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 - 9] 사찰음식의 대가, 선재 스님

딱딱딱딱딱딱.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빠르고 리드미컬한 칼질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이곳은 서울 강남구 수서동 전국비구니회관 사찰음식 강의실. 30여 명의 수강자들이 앞치마를 매고 재료와 레시피를 받는다. 수강생들은 모두 여성. 젊은 사람도 제법 많다. 재료 준비가 끝나자 수강생 중 한 명이 죽비를 세 번 두드리고 선재 스님과 수강생들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인사를 나눈다.

선재 스님이 이곳에서 사찰음식 강좌를 한지는 8년째다. 한 강좌당 30명,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 오후 두 개 강좌가 있으니 한 달 수강생만 해도 180명이다. 담당자는 “금방 마감되기 때문에 항상 대기자가 많다”고 전했다.

▲ 선재 스님은 “음식은 약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양효숙 기자

사찰음식의 기본은 채식과 자연식, 그리고 소식이다. 살생을 금하는 법도를 따라 육류를 먹지 않고, 오신채(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넣지 않는다. 마늘이나 부추는 피를 맑게 하고 기운을 북돋우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바깥으로 치닫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고요히 내면에 집중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고 여긴 까닭이다. 사찰음식은 수행자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한 음식이기에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조화시키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선재 스님은 출가 후 몸이 좋지 않아 자연스레 음식에 관심을 두게 됐다. 집안 내력으로 간이 좋지 않은데다 졸업논문과 은사 스님이 계셨던 청소년 수련원 일을 하느라 무리를 했다. 20여 년 전, 간경화로 병원을 찾았던 스님에게 의사는 1년을 장담하기 어렵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자연식으로 몸을 돌보기로 했다. 연구를 하며 식단을 바꾸었고, 음식이 자신에게 오기까지의 모든 인연에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반응했고 마침내 스스로 병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스님은 제철 재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금찜, 연잎밥, 애호박 소박이 같은 친숙한 음식에서부터 쇠비름나물, 엄나무순전, 호두제피잎 조림 등 조금은 낯선 재료로 만든 음식까지, 모두 ‘때’를 알아 나는 재료를 선택한다. 당연히 유기농을 사용한다. 비닐하우스 재배도, 농약도 안 된다. 선재 스님은 “땅을 살리는 것이 곧 내가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불교에 불이사상(不二思想)이 있어요. 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둘이 아니고, 땅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거죠. 제철이 아닐 때 무언가를 먹으려 하니 비닐하우스가 필요하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돼요. 화학비료는 말할 필요도 없죠. 꿀벌이 꽃에서 꿀을 가져올 때, 꽃을 해치지 않거든요. 우리가 음식의 재료를 선택하는 자세도 이래야 해요. 저는 음식으로 자연을, 생명을 살리고 싶어요.”

‘때’를 중요시하는 것은 재료만이 아니다. 선재 스님은 “몸의 리듬에 맞춰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침은 굶지 않아야 해요. 부처님은 아침에는 뇌가 활동하기 시작하니 가볍게 죽을 먹고, 낮에는 딱딱한 음식을, 저녁에는 과일즙을 먹으라고 가르치셨죠. <사미율의>는 불문에 갓 들어온 어린 승려인 사미를 가르치는 계율책이에요. 거기에 ‘정오가 지나면 스님네가 밥 먹는 시간이 아니다. 하늘 사람은 새벽에 먹고, 부처님은 낮에 드시고, 짐승은 오후에 먹고, 귀신(鬼神)은 밤에 먹는다’, 이런 구절이 나와요. 밤늦게 먹는 걸 경계하는 거죠. 과식이나 잠자기 전에 먹는 음식도 ‘독약’이라고 하셨죠.”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냉잡채, 아카시아꽃전, 아카시아 겉절이, 버섯야채볶음 ⓒ문양효숙 기자

이날 선재 스님이 선택한 요리는 냉잡채, 아카시아꽃전, 아카시아 겉절이, 그리고 버섯야채볶음이다. “원래는 지금이 아카시아 꽃이 한창일 때인데, 날씨가 추워서인가. 아직 만개하지 않았어요. 제주도에서 공수해온 아카시아꽃이랍니다”라고 소개한다. 고추기름을 만들고 전을 붙이는 스님의 손길은 빠르고 정확하고 리듬을 타는 듯하다. 표정은 강의할 때보다 훨씬 깊고 진지하다.

간장과 소금으로 냉잡채 간을 맞추며 양념의 성질과 효능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간장은 어우러지고 소금은 칼칼해요. 날로 먹을 땐, 간장이 좋아요. 야채가 가진 냉한 기운과 독을 제거해 주거든요.”

선재 스님은 양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20년 전부터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그는 것은 것은 물론, 소금도 송화 가루가 날릴 때 좋은 소금을 채취해 직접 간수를 빼서 쓴다.

보기에도 예쁜 냉잡채를 맛본다. 소박하고 조금은 밋밋한 맛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다. 흔히 파는 음식에 익숙해진 입맛에 사찰음식은 2%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데, 아삭한 야채의 식감과 상큼한 소스가 잘 어우러져 입에 착 감긴다. 녹말과 고추기름, 설탕, 식초 등을 넣은 버섯야채볶음은 잘 만든 탕수육을 떠올리게 하지만 훨씬 부드럽고 깔끔하다.

선재 스님은 음식은 ‘약’이라고 말했다.

“여기 온 사람은 요리를 배우러 오신 분도 있지만 음식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와요. 지금까지는 맛있게 먹는 즐거움과 배부름을 주는 것이었죠. 그런데 먹고 나서 그게 좋은 에너지로만 있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몸을 망가뜨릴 수 있죠. 그러니 한 가지 더 얹어야 해요. 음식은 ‘약’이 되어야 해요. 아픈 사람을 고치기도 하지만 병을 예방하기도 하는 차원에서요. 사찰음식은 건강과 생명에 지혜까지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님은 사찰음식 강의 수강생들도 처음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과 마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고 전했다.

“음식은 사람의 성품을 만들어요.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니까요. 내가 먹는 게 나를 만들죠. 음식이 곧 수행이에요. 식사 때마다 만들고 먹으면서 마음을 닦을 수 있어요.”

선재 스님은 바쁘다. 이번 주만 해도 광주, 양평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찰음식에 관한 강의를 했고, 23일부터는 2주일간 독일에서 열리는 한국 사찰음식의 날 행사에 참여한다. 취재를 위해 만난 날도 아침부터 2-3개의 강의가 연이어져서 목이 쉬어 있었다. 건강한 이들에게도 쉽지 않을 듯한 빠듯한 일정을 거뜬히 소화해 내는 에너지는 어디서 올까.

“덜 먹는 거죠. 적게 먹고 몸에 안 좋은 걸 안 먹고. 좋은 걸 먹으려 하고 나쁜 걸 먹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게 빼고 빼면 원래의 것, 자연스러운 것을 먹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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