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WYD 크라쿠프 봉사자 일기 1 - 이주현]

2016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 봉사자로 참가한 이주현 씨의 현장 수기가 이번 주 3회에 거쳐 연재됩니다. 현지에서 만난 각국의 청년들과 폴란드 가톨릭교회를 보며 느낀 하느님의 자비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수기를 써 주신 이주현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나는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폴란드 크라쿠프에 머물며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국제 봉사자로 활동했다. 우리나라엔 순례자로 참가하는 방법만 알려져 있어서 봉사자로 참가하는 건 아주 생소한 일로 다가올 수 있다. 봉사자로 참가했던 지난 보름 간의 시간은 나에게 자비 가득한 은총의 시간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그때의 여운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진하게 남아 있다. 좋은 건 서로 나눠야 더 풍성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청년대회에 봉사자로 참가했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마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기쁨으로 가득 차, 예루살렘에 돌아가 자기네 체험을 나눴듯이 말이다.(루카 24,13-35)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번에 걸쳐 젊은이들을 위한 희년의 날인, 폴란드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에 젊은이들을 초대했다. 나는 그 부름을 듣자마자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때 느꼈던 ‘열정’이었다. 그리고 3년 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났던 두 명의 한국인 봉사자가 떠올랐다. 힘든 일정이었음에도 언제나 기쁨이 얼굴에 묻어나 있는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그 뜨거운 열정을 폴란드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 봉사자로 쏟아 보자는 결심을 했다.

▲ 제31차 세계청년대회가 열렸던 자비의 도시, 폴란드 크라쿠프. ⓒ이주현

어느 날 나는 봉사자 센터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소셜 미디어 센터에서 봉사해 줄 수 없냐는 나름의 섭외(?) 메일이었다. 그동안 세계청년대회 소식을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다양한 언어로 전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인이 있으니 페이스북 한국어 계정을 맡아 주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아니,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말해 왔다. 나는 너무 기뻤다. 물론 어떤 역할이라도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로 제안이 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가톨릭계 언론기관에서 영상 콘텐츠를 만들며 소셜 미디어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 하느님께서 나의 좋은 경험을 봉사하는 데 쓰라고 기회를 주시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봉사하고 싶다는 답장을 써서 보냈다.

마침내 드디어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크라쿠프 중앙역은 버스터미널과 큰 백화점이 같이 있는 복합 건물이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은 길을 잃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매우 컸다. 그러나 나에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2년 전 나 홀로 50일간 유럽 배낭여행을 했을 때 크라쿠프에 와서 5일간 머물렀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그때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크라쿠프 중앙역 광장부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까지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옮겨 다니며 지난날의 추억에 젖어 들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바로 구시가 광장에 우뚝 솟아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 앞에 있었다. 그리고 짐을 짊어진 채로 성당 안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나를 이곳에 다시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의 여정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청했다.

며칠간 봉사자들은 기본 교육과 각자 속한 팀에 따른 교육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테러와 각종 위협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기에 봉사자들의 긴급 상황 대처 방법은 아주 자세히 다뤄졌다. 가짜 경찰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폴란드 경찰 복장까지 알아 두라고 했으니 말이다. 내가 속한 소셜 미디어팀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과 그에 따른 우리 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하게끔 해 줬다. 같은 팀 안에 20여 개 언어를 쓰는 100여 명의 봉사자가 있었는데 그중 한국인 봉사자는 단 두 명이었다. 세계청년대회 역사상 최초로 한국어 소셜 미디어 계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기에 우리는 단연 돋보였고 동료 봉사자들로부터 큰 환영 박수를 받았다. 소셜미디어팀 코디네이터가 사무실 창가에 국기를 걸어 두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창문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큰 태극기를 걸었는데 봉사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소셜미디어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태극기를 먼저 볼 수밖에 없었다.

▲ 소셜미디어 사무실에 큰 태극기를 걸어 놓았다. ⓒ이주현

세계청년대회의 모든 봉사자들이 ‘하느님 자비의 성지’에 모여 봉사자 환영 미사를 드렸다. 약 1만여 명이 모였는데 모두들 파란 봉사자 티셔츠를 입고 대성당을 가득 메웠다. 마치 제대 중앙에 모셔져 있는 자비의 예수님 성화에서 뿜어 나오는 파란 빛이 우리를 품어 안아 주는 듯했다. 하느님 자비의 성지에서 봉사자의 시작을 알린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을 보내는 중에 개최되는 세계청년대회는 ‘자비’를 주제로 하고 있고 무엇보다 하느님 자비 신심은 이곳 크라쿠프 하느님 자비의 성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미사를 주례한 크라쿠프 대교구장 스타니스와프 지비쉬 추기경은 미사가 거의 끝날 즈음에 각 나라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봉사를 하러 온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을 환영해 줬다. 나는 제대 바로 앞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던지라 ‘꼬레아(한국)!’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지비쉬 추기경은 미사 파견 행렬 중에도 봉사자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는데 나와 악수를 하며 “한국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다.

▲ 하느님 자비의 성지 대성당에서 봉헌된 봉사자 환영 미사. ⓒ이주현

그때 저 멀리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며 다가오는 봉사자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다. 나는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 먼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데 같은 봉사자로 온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이윽고 봉사자들 틈에서 한국인 봉사자가 더 나타났다. 그들도 한국인 봉사자가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인 봉사자를 더 찾아 보기로 했다. 이후 내 개인 SNS를 보고 연락해 온 사람도 있었고 같은 숙소 안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8명의 한국인 봉사자가 모두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순례자 등록, 교리교육 준비, 행사 안전요원, 박물관 안내 등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봉사했다.

 제31차 세계청년대회(폴란드 크라쿠프) 영상 스케치 ⓒ이주현

 

이주현(그레고리오)

평화방송TV에서 뉴미디어 담당자로 일했고
현재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연구보조원,
세계청년대회 페이스북 한국어 공식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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