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덥다. 푹푹 찐다. 이렇게 더운 날,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일한다는 건 부담이다. 어쩔 수 없다면 고통이다. 아니 고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노릇이므로. 이렇게 더운 날, 직장이나 일터에서 스페인처럼 낮잠을 노동자에게 권할 수 있으면 좋겠다. 뙤약볕이 머리와 몸을 사정없이 지지는 시간은 최소한 피해야 안전과 효율이 나아지지 않겠나.

1994년 이래 최대의 폭염이라고 뉴스는 거푸 강조한다.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열흘 넘게 이어지는데 1994년? 원고가 유난스레 밀리는 올해가 고통스러워 그런가? 1994년이면 막내가 첫돌을 맞았을 때인데, 통 더웠던 기억이 없다. 아내는 힘겨웠을 텐데.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작년보다 늘었다던데, 에어컨 보급이 요즘 같지 않던 1994년에 희생자는 요즘보다 많았을까?

2003년 프랑스는 섭씨 44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돼 1만 5000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 대부분 집에 에어컨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유럽 일원에서 7만 명이 열사병으로 희생되었다는데, 우리나라도 전문가가 ‘온열질환’이라 정의하는 질병의 환자가 해마다 더 많이 희생된다고 한다. 2003년 이후 유럽은 사회복지 차원으로 공공기관에 에어컨을 설치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피난처를 마련한다는데, 우리는 어떤지.

아직 섭씨 40도가 넘는 더위를 체험하지 못했다. 체온 이상의 더위가 닥친다면 선풍기도 소용없다는데, 숨인들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체온보다 높은 바람을 받으면 더위에 지친 몸은 체온을 배출할 수 없을 테니, 40도 이상의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겠다. 에어컨 없이 견디지 못할 텐데, 적도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버틸까?

폭염 경보가 이어질 때 싱가포르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항만 배후 도시의 활기차고 다채로운 측면을 보러 갔지만 신기루를 느끼고 왔다. 북위 1도를 겨우 넘는 싱가포르는 분명 열대지방이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와 달리 날마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지만 싱가포르 시민들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한 만큼 소득도 높다. 그 원천은 지정학적 위치를 권위적으로 최적화한 중계 무역이라기보다 넉넉한 에어컨 같았다.

싱가포르에 에어컨이 사라지면 다른 열대 지역이 그렇듯, 부지런한 사람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농사짓다 그늘에 느긋하게 쉬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에어컨은 전기 없이 돌아가지 않고, 싱가포르를 움직이게 하는 전기는 막대한 화석 연료를 태워 얻는다. 싱가포르 앞바다의 작은 섬은 화력발전소로 가득 차 있고, 그 옆의 섬은 석유와 가스 저장 탱크가 차지하고 있다. 그곳이 멈춘다면? 싱가포르도 멈출 것이다.

호텔 투숙할 때 카드 열쇠를 하나 더 주는 싱가포르는 1년 365일 하루 온종일 에어컨을 가동한다. 대중교통과 공공건물은 얇은 옷을 더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하다. 열대 지방에 사는 시민에게 추위를 선사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지만, 그를 위해 소비되는 화석 연료는 지구를 더욱 데울 게 분명하다. 화석 연료 대신 핵이라면? 그만큼 후손의 삶은 위기를 맞겠지.

▲ 석탄 화력 발전소.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냉장고에서 꺼내는 냉수는 시원하다. 그렇다고 냉장고를 열어 집 안을 시원하게 만들지 않는다. 냉장고가 음식을 식히는 이상 집안이 더워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에어컨을 심하게 가동할까? 에어컨 실외기에서 쏟아내는 불쾌한 열기를 확장해 생각해 보자. 화석 연료나 핵을 사용하는 발전소도 생산하는 전기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발전소 밖으로 내보내며 지구를 데운다.

석탄 화력 발전소의 열효율은 기껏해야 40퍼센트. 나머지는 바닷물의 수온을 높이는 데 허비된다. 싱가포르 앞바다에 배출하는 온배수의 양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어떨까?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일본에서 주변 바다로 쏟아내는 온배수의 양은 막대할 텐데, 우리와 중국의 발전소에서 쏟아내는 온배수는 황해 연안 국가의 폭염과 무관할까?

우리나라의 이번 폭염은 싱가포르의 더위보다 지독했다. 그래도 말복이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산들바람이 분다. 찌는 듯 더워도 그늘로 피하면 견딜 만한 계절로 접어든다. 매미마저 울음을 자제하니 곧 저녁이면 귀뚜라미가 울겠지. 4계절이 분명한 지역에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마운 일인데, 이번 폭염 속에서 걱정이 앞선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의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 기미가 없으니 머지않아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이 상시적으로 엄습할지 모른다.

석탄과 핵발전소 온배수가 태풍과 폭염을 부른다는 일각의 주장은 터무니없을까? 발전소 증설을 막으려는 음모론일까? 심해지는 폭염을 대비하는 방법이 강력한 에어컨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면 폭염이라는 부메랑이 더 무서워지기 전에 에너지 소비의 근원적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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