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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세상을 다 구할 듯한 마음으로 수녀원 입회를 결정했다. 수도자로서 세상의 역가치를 살아 보겠다며 큰소리치던 수련 시절.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꽤 똑똑해 보이던, 말로써는 절대 이길 수 없었던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질문은 나를 얼어붙게 했다. 눈동자를 커 보이게 만든다는 컬러 렌즈를 살 5000원을 구하기 위해, 모르는 아저씨와 만나고 오겠다던 그 아이는 대안 없이 외출을 막는 내게 호기롭게 외쳤다.

“수녀님, 돈 없어 봤어요?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돈이 안 중요하다고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
순간 머뭇거리던 내게 그 아이는 한 번 더 혼내듯 외쳤다.
“수녀님이니까. 사랑이라고 말하겠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요.”

세상이 멈춰 버렸다.
그 짧은 순간 진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있었던 내게 그 아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나만 모르는 정답을 던졌다. 수녀라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대답했어야 했나 보다. 하지만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공허감과 괴리감이 남는다. 아이가 내게 정답을 주었음에도 계속 머뭇거렸던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

얼마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 기사를 보다 숨진 청년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을 보게 되었다. 무엇이 그를 식사조차 편히 할 수 없게 만들고, 그를 홀로 그 자리에 있게 했는가.

   
(사진 출처 = publicdomainpictures.net)
사람을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기계의 부품” 정도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사회 안에서 우린 여기저기서 아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현실. 그 또한 자리 잡지 못해 하루하루 불안함을 공기 삼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외칠 용기가 없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린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고 있는가. 몇 년 전 만났던 그 아이의 말처럼 돈이 없어 본 적 없는, 그나마 안정적인 곳에 사는 수도자라서 사랑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최근 한 학생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걸 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우리 집은 그럴 여유가 없어서 그냥 그만둘래요. 돈 잘 벌 수 있는 걸 찾아보죠. 뭐....”
“아니. 돈도 필요한 거지. 돈만 필요한 건 아니야. 방법을 찾아보자. 분명 할 수 있는 길이 생길 거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게 우리를 만드시며 한 명 한 명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린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다. 아름답게 꿈꾸고 신나게 살 권리가 있다. 자유롭게 하느님의 계획을 살아나갈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돈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다. 그저 돈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은 모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어떤 대안 없이 무조건 사랑을 외치는 것 또한 공허한 메아리처럼 마음을 친다.

그러나 이 혼란스러움 안에서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강력한 사랑뿐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 때문에 인간이 꼭 가져야 하는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존엄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의.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해 본다.

수도자여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 주신 인간이기에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친다.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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