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WYD 크라쿠프 봉사자 일기 2 - 이주현]

본격적으로 소셜 미디어 계정을 운영한 지 하루가 지났을 때 소셜 미디어 팀장으로부터 개인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겼나 싶어 걱정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메시지를 열어 봤다. 팀장은 매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모든 언어권별 소셜 미디어 계정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약 6000여 명의 새로운 구독자가 생겼는데 그중 1000여 명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무작정 도전했던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었다. 팀장은 며칠 뒤에도 나랑 다른 봉사자들이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에 와서 이 놀라운 사실(?)을 곁에 있던 봉사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웃으며 “이게 바로 순교자 교회의 힘”이라고 농담 삼아 얘기했다.

본 대회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빨간색, 노란색 순례자 가방을 맨 순례자들이 크라쿠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례자 가방은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이 있는데 봉사자는 모두 파란색이고 순례자는 빨간색이나 노란색이었다. 크라쿠프에서는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세계청년대회의 시작 전야를 알리듯이 하루 종일 축제가 열렸다.

낮에는 구시가 광장에서 수사님들이 나와 춤을 선보였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동작이었다.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동작을 따라하며 배웠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든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 춤을 추기까지 했다. 한복을 입고 그 옆을 지나가던 나도 어느새 그 사이에 껴서 춤을 즐겼었다. 그런데 며칠 뒤, 폴란드에 사는 동료 봉사자가 “너 유명인사가 됐어!”하며 메시지를 보내 왔다. 그때 춤추고 있던 내 모습이 사진에 찍혀 순례자 신문 1면에 실린 것이다. 아무래도 한복을 입은 동양인이 춤추고 있었던 게 신기했나 보다.

▲ 자비 콘서트 무대 앞에서 한국인 봉사자와 폴란드 청년들. ⓒ이주현

다른 한쪽에서는 자비 콘서트가 매일 열렸다. 저녁이 되면 광장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콘서트를 즐겼다. 거기엔 순례자뿐만 아니라 아기를 안고 온 동네 사람들 그리고 지나가던 관광객들까지 한데 모여서 방방 뛰고 있었다. 노래 앞에선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상관없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콘서트에서 나온 노래는 대중가요가 아닌 대부분 성가였다. 딱 들어 봐도 가사에 주님, 예수님, 알렐루야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 기쁘게 주님을 찬양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대회를 이해하며 그저 분위기를 즐겼다.

하나가 되었던 자비 콘서트를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저 나와 다른 종교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만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교회의 행사지만 가톨릭교회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길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다독여 준다. 순례자로 이 자리에 함께하면서 세계청년대회의 정신을 가슴에 담고 각자의 삶에서 실천한다면 자비롭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 구시가 광장에서 열린 자비 콘서트. ⓒ이주현

본 대회가 시작되는 날, 비가 푸석푸석 내렸다. 폴란드는 비가 자주 오는 나라다. 2년 전, 크라쿠프에 왔을 때도 광장에서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내린 비에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순례자들은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고 블로니아 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세계청년대회 개막미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블로니아 공원에는 엄청 큰 제단이 설치됐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크기였다. 그리고 자비의 예수님 성화가 제단 뒤에 걸려 있었다. 개막미사는 개최하는 교구의 교구장 주교가 주례한다. 미사가 시작되자 이번 대회의 주보성인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성해(聖骸)가 제단 십자가 밑에 안치되었다. 우리는 두 분의 도움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 품 안에 폭 안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그 순간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깨고 구름 사이에서 빛이 한두 줄기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이 맑게 갠 것이다. 순례자들은 곳곳에서 탄성을 지르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 순례자들이 성가에 맞춰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주현

그때 제단에서 익숙한 성가가 내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세계청년대회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성가, ‘예수님 당신은 저의 모든 것입니다’(Jesus Christ you are my life)였다.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1장 21절의 내용으로 2000년 대희년 때 로마에서 발표된 곡이다. 그 뒤 지금까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전례댄스 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성가만 나오면 모든 순례자들이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국기와 단체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들기 시작한다. 나는 이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프레스 센터 위에 올라갔는데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젊은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또 보고 싶어서 이 대회를 만든 성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그의 영적 멘토였던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 우리는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였고 마침내 그들의 고향인 폴란드 크라쿠프에 왔다.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모인 전 세계의 젊은이들. 이렇게 젊은이들을 위한 희년의 날인 세계청년대회가 시작되었다.

제31차 세계청년대회(폴란드 크라쿠프) 영상 스케치2 "여러분에게 자비란 무엇입니까?" ⓒ이주현

 
 

이주현(그레고리오)

평화방송TV에서 뉴미디어 담당자로 일했고
현재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연구보조원,
세계청년대회 페이스북 한국어 공식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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