으로 선포되기 전에 20세기 가장 위대한 성녀라고 불렸던 그녀가 ‘영혼의 어둔 밤’으로 오랜 기간 고통을 겪었다는 얘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살아 있는 성녀’로서 당연히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어려움을 기쁨으로 이겨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로레토수도회 수녀였던 데레사는 1946년 9월 10일 기차여행에서 ‘부르심 속의 부르심’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콜카타의 페르디난트 페리에 대주교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데레사는 기도 중에 “네가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의심과 두려움으로 답하자 하느님은 단호하게 “네가 날 위해 이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말씀하셨다. 데레사는 그 뒤 여러 주일 하느님과 심오한 친교를 누렸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기로 한 데레사는 수녀원 밖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사랑의 선교회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그 직후부터 선종할 때까지 하느님이 부재하시는 것 같은 어둠을 체험했다. 그녀는 영적 지도자 중 한 분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의 고통이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페리에 대주교에게 “하느님이 나를 원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이 하느님이 아니시고, 하느님이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끔찍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마더 데레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영적 지도자의 도움으로 자신의 고통을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기회로 바라보고 어둠을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상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어둠과 고통의 한 부분,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쓸모없다는 느낌을 통해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 깊이 동화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성녀도 저런 어려움을 겪는구나. 성녀 역시 인간이구나”하는 위로감 같은 것도 느꼈다. 성녀가 그렇게 간절하게 주님을 뵙고자 해도 뵙지 못했다니 우리 역시 주님을 뵙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믿음이 약한 평범한 신자가 성녀의 영적 고귀함과 어둠의 신비를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성식과 미사를 집전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10만 명이 넘는 신자와 각국 대표단과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데레사 수녀는 세계의 부강한 이들에게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빈곤이라는 범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이제 전 세계의 양극화와 빈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솔선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내주지 않으면 지구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빈곤은 힘센 자들이 만들어 낸 범죄다. 50년 동안 빈자와 고아, 병자들과 삶을 함께한 어머니 ‘마더’ 데레사의 깨우침과 호소가 지금이라도 큰 울림을 던졌으면 한다.

 
 
황진선(대건 안드레아)
논객닷컴 편집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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