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자본 위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안 돼

1994년이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인천의 모 민방위본부 강당에서 굴업도 핵폐기물 처분장 관련 공청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일찌감치 점심을 먹은 대책위 사람들은 며칠 구속될 각오로 공청회장으로 향했는데, 어라! 경찰이 출입을 차단했다. 심지어 어느 간부가 대책위 사람을 하나하나 지목하고 젊은 경찰들이 달라붙어 버스에 강제로 태웠다. 그리곤 공청회가 끝날 즈음 간신히 돌아올 거리에 내려놓았다.

당시 흔치 않은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렌즈가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맨 태도가 기자 같았다 여겼는지, 경찰 간부가 지목하지 않은 덕분에 들어간 공청회장은 공청회가 열리기 한 시간 전인데 경찰과 공무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덕적도와 굴업도에서 찾아온 주민들이 밖에서 입장을 요구하며 소리를 질러도 문을 열지 않았다. 주민과 대책위 관계자의 참여 없는 공청회를 거부한 반대 측 발표자가 무효를 선언하며 퇴장했지만, 공청회는 진행되었다. 그런 예상을 한 정부가 관제 반대 측 인사를 준비해둔 거였다.

공청회장 밖에서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른 덕적도와 굴업도 주민들에게 정부는 깡패였다. 20년이 훌쩍 지난 과거의 일인데, 지금은 어떤가? 굴업도는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때문에 정부와 주민의 갈등이 생겼는데, 이후 경주에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이 완공되었다. 수천억 원의 사탕발림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처분장은 완공 1년 만에 치명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물 한 방울 비치지 않아야 하는 단단한 바위 지반에 만들어야 할 핵폐기물 처분장을 하루 수천 톤의 지하수가 발생하는 연약 지반에 만든 까닭이다.

핵발전소가 가동하는 한 핵폐기물은 나온다. 핵발전소 구내에 임시 보관하는 건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연 그리고 사람의 일상생활과 완전히 분리된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안전한 지형이 없다면 핵발전소는 만들지 말아야 했다. 안전한 곳을 확인하기 전에 핵발전소를 추가하는 행위는 무책임하다. 하지만 정부는 돈으로 지역을 매수하려 했다. 과학적 합리성은 철저히 배제했다. 앞으로 1000년 고도 경주는 어떻게 될까? 자부심은커녕 생존 자체가 염려된다.

경주의 핵폐기물 처분장은 넘치는 지하수를 제거하는 모터가 1년 만에 망가지는 사고를 망연하게 바라봐야 한다. 해마다 반복 수리하면 그만일까? 언제까지? 수만 년 동안? 지하수가 핵폐기물이 저장된 곳에 스며들면 그 일대의 생존은 위협받는다. 지하수는 하천과 생태계와 이어진다. 사람이 마시고 농업용수로 활용한다. 그뿐인가? 콘크리트의 수명은 핵폐기물의 수명보다 훨씬 짧다. 핵폐기물 처분장을 둘러쌓은 콘크리트가 부식되면 지하수는 바다로 나가고, 우리는 해산물을 믿지 못할 것이다. 망가진 모터는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어떻게 관리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기밀이 넘칠수록 사고와 부정은 넘친다.

▲ 경주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지금여기 자료사진

지난 6월 17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열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 공청회는 20여 년 전 굴업도 핵폐기물 처분장 관련 공청회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 다시 말해 방사능 위험성이 극에 달할 뿐 아니라 항구적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할 장소를 찾겠다는 공청회였다. 공청회가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 150여 명이 이미 자리를 차지한 것도 비슷했다. 핵발전소가 가동되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에서 온 참가자의 입장이 원천 봉쇄된 점도 같았고 파행돼 분노를 일으킨 것도 마찬가지였다.

20여 년 전에는 관제 반대 측 인사가 젊잖게 “우리는 반대하오.”하며 조아리고 자리에 앉았다면 이번엔 더욱 노골적이었다. 사전 등록을 한 사람들이 어렵게 입장했지만 앉을 자리는 없었고, 일방적 절차에 분노한 핵발전소 주민들이 공청회 중단을 요구하며 단상을 점거하자 정부는 준비된 파행을 강행했다. 한 시간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휴회를 선언하더니 느닷없이 단상이 아닌 곳에서 산업자원부의 담당 국장이 “기본계획에 대한 의견 주십시오.”하는 게 아닌가. 1분도 못돼 “없으시면 이것으로 공청회를 마치겠다”며 폐회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현 정부는 ‘정부 3.0’을 선언했다. 도대체 ‘정부 3.0’은 무엇인가? 모르고 지나간 버전 2.0을 건너뛴 3.0이다. 정부의 ‘정부 3.0 추진위원회’에서 마련한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정부운영 패러다임”을 천명하는데, 여기서 ‘패러다임’이라는 쉽지 않은 외래어를 사용한 점, 허심탄회한 소통에 문제가 있는 용어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공공정보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국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동시에 일자리 창출과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새로운 정부운영 패러다임”이라고 밝혔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노출한 산업자원부의 태도는 무엇인가? 10만 년 안전하게 관리해도 이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물질이 사용 후 핵연료다. 경상남북도 크기의 단일한 암석지대에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만드는 핀란드의 온칼로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도 10만 년 이후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며 불합리하게 만든 경주의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도 과학적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028년까지 최종 부지를 확정한 뒤 24년간 건설해 2053년부터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라는 건가? 반대하는 자는 구속하겠다는 건가? 그게 정부 3.0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제정신을 가진 국가는 정부의 사활을 걸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의 발굴에 매진한다. 효율을 높인 태양광 발전패널의 개발은 물론이고 투명한 유리로 전기를 얻는 장치도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가? 독일의 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전문가는 예산과 기술이 충분하고 햇볕이 강한 국가가 한국인데, 왜 정부가 태양광 에너지 활용에 한사코 무관심한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태양광 패널의 효율이 향상된 요즘 국토의 2퍼센트만 활용해도 모든 전기를 태양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시민단체는 근거를 들어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왜 퇴행할까? 핵 관련 자본의 이익 독점을 위한 자국민 테러인가?

한 줌의 핵 관련 자본가와 그 자본가에 아부해 부스러기를 챙기려는 세력을 위한 창조경제가 아니라면, 진정한 ‘정부 3.0’이라면, 20년이 지나도 되풀이하는 깡패 짓은 삼가야 한다. 소통은 파행과 동의어가 아니다. 아무리 공익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밀실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끼리 나누는 소통은 ‘정부 3.0’에서 할 짓이 아니다. 핵발전이든 핵폐기물이든 그 무엇이든. 사용 후 핵연료 처리는 특히.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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