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지금 우리 삶의 철학 - 유대칠]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일 뿐인가? 아니다! 사실 다양한 철학‘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가 아닌 복수의 다양한 철학‘들’에 대한 명칭이다. 어찌 보면, 중세의 철학‘들’이다. 이제껏 ‘중세철학사’를 다루는 책들은 대체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남성에 의한 철학을 다루었다. 대 알베르토(1200?-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둔스 스코투스(1266-1308), 오캄(1285-1349) 모두 그렇다. 과연 ‘중세철학’은 특정 종교, 특정 지역, 특정 계층만의 것이었을까? 아니다. 참된 철학은 타인과의 지적인 ‘공유’를 통하여 ‘고유’ 색을 가지게 된다. 철학의 고유는 홀로 있음이 아니다. 더불어 생각함을 전제한다. 더불어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 철학은 ‘공유’를 전제로 한 ‘고유’다. 홀로 벽을 보며 하는 것이 아니다. 공유가 필요하다. 더불어 함께해야 한다.

서유럽의 중세철학은 이슬람의 중세철학과 ‘함께’ 있어야 했다. 서유럽의 중세철학은 그 철학의 고유 색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이슬람의 중세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와 이븐 루시드(Ibn Rushd, 1126-1198)가 아비센나(Avicenna)와 아베로에스(Averroes)라는 라틴어화 된 이름으로 그들의 철학이 번역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서유럽의 중세철학은 없다.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토마스 아퀴나스는 "원소들의 혼합"(De Mixione Elementorum)에서 아비센나와 아베로에스의 입장을 두고 어느 것이 자연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인지 고민했다. 이처럼 이슬람 철학의 영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에서도 이슬람 철학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서유럽의 중세철학은 이슬람의 중세철학 없이 그렇게 있을 수 없다.

▲ 중세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이슬람 철학자 이븐 시나(아비센나, 왼쪽)와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en.wikipedia.org)

이슬람의 중세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에 근거한다. 이미 중세 이슬람 철학자 알 파라비(Al-Farabi, 872-950)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철학"이라는 훌륭한 개론서를 집필할 정도로 그들 철학에 익숙했다. 유럽인이 아베로에스라 부른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모조리 연구하고 주해하였다. 그러면서 당시 많은 이슬람 철학자들은 서로 다른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를 소재로 다양한 자신들의 철학을 만들어 갔다. 요즘 이슬람 강경파의 배타성을 생각한다면, 신앙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이교 철학을 활용한 중세 이슬람 철학자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중세는 그랬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슬람의 중세철학은 유대교의 중세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 1135-1204)가 그렇다. 토라 해석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해석서인 "미슈네 토라"의 저자인 마이모니데스가 이슬람 철학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21세기 이 두 종교의 대립을 보아 온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중세는 그랬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대교의 중세철학은 서유럽의 중세철학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토마스 아퀴나스와 니콜라오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 등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2부, 1의 첫 부분에서 요한 다마셰노(Joannes Damascenus, 675?-749)의 입장을 수용한다. 다마셰노는 아랍어로 번역되기도 했던 동방교회의 학자다. 동방교회의 학자들 역시 토마스의 "신학대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연구하였다. 11세기 동서방교회의 상호 파문 이후에도 학자들의 교류는 중단되지 않았다. 중세는 동서방교회, 이슬람교, 유대교의 철학자들이 교류하고 있었다. 단절된 채로 서로 격리된 중세를 살지 않았다. 종교 혹은 신학의 입장 차이가 있었지만, 합리성이란 공간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그 공유가 중세의 고유한 철학‘들’을 만들었다. 다시 묻자.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만의 것인가? 아니다. 중세철학은 여럿의 것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859년 이슬람권에 세워진 알카라위인(Al Qarawiyyin) 대학이다. 이곳은 한때 교황 실베스테르 2세(999-1003 재임)가 청년 시절 유학했던 곳이다. 외교관이며 아랍어-히브리어-라틴어 의학 용어집을 작성한 레오 아프리카누스(Leo Africanus, 1494-1554?)의 모교이기도 하다. 동시에 유대교 철학자 마이모니데스가 연구하고 강의하기도 했다. 이 알카라위인 대학의 설립자는 놀랍게도 파티마 알피흐리(Fatima al-Fihri)라는 여성이다. ‘이슬람교’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유대교’가 하나의 역사 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스도교만의 중세에 익숙한 이라면 이러한 중세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 속 진짜 중세의 한 모습이다. 하나의 역사 속에 여럿이 더불어 있다. 중세철학도 이와 같다. 이슬람의 중세철학과 유대교의 중세철학 그리고 서유럽과 동유럽의 중세철학은 모두 하나의 역사 속에 더불어 있다. 서로가 서로를 공유하는 가운데 서로의 고유 색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있다.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만의 것인가? 아니다. 여럿의 것이다. 서로 다르게 있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은 그런 모습으로 있다. 그것이 중세철학이다. 

 

 
 

유대칠(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적었다.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한 공부보다 공유를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작은 고전 세미나와 연구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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