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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삶을 위해[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수녀님, 교리를 하면서 많이 고민해 봤는데, 아직 세례를 받을 정도로 하느님을 믿는 마음이 적은 것 같아요. 하느님이 하신 일을 알고 싶고, 하느님을 믿지만 세례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세례는 제가 하느님을 믿는 마음이 더 확실해지면 그때 받아도 될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어느 날 저녁, 심각하고도 귀여운 문자를 받았다. 2학기가 되고 세례를 받을 날이 다가오면 몇몇 아이들이 고민을 털어 놓는다. 멋모르고 시작했던 교리가 횟수를 거듭해 가고 세례식 날이 다가오면 왠지 모를 부담감이 작용하는 것 같다.

첫 해에 저런 고민을 들었을 땐, 내 믿음은 괜찮은가 돌아보며,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 줘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벌써 3년째, 이젠 해 줄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 마치 별일 아니란 듯한 마음으로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약간은 긴장한 아이와 마주 앉았다. 많은 학생들이 세례식이 다가오면 두려워 한다는 이야기,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 비유를 해 주신 이야기를 하며 세례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씨앗을 심어 주시는 것, 그 뒤부터 우리 마음 밭을 씨앗이 잘 자라는 밭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을 더 키워가고 신앙을 키워가는 것이니 지금 완벽할 수 없음을 열심히 설명했다.

심각하게 듣던 아이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이 고민을 1학기 때부터 했는데요. 주변 어른들께 여쭤 봤거든요. 근데 다들 그냥 세례 받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단 받으면 미사를 안 나가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나갈 수 있대요. 그리고 일단 종교가 있는 건 좋은 거래요. 근데 그게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일단 받고 그 담은 그냥 대충.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나도 같은 말을 하려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워낙 열심히 교리를 듣고 질문도 하던 아이였다. 세례를 받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세례는 받자는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그게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일단 그리고 그 담은 그냥 대충.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마치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나 역시 똑같은 어른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저는 미사를 기쁘게 나가고 삶 안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길 때 세례를 받고 싶어요.”

   
▲ 세례식에 갓 세례받은 신자들이 미사보를 처음 쓰고 세례초를 들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flickr.com)

얼마 전 사대강 관련 기사를 통해 농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이 심각해진 수질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었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일은 진행되었고 그냥 대충 숨기고 무마시켜 가며 지나온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 강을 마주하게 하였다.

비단 사대강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핵발전과 관련된 큰 사건들을 경험하고서 많은 나라가 핵발전소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더 많은 핵발전소 건립을 결정한 어른들. 앞으로의 일들에 책임을 지겠다는 확신이 있었을까. 앞으로 이 자연을 물려받아 삶을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 현상들, 국가적 문제들은 어떻게 선택된 걸까.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어른들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우린 어쩌면 너무나 쉽게, 나의 생각만이 옳다는 생각, 자신의 자리에서의 편안함과 이익 등이 앞서서 “일단 그리고 그 담은 대충” 이라는 생각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 같다.

신앙인으로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기쁘게 세례를 받고 싶다는 중학교 2학년, 15살 청소년의 이야기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시간을 좀 더 갖기로 했다. 아이는 원하는 대로 교리가 끝날 때까지 함께한 뒤에 세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먼저 자신에게 다가올 큰 변화,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사항의 경중이 어떻든 간에 자신에게 다가온 것을 “대충 그렇게” 가 아니라 진지하고 깊이 있게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 어른들은 좀 더 배워야 한다.

아이가 어떤 결정을 하든 충분한 고민 끝에 결정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 경험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 배운 것과 삶을 함께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자라나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

* 긴 시간 힘들게 계시다 9월 25일 고인이 되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의 영혼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상황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문득 아이의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게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일단! 그리고 그 담은 대충. 이건 아니잖아요.”

이제 우리도 새롭게 배워야 할 때 입니다. 이젠 안 됩니다.
일단 하고 대충 넘기는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자신부터 시작합시다.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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