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수도자들은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세상 이야기? 하느님 이야기?
우연히 만난 다른 수도회 수녀님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녀님께서 만나고 있던 첫영성체반 아이들에게 “하느님은 우리를, 누구를 닮게 만드셨나요?”라고 질문했더니 큰소리로 “원숭이요!”라고 대답했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크게 웃었던지. 서로 손을 들며 열심히 대답했다는 이야기에 꼬마들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은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하느님은 우리를, 누구를 닮게 만드셨나요?” “하느님이요!!”
“왜 그러셨을까요? 왜 하느님은 우리를 하느님 자신을 닮게 만드셨을까요?”
나 역시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왜 그 질문이 불쑥 나왔는지.
역시나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열심히 대답한다.
“그냥요!” “하느님이 잘생겼으니까. 외모가 자신이 있으셨던 것 아닐까요?”
조금 조용해지고 난 뒤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서로를 보고 하느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요.”

몇 해 전 공부방에 실습을 나갔을 때, 한 아이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골목을 한참 들어가 겨우 찾은 아이의 집은 지하 단칸방이었고 엄마와 함께 살지 않아서인지 집안은 엉망이었다.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 공부방이 아니면 식사도 할 수 없는 아이.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라던 아이 말에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디부터 정리해야 하는 걸까, 무엇을 도와야 하는 걸까. 그 어디에도 이 답답한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대체 이 출구 없는 곳 어디서 당신을 찾으란 말입니까. 아이에게서 하느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알아듣길 원하십니까?” 긴 시간 성체 앞에 앉아 계속 화를 내며 모든 것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있던 내게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 아이는 내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내게서 하느님을 찾았을까? 날 만나면서 그 아이는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사진 출처 = 지금여기 자료사진)

얼마 전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한 사람의 무차별 공격에 죄 없는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 부모가 자녀를, 보호해 주어야 할 경찰이 학생을,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해치는 일들이 무분별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
그 대상이 나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길을 잃고 있다. 나를 찾는 길,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어른은 어른으로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부모는 부모로서, 수도자는 수도자로서 자기의 자리를 지킬 때.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있을 때. 우린 서로를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혼돈의 시대에, 아픔이 가득한 시대에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하느님을 닮은 등대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진정 길을 잃었을 때, 나를 찾고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나는 당신을 봅니다. I see you." *
나는 당신을 봅니다.
처한 환경도, 가지고 있는 단점도 상관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닮은 하느님을 봅니다.
그리고 그분을 닮았을 나 자신도 봅니다.

* 영화 '아바타' 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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