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WYD 크라쿠프 봉사자 일기 마지막 - 이주현]

본 대회 동안 순례자들은 각 언어별로 마련된 성당에서 교리교육을 받았다. 이 시간을 세계청년대회에서 가장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에 있는 신자들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교리교육 내내 소셜 미디어를 통한 생방송을 했다. 2시간 동안 카메라를 손에서 내리지 못해 팔이 아파왔지만, 한국에서 함께 할 수 있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교리교육이 끝난 뒤엔 자비를 주제로 한 많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성소 센터도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한국인 봉사자와 함께 둘러보고 있었는데 어떤 수녀님이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왔다. 한국인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사흘 내내 이곳에 있었는데도 한국인들이 찾아오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세계청년대회에 함께하기 위해 크라쿠프에 왔다. 순례자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전광판, 가게 안에 있는 텔레비전 주위에 모여 교황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나는 몇몇 순례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을 왜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답변은 단순했다. 교황의 말과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본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무척 사랑해 주고 있다는 걸 자주 느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우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교황과 같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교황님의 젊은이들입니다! Esta es la juventud del papa!”

▲ 한국인 순례자는 두 성당에 나뉘어 교리교육을 받았다. ⓒ이주현

그러나 이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정치적 이유로 또 경제적 이유로 오지 못한 청년들도 많이 있었다. 특히 쿠바의 1000명이 넘는 청년들은 비행기를 타고 올 형편이 되지 못해서 우리와 같은 시간에 자체적으로 세계청년대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슬퍼서 뭉클한 게 아니라 쿠바 청년들이 진심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함에 감동했다. 우리는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며 경제적 어려움도 없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모든 것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하느님을 얼마나 간절하게 만나고 싶어 했고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청년대회 내내 순례자들과 함께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교황이 주교관 숙소로 들어가도 많은 순례자들이 그 앞에 모여들었다. 그때마다 교황은 매일 발코니에 나와 우리에게 따뜻한 저녁 인사를 건넸다. 어느 날은 축제로 가득한 이 시간에 잠시 슬픔을 가지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분 중에 하나였던 한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막 22살을 넘긴 청년이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여 이번 세계청년대회를 위한 봉사에 기꺼이 자원했습니다. 이번 행사의 모든 디자인이 그의 작품이죠. 이 도시를 꾸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의 수고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암 진단을 받고 7월 2일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 모두를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 친구는 하느님께 세계청년대회까지만 살게 해 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교황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망연자실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허락되는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 대회를 준비했을 것이다.

▲ 함께 모인 한국인 봉사자들. 함께 철야기도와 비박을 하고 폐막미사를 드렸다. ⓒ이주현

세계청년대회 봉사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나와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봉사자들이 섞여 있어서 그들과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어느 때는 온종일 영어를 쓰느라 지쳐서 쉬고 싶은데 저 멀리서 나를 보고 다가오는 외국인에게 억지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던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만남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 이유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각과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자들과 대화할 때 어디 성당에 다니는지, 어떤 단체 활동을 하는지 또 신앙생활은 얼마나 했는지 등 모두 외적인 모습만 궁금해 한다.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의 대답에 따라 신앙생활을 좀 했다, 안 했다로 나눌 때도 있다. 그러나 외국인 친구들은 질문 자체가 달랐다. “네가 만난 하느님은 어떤 분이었니?”, “이번 세계청년대회를 통해서 무엇을 느끼고 싶니?”로 시작해서 사회문제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봐야 하는지까지 좀 더 깊이 있고 내적인 질문을 많이 했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한국교회의 모습은 예쁘게 잘 만들어 놓은 빈 그릇뿐일지도 모른다. 빈 그릇에 소리가 더 요란하게 나기 전에 어떤 그릇이 더 예쁜지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이제는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 폐막미사 때 청년들에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주현

우리는 세계청년대회를 마치고 자비의 사도로 세상에 파견되었다. 행사의 마침이 아닌 또 다른 시간을 위한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계청년대회 중 철야기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파에 앉아 편안히 감자칩을 먹으며 TV만 보는 사람(couch potatoes)이 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신발끈을 졸라매며 신발을 신으십시오. 세상에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때 자비의 광장에 모여 있던 수백만 명 순례자들의 환호성이 아직도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분명 그 환호성은 용기를 갖고 세상에 도전하겠다는 우리의 다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청년대회를 다녀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고 전해 줬다. 어떤 친구는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사제가 되고픈 결심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도전’이라는 그 중심엔 언제나 주님이 계셔야 함을 세계청년대회를 통해서 다시 느꼈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품어 안아 주시리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기 때문이다.

제31차 세계청년대회 참가자들 신앙 인터뷰 "당신에게 젊음이란 무엇입니까?" ⓒ이주현
 

 
 

이주현(그레고리오)

평화방송TV에서 뉴미디어 담당자로 일했고 
현재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연구보조원, 
세계청년대회 페이스북 한국어 공식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