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언제였던가? 나이키 상표의 운동화가 우리 사회에 첫선을 보이고 얼마 뒤였을 텐데, 누가 나이키를 신는지 묻는 광고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후 나이키 신발이 불티나게 팔린 건 물으나 마나였는데, 그 언저리였던가? 나이키 신발 공장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전했다. 요즘 나이키 신발은 한국 자본이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겨 생산한다. 미국의 나이키 본사는 디자인과 광고에 주력할 뿐이다.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No Logo"는 유명 상표가 생산되어 소비되는 과정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그중 나이키 운동화는 어떨까? 인건비가 싼 곳으로 생산 시설을 옮긴 만큼 가격은 낮아져야 옳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급등했다. 요란한 디자인과 광고 때문이었다. 당시 ‘농구 황제’라는 별칭을 가진 마이클 조던이 덩크슛 하는 도안이 붙어 유명했던 운동화는 200달러가 넘었어도 청소년, 특히 흑인일 경우 그들의 주류 사회에 끼기 위해 신어야 했다.

‘더 블랙 페이스’ 상표를 가진 점퍼를 입어야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던 중학생이 우리나라에 있었던 현상과 비슷한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싶은 미국의 그 흑인 청소년은 아버지에게 부탁할 수 없었다. 나이키 회사 생산직 사원이었지만 실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돈을 마련하려고 경찰의 눈을 피해 마약을 운반하고 조금씩 파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No Logo"에서 나오미 클라인은 안타까워한다.

요즘은 나이키뿐 아니라 수많은 국내외 신발 상표가 등장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그런 신발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특정 유명 상표를 보유하는 동네의 신발 전문점? 아닐 것 같다. 솔깃한 가격과 디자인을 견주며 구입하려면 아무래도 다양한 상표의 신발을 전시하며 판매하는 양판점으로 발길을 옮길 것 같다. 그런 양판점이 생기면 동네의 신발 가게는 문을 닫아야겠지. 신발 가게뿐인가? 승용차를 타고 밀물처럼 찾는 소비자들은 옷과 생활용품은 물론 자동차 주유까지 양판점에서 낮은 가격으로 해결할 게 분명하다.

▲ 브랜드 신발들. (이미지 출처 = flickr.com)

인도 서남부 해안에 있는 케랄라 주는 GNP로 비교하는 소득이 인도에서 가장 낮지만 가장 행복한 지역이라고 전문가는 평가한다. 소득이 높은 인접 주는 해안의 어업권을 대규모 선단으로 해양 자원을 싹 쓸어가는 일본이나 한국 기업에 내주는 대신 그 대가로 받은 거액을 받으므로 GNP가 늘어나지만 케랄라 주는 아니라고 한다. 지역 어민이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지역에서 소비하는 까닭에 GNP 증가와 무관하지만 해안 경관과 어장이 황폐해지지 않고 지속 가능한 소득이 주민에게 돌아가는 만큼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단골손님에게 살갑던 지역의 작은 가게는 대형 양판점이 들어서는 순간 고객을 잃고 고사하기 시작한다. 그런 양판점을 허락한 지방은 지방세 수입이 늘어나므로 GNP가 오르겠지만 주민의 행복은 뒷걸음질한다. 오랜 세월 지역에 뿌리내렸던 상공인을 몰아내지 않던가. 편의를 좇아 편의점에 드나들던 고객은 기계적으로 친절할 뿐인 양판점에 종속된다. 가격이 다소 싸 보여도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더 사며 지갑이 털리는 건 애교다. 양판점이 취급하는 물건만 사야 하므로 GMO를 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서 예외이기 어렵게 된다.

고객의 얼굴을 기억할 필요가 없는 차가운 친절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이나 애로를 배려하지 못한다. 물건이나 농산물 생산자의 애환도 살피지 않으며 벌어들이는 대부분의 수익은 지역에 돌아가지 않는다. 부과되는 세금을 지체없이 내겠지만 거래 규모에 비해 지역에 만드는 일자리는 아주 인색하다. 지역 주민의 행복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이따금 승용차를 몰고 와 트렁크 가득 물건을 싣고 가는 고객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방 자치를 염두에 두는 정책을 구민과 더불어 찾아가려 애쓰는 인천시 부평구는 인근 지자체인 부천시의 처사에 안타까움을 참지 못한다. 부평구와 인접한 지역에 초대형 양판점을 허가하려 하기 때문이다. 허가권을 가진 부천시의 GNP 수치는 오르겠지만 주민의 행복은 떨어질 텐데, 상권을 잃을 인근 부평구는 또 어찌 될 것인가?

브라질 쿠리치바는 다음 세대의 행복을 생각하는 정책으로 아무도 떠나려 하지 않는 “꿈의 도시”가 되었다는데, 주민 떠난 자리를 지배하며 지역의 돈을 중앙에서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양판점을 끌어들이려 하다니, 지방 자치의 본령을 해치는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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